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사회 생물학자 이강운박사의 생태이야기
[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2) 병마(病魔)를 계기로 한 삶의 전환, ‘생태계 탐사’의 세계로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5.07.08 19:11|(0호)
▲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와 1992년에 낙동강하구언 탐조에 나섰던 필자(왼쪽)
 인생 역전을 할 동아일보 입사 7년 만에 만성 간염 통보...문화기획부로 자리를 옮겨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단장으로 활동하며 지극정성인 아내의 간호와 꽃과 나비를 통해 스스로의 방식으로 병을 해결한 셈

 

어줍지 않은 감상이었는지는 몰라도 조국이나 민주화에 대한 나름 중차대한 역사적 임무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명감과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자신감으로 동아일보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4월 7일 신문의 날, 5월 5일 어린이 날 그리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뺀 거의 일 년 365일을 꼭두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혹독하게 훈련을 했다. 분, 초를 다퉈가며 일을 배우고 술도 매일 마시고. 모두들 지쳐갔지만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났다. 그래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아내와 함께 결혼기념일을 보내고 싶어서 4월 7일 신문의 날에 결혼했다. 유일하게 허락된 탈출구이며 기어코 인생 역전을 할 동아일보였기에 늘 즐겁고 감사한 하루 하루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몸은 점점 힘이 들었다.

입사 7년 만에 만성 간염 통보를 받았다. 아버지가 간이 안 좋으셔서 혹시 나도 가족력으로 위험한 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막상 간염 판정을 받고 보니 정말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 오랫동안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하고 주변에서 좋다는 민간요법도 써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어 휴직을 결정했다.

▲ 1996년 동아일보사 주최의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프로그램으로 제주도에서 곤충탐사에 나섰던 탐사단. (윗줄 가운데 수염을 기르고 있는 이가 탐사단장이던 필자)


뱀이 특효라며 실제 효험을 보았으니 믿고 가보라는 선배의 권유로 1989년 12월 중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전라도 담양 추월산 이라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 자연 치료를 시작했다. 기름기 없는 푸석한 얼굴을 거울로 볼 때마다 인생 역전이 만만치 않구나 하는 자조섞인 마음이 들었고, ‘좋았는데 참 좋았는데 그리고 정말 죽을 각오를 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젊디젊은 나에게 생기는 거지’ 라며 원망도 많이 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갈 세상과 동아일보가 야속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고 이제 짧은 생을 정리해야할 시점인가 보다 하는 한심한 생각으로 힘들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인적 없는 추월산 벼랑에 섰을 때 아내가 세 살 박이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담양에서 택시를 타고 멀고 먼 길을 돌아 나를 만나러 왔다. 아무도 나의 아픔에 관심 없지만 아내와 ‘세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세 살 박이 아들 동재’ 그리고 막 돌 지난 ‘나를 꼭 빼 닮은  딸 가영’은 나에게 존재의 이유였다. 더 이상 머물 일이 아니다. 죽이 되 던 밥이 되 던 복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다 죽으면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나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복직했다.

▲ 1995년 일본 이즈미에서 열린 ‘세계의 두루미 도래지’ 행사(아랫줄 우측에서 세 번째가 필자)


완치는 아니지만 다닐 만 하다고 그 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문화기획부로 자리를 옮겨 복직했다. 남들은 한가하고 따분한 부서로 생각했지만 내 몸에 꼭 맞는 최고의 부서였다. 문화에 관한 많은 일 즉 미술이나 음악. 도예 등 정신적 가치가 큰 분야도 좋았지만 환경, 특히 자연물인 새나 곤충 그리고 식물에 대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끊임없는 공부와 절제된 훈련을 필요로 하는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 프로그램은 나에게 적격이었다.

탐사 주제를 정한 후 교육부 추천으로 전국 시, 도에서 한명씩 15명의 생물교사를 선발해 생태 공부를 시키고 보고서를 출간하는 국내 최초, 최고의 실질적인 ‘환경 보전 학습’이었다. 여름, 겨울 일 년에 두 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매번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는 '다이내믹'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물론 매일 아침 끓여주는 인진쑥 물과 간에 좋다는 온갖 조개류를 밤 새워 손질해 나를 먹이던 아내의 공이 일등이지만.

▲ 1995년 러시아 마가단으로 떠난 식물탐사 기간 중에 낚시로 망중한을 즐길 수도 있었다


필드(Field)를 탐사하면서 늘 얼굴도 타고 논문 수준의 보고서도 써야하고 전국의 생물교사들과 4박 5일 간 동고동락하는 일이 굉장히 힘들다고 사전 설명을 들었지만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는 건 선배들의 편견이었지 나에게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 단장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 수 있는 안식처였다. 제주도부터 비무장지대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질과 곤충을 공부하고, 러시아, 일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 보전 지역의 식물과 새를 탐사하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지극정성인 아내의 간호와 꽃과 나비를 통해 스스로의 방식으로 내 병을 해결한 셈이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스포츠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5234)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앞들서2로 23(2층)  |  전화 : 033)342-1507  |  팩스 : 033)343-1507
등록번호 : 강원아00116(2012.02.08)  |  발행인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조만회  |  편집인 : 조만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희
계좌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농협 351-0755-0672-03  |  이메일 : hschamhope@naver.com
Copyright © 2021 횡성희망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