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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죽이는 밤- 세상에서 가능한 것은 나의 마음을 바꾸는 일뿐이다 -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9.09.23 19:53|(179호)

지난번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서와 같이 선녀는 언제나 선녀이고 싶습니다.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습니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그것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현해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부부는 벌써 행복합니다. 부부는 오직 하늘의 뜻으로만 됩니다. 딱 맞는 배필을 하늘이 축복으로 내려줍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늘 하늘은 씨앗, 즉 가능성만을 담아 줍니다. 나머지는 부부가 서로서로 그 싹을 틔우고, 가꾸어 나가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부부는 그 책임 또한 함께 져야합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우주 공간에서, 막막하고 어두운 삶의 현실 속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도 자식도,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떤 경우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는 무엇인가 그 삶의 의미가 분명히 있습니다.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만 한다면, 세월의 안개가 걷힌 뒤에는 분명하게 알게 될 비밀스럽고, 소중한 보물이 감춰져 있습니다. 이번 주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 죽이는 밤’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 죽이는 밤

- 세상에서 가능한 것은 나의 마음을 바꾸는 일뿐이다 -
 

옛날, 어떤 마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날마다 며느리를 볶아댔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며느리는 자신을 구박하는 시어머니를 몹시 미워했습니다. 이 집 아들은 어머니와 마누라 사이에 끼어서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마누라에게 은근히 말했습니다.
“저기, 여보 마누라, 힘들지?”
“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보면 몰라요?”
“….”
“아니, 왜 허구한 날 날 볶아대? 나 원 참. 어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가 말로 하면 만리장성도 쌓겠다.”
“….”
“내가 죽겠네, 죽겠어. 이러다간 제명에 못 살지.”

그러자 아들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난 당신 없으면 못 살아. 그렇다고 이젠 당신한테 무작정 참으라고도 말 못해. 참을 만큼 참았잖소.”
“….”
“그래서 말인데, 난 당신이 죽는 것보다 어머니를 죽게 하는 것이 좋겠소.”
“뭐, 뭐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마누라는 아들이 뜸을 들이자 재촉하며 말했습니다.

“좋은 수가 있기는 있는 거예요?”
“….”
“아, 이 양반이 답답하게. 아,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나도 당신 말에 찬성이에요. 찬성이니까 어서 말해 봐요.”

며느리는 매우 진지했습니다. 그러자 아들도 마누라를 똑바로 쳐다보고서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어, 그럼 내 말대로 하겠소?”
“….”
“내 말대로 하면 어머니는 정말로 죽게 되어 있소.”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어서 말해 봐요. 뜸들이지 말고.”
“하하, 그래 알았소.”
“….”
“어머니한테는 군밤이 독이오. 옛날 어렸을 때, 갑자기 앓아누워 죽을 뻔했는데, 그게 말이야. 그해 겨울에 군밤을 먹고 죽을 뻔했다오.”
“아, 그래요?”
“응. 그런데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절대 안 되오. 큰일 나.”
“….”
“알았소?”

아들은 마누라에게 누차 다짐을 한 후에야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장에 가서 밤 한 말을 사다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세 개씩만 구워서 어머니께 줘.”
“….”
“그런데 줄 때, 절대 눈치 못 채게 아주아주 공손해야 하오. 안 그러면 의심받을 수도 있거든, 알았소?”
“호호호, 알았어요. 그 정도야 뭐 쉽지. 어머니만 죽는다면야.”

그림 / 송 영 주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화학과졸업sfineart@naver.com

그날부터 며느리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밤 세 개를 구워 시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얘기한 것처럼 공손하게 아주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것 좀 드셔 보셔요.”
“….”
“밤을 좀 구웠어요, 어머니. 호호호.”

시어머니가 처음엔 속으로 놀라며 ‘얘가 미쳤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시큰둥하게 말하며, 구박했습니다.

“쓸데없이 밤은 왜 구워. 난 안 먹는다. 너나 처먹어라.”

며느리는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공손하게 말하며 맛있는 군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의심하여 군밤을 먹지 않을까 봐 매사에 조심하며 시어머니를 공손히 대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별일이네. 별일이야. 웬일이다냐.’
‘세상에 서쪽에서 해가 뜰 일이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저것이 죽을병이 걸렸나.’

시어머니는 갑작스런 며느리의 행동에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일 밤을 구워서 갖다 주자, 속으로 즐거워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호호. 별일이네.’
‘참. 매일 이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고맙구먼. 호호호.’

며칠이 또 지나자 이제는 며느리가 달라 보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공손히 시어머니를 대하고, 알뜰살뜰이 살림살이를 제법 잘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후회했습니다.

