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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은 나무꾼, 선녀는 선녀(3)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9.06.28 12:06|(177호)
그림 송영주

결국 선녀는 용마를 타고 내려가되 절대로 발을 땅에 대지 말고, 어머니와 인사나 하고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나무꾼은 바로 용마를 타고, 금방 집 마당으로 갔습니다. 나무꾼은 어머니를 애타게 불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버선발로 뛰어나왔습니다.

“아이쿠, 내 새끼. 어디 좀 보자.”

어머니는 말 위에 앉아 있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어 얼굴부터 발끝까지 쓰다듬었습니다. 나무꾼도 어머니를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무꾼은 선녀의 말대로 용마 위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나무꾼은 어머니께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늘 마침 나무꾼이 좋아하는 팥죽을 끓였다며, 한 그릇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고선 어머니는 급히 들어가더니 큰 그릇에 팥죽을 한가득 퍼왔습니다. 나무꾼은 행복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했던 그 팥죽이었습니다. 나무꾼은 너무 반가워 눈물겨웠습니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나무꾼은 그릇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급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팥죽 그릇은 너무 뜨거웠습니다.

“앗 뜨거.”

나무꾼은 얼떨결에 팥죽 그릇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팥죽은 말 등에 쏟아졌습니다. 용마는 깜짝 놀라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그 바람에 나무꾼은 말 위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용마는 떨어진 나무꾼을 내버려 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나무꾼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용마가 간 쪽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만 봤습니다. 이제 하늘로 올라갈 순 없었습니다. 선녀와 아이들을 다신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나무꾼은 또 그리웠습니다. 애타게 그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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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무엇이고 싶었을까요? 당시에는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 당장에도 피할 수 없는 엄마로서의 삶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운명 같은 숙명으로, 대처할 겨를도 없이 닥쳐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녀는 무엇이고 싶었을까요? 아니 무엇이고 싶을까요? 아내이고, 엄마이고, 며느리이지만, 삶이 감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아마도 제일은 선녀이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선녀이고 싶을 겁니다. 하늘 나라의 꿈결 같은 삶의 추억 속에서 늘 머물고 싶을 겁니다. 곱게곱게, 고이 간직해 온 아름다운 소망에 설렜던 시절이 늘 그리울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꿉니다. 미래를 가슴에 품고,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삶 속에서 삽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룰 금의환향을 꿈꿉니다. 보란 듯이 잘돼서 어렵고 힘들었던 삶에 어깨를 한껏 펴 보이고 싶기도 합니다. 부족하기도 했던 자신의 삶, 못나고 좌충우돌했던 삶의 아프고 서글픈 추억에 금빛 옷을 입고 당당히 나타나고 싶기도 합니다.

선녀도 마찬가지로 그랬을 겁니다. 비록 처음에는 날개옷을 잃어버려서 정말 어찌할 수 없어서, 부모의 축복도 없이 가난한 나무꾼에게 몸과 마음을 맡겨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위험한 모험이고 도박이었습니다. 자신의 옷을 훔친 도둑놈인 줄 알면서도 날개옷을 찾아준다는 말에 속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거짓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믿었습니다. 하지만, 선녀는 아들, 딸 낳고 살면서도 나무꾼의 말을 믿고, 늘 날개옷을 찾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날개옷을 입고 훨훨 날아 하늘나라로 올라갈 꿈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삶이었지만, 꾹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한 나무꾼과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식들과 함께 하늘나라에 가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형제자매에게서 인정받는 가정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곱게 가꿔 온 꿈과 소망은 나무꾼을 만난 뒤 사라졌습니다. 어딘가에 감춰진 날개옷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 감춰졌습니다. 일상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선녀의 꿈도 소망도 나무꾼의 허락 없이는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녀는 늘 꿈속에서 자신의 날개옷를 찾습니다. 기약의 시간을 헤아리며, 꿈을 꾸곤 합니다. 가끔은 나무꾼의 눈초리를 피해 찾아도 봅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덜컹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분주히 더듬어 찾아도 봅니다. 하지만 언제나 더듬는 손길의 끝엔 나무꾼이 와 닿아 있습니다. 선녀이기에 뿌리칠 수 없는 가난한 나무꾼이 늘 와 닿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무꾼은 마음이 아픕니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더 이상 날개옷을 찾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선녀가 아니더라도 날개옷을 입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무꾼은 더욱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애써 모른 척합니다. 꾹꾹 마음을 눌러 묵묵히 기다립니다. 어쨌든 넷째가 태어날 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하며 기다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줄 믿고 또 믿어 봅니다. 하지만 전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선녀는 늘 날개옷을 찾고, 나무꾼은 그래서 또 늘 더 아프고 더 안타깝습니다. 어떨 때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처지와 입장이 비참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워 날개옷을 내놓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의 처지와 입장에서는 이것만이 사랑하는 선녀를, 가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선녀였습니다. 아들, 딸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선녀였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내일도 모레도 언제까지나 선녀이고 싶습니다. 그러ᇹ기 때문에 아내는 항상 선녀였고, 선녀입니다. 선녀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날개만 있으면 언제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도 있는 선녀입니다. 지금 당장은 날개가 없더라도 그렇습니다. 마음뿐일지라도 언제나 선녀입니다.

나무꾼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아내이고 며느리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무꾼은 단지 날개옷을 감추는 데 급급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지도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녀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려 보지도, 헤아려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녀는 그런 나무꾼에게 실망했습니다. 자신을 더 이상 울타리 안에 가둬두려는 나무꾼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녀는 나무꾼에게 더욱 애원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결국 나무꾼은 더 이상 사슴이 말해 준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견디다 못해 보여 주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토록 걱정했던 대로 나무꾼은 아내를 잃었습니다. 날개옷을 찾아 준 순간 아내는 떠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함께 갔습니다. 한꺼번에 아내와 아이들 모두가 떠나가버렸습니다. 그러자마자 집도 마음도 휑하니 텅 비었습니다. 지금까지 가득 벅찬 가슴, 행복한 마음이 싸늘해졌습니다. 그리움으로 가득 찬 눈물은 온 대지를 적시며 흘렀습니다. 하지만 나무꾼에 살망한 선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나무꾼은 선녀를 찾아 떠날 결심을 합니다. 선녀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납니다. 고난의 여행을 떠납니다. 어머니를 뒤로하고, 심각한 얼굴로 떠납니다. 그리하여 결국 선녀와 다시 만나 다시 한 가족이 됩니다. 다른 세상에서나마 다시 함께 살게 됩니다. 나무꾼이 그리웠던 선녀가 제일 기뻤습니다. 그토록 나무꾼을 기다렸던 선녀도 이제야 행복했습니다.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무꾼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전처럼 무엇인가 가슴 한쪽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 생각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무꾼은 꼭 한 번만이라도 고향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온 나무꾼은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뿌리치지 못하고, 더 이상 선녀에게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리워하며,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무꾼은 하염없이 오늘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것이 다 인연인 것을. 운명인 것을. 필연인 것을. 어떻게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이 어찌 그 순리를 거역하겠습니까? 그래도 삶은 그렇게 오늘도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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