인류의 문명과 산업화의 이면에는 생태의 파괴, 자연의 약탈이라는 상처가 존재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대규모 재앙이 잇따르고 인간을 공격하는 병원균이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늦게나마 인류는 생태계와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 보존과 복원을 위해 지구적 노력을 기울이는 시대가 됐다.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 산골짜기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생물자원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약 900종의 곤충이 자라고 있고, 멸종위기의 곤충들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곳. 2만3천평의 산 속에 곤충실험실과 곤충박물관을 운영하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1997년 횡성의 산골로 들어와 생태학교와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지금껏 곤충의 생활사를 정리해오고 있는 곤충박사 이강운 소장으로부터 ‘곤충연구’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전경(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내 인생에 세 번의 대형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이고 두 번째는 신문사 입사, 다른 하나는 최고의 직장으로 생각했던 동아일보에서 사표를 던졌던 일이다.
나는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1958년 개띠로, 무시험 전형이(현 대통령인 박근혜의 동생인 박지만의 편안한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처음 시행되었던 서울에서 인천으로 시험을 치기 위해 대량 유입된 학생들로 가장 치열했던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고등학교 시험 마지막 세대인 셈. 그렇지만 시험에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전교 720명 중에서 100여 명이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에 들어 간 명문 중학교에서 전교 20등 정도 했으니 아무도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낙방이 하도 기가 막혀서 억울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국어 시험 작문에 이름을 써 넣지 않은 것 같다.

잘못 나가고 있는 내 자신을 탈피하고 변하고 싶었지만 그럴 방법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삶의 가치를 공부보다는 운동에 부여했다. 대학 진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시점인데도 공부로 나를 무장할 생각 대신에 싸움질에 필요한 각 종 무도 즉 태권도, 유도 등에 열을 올려 스스로 무협지에 등장하는 신출귀몰한 무인이 되려고 온 힘을 다했다.

공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발전, 진화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포기하듯 운동에만 전념하며 허무적인 비관주의자로 일관해 온 고등학교 3년 세월로 대학도 원하는 곳에는 물론 갈 수 없었고. 단 한 번의 실패로 빛나는 청춘이어야 할 학창 시절이 후회와 방황으로 점철 된 무력감으로 계속됐다. 왜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학대하며 냉정하게 굴었는지, 아마도 실패에 익숙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현재까지 살아 온 세월 중에서 내가 겪은 가장 큰 심리적, 구조적 붕괴의 시기, 요즘 이야기로 멘탈 붕괴 즉 멘붕의 시절이었다.

불평과 불만으로 속내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화만 쌓였고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 1980년 4월, 35개월의 길고도 긴 군 입대를 했다. 입대 후 논산 훈련소에서 동창인 친구가 최연소 사법시험 합격했다는 대문짝만 한 신문 기사를 보고 정상 궤도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빗나간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 친구의 영광이 나에게는 굴욕으로 다가와 흔히 이야기하는 출세가도를 달릴 친구와 한 치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내 미래를 생각건대 심기일전 공부에 매진할 필요가 있었다. 변화를 위한 절실함으로 그 동안 멀리했던 공부를 위해 불침번 때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단어를 외우고 조각 모음 하듯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 언제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 ‘군바리’ 주제에 공부한다고 고참들에게 실컷 두드려 맞아 가면서. 길고도 긴 35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 4년에 복학하자마자 곧바로 취업 전쟁에 뛰어들었다.

요즘에도 인문계 취업의 잔혹한 현실을 시사하는 인구론(인문계 구십 프로는 논다)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듯이 그 당시에도 건국대 역사학과는 학교 이름이나 학과만으로 선발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오직 시험보고 실력으로 사람을 뽑는 언론사만이 도전해 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이미 언론계에 몸담고 있던 형을 보면서 기자의 멋진 삶을 보았던 터라 자연스레 언론사는 어느덧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언론고시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워낙 경쟁률이 심해 1년 내내 떨어진 것 같다. 하도 떨어지다 보니 미안해 매주 일요일 부모님 몰래 시험을 보러 다녔다.

어머니는 축 처진 자식의 등을 보며 못내 안타까워하시며 몇 푼 차비를 건네시면서도 끝내 자존심 상해 할까봐 ‘친구들 만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거짓 충고도 하셨다. 제때에 공부 안 한 자식으로 속만 썩이는 골치 덩어리였지만 표시 안 나게 응원을 하셨다. 모든 언론사 시험에 떨어지고 절망에 빠져 더 이상 희망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더니 1983년 언론사 마지막 시험인 동아일보 입사 시험에 256:1 의 경쟁을 뚫었다. 5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탈출구이며 기어코 인생 역전을 할 신문사에 입성하였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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