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를 통해서 즐거움이 두 배로 늘었으니 아내와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이 그 것이다.

‘무거운 장비를 매고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세상에서 이렇게 신나는 일은 없다’라는 표정으로 반짝이던 아이의 눈을 마주보는 일은 가장 멋진 일이었다. 새에 빠지기 전에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면 새를 알고부터는 옆을 보고 함께 걷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

비록 원병오 교수님의 과도한 칭찬으로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새에 딱 꽂혀 새에 관한 전문가가 되는 길이 피할 수 없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곤충 연구소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하는 지금은 늘 애벌레를 입에 물고 다니며 곤충을 주식으로 잡아먹는 새를 멀리하려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새를 좋아했다.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의 한 꼭지인 철새탐조라는 일이 즐거운 일상이 되었고 일과 생활이 동일시되면서 집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 비싼 올림픽아파트에 살면서도.

서산 천수만에서 이미 텃새로서는 1970년대에 멸종된 황새를 보는 즐거움은 감격 그 자체였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인간을 압도하는 삽교호와 괭이갈매기와 홍머리오리, 두루미를 볼 수 있는 낙동강 하구언,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새, 넓적부리오리를 관찰할 수 있는 주남저수지나 고니와 검은머리물떼새가 즐겨 찾는 금강하구언 같은 철새도래지는 늘 내가 가고 싶은 꿈의 장소였다. 특히 강릉 경포호의 흰꼬리수리의 웅장한 모습을 관찰하거나 서산 천수만에서 이미 텃새로서는 1970년대에 멸종된 황새를 보는 즐거움은 감격 그 자체였다. 철새도래지가 너무 멀어 길을 못 떠나면 한강하구나 임진강 혹은 강화도로 흑두루미나 개리를 맞이하러 떠났다. 철새를 가까이서 손쉽게 보기 위해서 결국 한강 하구와 가까운 일산으로 집을 옮겼다. 그 때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은 축재(蓄財)와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가려 애를 쓰는데 굳이 강남에서 새 때문에 외곽인 일산으로 오다니 조금 미친 것 같기도 하다’라는. 출퇴근 시간에 꽉 막히는 자유로에서조차도 한강변으로 보이는 철새를 탐조할 수 있어서 행복했으니까 미쳤다는 그 이야기도 싫지 않았다.

탐조를 통해서 즐거움이 두 배로 늘었으니 아내와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이 그 것이다.

괭이갈매기와 홍머리오리, 두루미를 볼 수 있었던 낙동강 하구언 같은 철새도래지는 늘 내가 가고 싶은 꿈의 장소였다.

늘 둘째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나는 첫 아이를 유독 지성을 다해 키웠다. 세 번의 자연 유산으로 내 새끼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가 첫째 아이를 가졌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돌잔치를 물경 한 달을 했던 아들이었으니 무엇이든 생각을 안 했겠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터득한 내 나름의 소통 방식은 늘 함께 있으며 교감하는 것이고, 가장 온전한 방법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몸을 많이 접촉하는 철새 탐조는 적격이었다. 탐조를 위해 길을 나서면 새를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곳이 칼바람 부는 강가나 바닷가인지라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목도리를 매어주고 장갑을 챙기면서 자연스러운 스킨십으로 아이의 체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강이나 바다로 갈 때면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게 되고 몸을 낮추게 되면서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무거운 삼각대와 필드 스코프를 가녀린 어깨에 매고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세상에서 이렇게 신나는 일은 없다’라는 표정으로 반짝이던 아이의 눈을 마주보는 일은 가장 멋진 일이었다. 아이에게 자연 냄새를 맡으며 자연을 향한 진심을 갖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아이들은 이미 자연이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남들 하는 학원 공부 없이 녹색의 축복을 흠뻑 맞고 자란 아이들은 잘 자랐다.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항상 아빠를 원망하던 둘째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고 며칠 후면 결혼을 한다. 유독 지성을 다해 키웠던 첫째도 아쉽긴 하지만 힘드는 생물학자 대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자기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시간을 쪼개고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그 고됨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즐거움으로 바뀌고도 남았다. 도착지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동시를 외우고, 동요를 부르던 딸아이와 조류도감을 보며 익혔던 새의 생태 정보를 술술 풀어대던 아들과 살을 맞대니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새에 빠지기 전에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면 새를 알고부터는 옆을 보고 함께 걷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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