‘저런 며느리를 못 살게 볶아댔다니.’
‘내가 저런 좋은 며느리를 못 살게 볶아댔다니….’
‘내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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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그리스 철학자는 삶에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가능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이고, 가능하지 않는 것은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가능하지 않는 일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의 생각과 마음에 간섭하여 마음대로 조종하려 들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더더욱 그러한 일들이 마구 벌어지곤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함부로 저울질하기도 하고, 간섭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 성과는 더더욱 없습니다.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선, 애간장을 태우고선 소득 없이 허탈해 합니다. 더군다나 관계는 더 꼬이고, 언제부터인지도 모르는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기만 합니다.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에서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에도 우리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자신은 사랑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든지 최소한 자신을 위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선택이 남들이 보기에는 의아하고, 놀라울지라도 자신의 삶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절박하기까지 한 최선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겁니다. 물론 최소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해 보면, 결국 인간은 늘 사랑하며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늘 사랑하며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 생존을 위해서든지 그렇지 않은 경우든지 한순간도 사랑하며 살지 않는 때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누구든지 삶의 매 순간순간마다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 존재의 삶 자체가 사랑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즉 누구이든지, 무엇이든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 순간순간마다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받으려 노력합니다. 자신을 괴롭혀서라도,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라도 기어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생명 따위나, 다른 사람의 삶 따위는 보이지 않을 만큼 인간은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생명의 지향이 오로지 삶이듯이, 사랑도 생명의 순수 지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 자체에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듯이, 사랑도 그 자체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정당하지 않을지라도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한순간도 사랑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뿌리째 뽑힌 꽃이 말라 버려지듯이, 물 밖에 버려진 물고기가 안간힘을 쓰다 이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도 그리움과 외로움의 신음과 고통 속에서 살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버티다 몸부림치다, 결국 쓰러져 버림받은 삶을 스스로든 병으로든 마감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사랑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서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순간도 사랑받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랑의 중심이 바뀔 뿐입니다.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삶에 따라 그 중심이 바뀔 뿐입니다. 사랑은 그래서 흐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흐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물이 흘러간다고 한들 그 물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태어나 부모에서 친구로, 연인으로, 아내에게로, 남편에게로, 자식에게로 등등 인간의 사랑의 중심은 항상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시간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늘 흘러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변한다고, 중심이 달라진다고 이전의 사랑이 없어지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당장의 사랑의 중심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전의 사랑은 딱 고만큼의 사랑인 채로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어떤 사랑은 관심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랑은 오랜 추억 속으로 흘러 잠기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사랑마저도 아예 잊혀지거나 사라지진 않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추억으로 희미하게라도 남아 딱 고만큼의 사랑인 채로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중심에 언제나 머물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더군다나 아들을 둔 시어머니, 딸을 둔 친정어머니의 마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딱 고만큼의 사랑인 채로 사랑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을 뿐인데, 섭섭하고 못내 서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심 어린 사랑도, 조금 벗어난 사랑도, 흘러 잠긴 사랑 조차도 언제나 사랑으로 남습니다. 미움으로 증오로 무관심으로 이젠 기억조차 지워진 듯할지라도, 늘 우리의 삶 속에서 안쓰러운 여운만을 남길지라도, 그런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절대로 사라지진 않습니다. 물론 그러다 되돌릴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남기고 흘러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록 중심에선 멀어져 가고 있을지라도 이러한 마음 또한 사랑일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조차도 우리들의 삶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일부입니다. 생명의 순수 지향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그 사랑에 대한 마음도 살아 간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서 늘 함께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 속 깊은 미움도 증오도 게다가 기억조차 나지 않은 사랑도 사랑으로 간직됩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 관심도 없는 듯하지만, 자신의 삶의 일부를 송두리째 뽑아 없애 버릴 수 있지 않고서는 그 생명의 사랑과 아련한 추억과 일말의 미련과 연민은 언제나 자신의 삶의 언저리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불쑥 기대하고 분노하고,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며, 미워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시간과 공간, 관계 속에서 딱 고만큼만, 아스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꿈틀거릴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히 흐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바다에 이르러 다시 돌아갈 때까지도 늘 흘러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사랑은 삶과 더불어 삶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까지도 흘러갈 것입니다. 생명이 모두 끝날 때까지도 그 사랑은 언제나 추억으로 남아 흘러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나의 사랑이 흐른다면, 너의 사랑이 흐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사랑도 흐른다면, 너의 사랑도 흐른다면, 우리의 사랑이 흐른다면, 또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우리의 사랑이 조금은 더 여유롭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더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집착과 속박에서 더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나와 너, 우리의 삶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더 잘 용서하고 더 잘 화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더욱더 잘 사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삶, 생각과 마음을 챙길 뿐이면서 상대의 삶, 생각과 마음을 바라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억지로 붙잡고, 제멋대로 사랑하면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굳이 소유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굳이 잡고자 하지 않는다면, 집착하지 않는다면, 얽매이지 않는다면 더 잘 사랑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함께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욕심을 부리고 갖고자 한다면, 당장은 가질 수 있는 듯해도 절대 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고, 사랑이기에 이내 잃어버리고 말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잡을 수 있다면야 잡겠지만, 잡을 수 없기에 이내 잃어버리고 말지 않겠습니까? 기어코 잡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억지로 막고자 한다면, 바로 그것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 되지 않겠습니까?

함께 행복하고자 한다면, 사랑하고자 한다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라지 않고 억지로 붙잡지 않고 오직 사랑할 뿐이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본질이 희생이듯 말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머물며 서로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자체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자유로움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남편도 모두 자유로움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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