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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며느리-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인간이고, 여자이다.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9.09.24 17:46|(180호)

지난번은 ‘시어머니 죽이는 밤’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에서 가능한 것은 “오직 나의 마음을 바꾸는 일뿐이다.”라는 이야기도 함께 했습니다. 함께 행복하고자 한다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 바꾸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오직 사랑할 뿐, 멀지 않은 곳에 머물며 서로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소유가 아니라 희생이듯 말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생각과 마음만을 바꿔서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돈 들이지 않고 삶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모두 집착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부부의 삶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가족의 핵심인 부부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준비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인간이고, 여자이다.

그림 / 송 영 주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화학과졸업sfineart@naver.com

 

옛날, 어느 마을에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하고 며느리하고 나들이를 갔습니다. 얼마를 가니 시냇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냇가에 도착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냇물이 깊은지 얕은지 몰라 한동안을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한 건장한 젊은이가 다가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잘됐다’ 싶어 다짜고짜 냇물이 깊어서 우리는 건너가기 어려울 것 같으니, 우리를 건네줄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그거야 어렵지 않으니 건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먼저 건네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먼저 며느리를 업고 냇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거 참. 느닷없이 젊은이는 냇물 한가운데 있는 펑퍼짐한 바위 위에 며느리를 눕혀 놓고 한바탕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야, 며늘애야. 며늘애야. 돌아누워라. 돌아누워.”
“….”
“야, 돌아누우란 말이다. 돌아누워.”

그 젊은이는 그러든지 말든지 느긋하게 일을 다 마치고 마저 냇물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건너와 이번에는 시어머니를 업어 냇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젊은이가 냇물 한가운데에 이르자, 바로 그 바위 위에 시어머니를 눕혀 놓고 또 한바탕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시어머니는 돌아눕지도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를 보고,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습니다.

“흥, 날 보고는 돌아누우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더니, 자기는 왜 돌아눕지 않고 가만있는 거야.”“….”
“흥. 나한텐 그렇게 소리소리 치더니, 원.”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다 건너올 때까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계속 투덜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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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짧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즉 시어머니도 인간이고 여자라는 관점입니다. 어머니이기 전에 인간이고 여자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며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특히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기에 가지는 본능적인 욕망은 누구나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시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여자이기에 본능적인 욕망을 언제나 갈망하며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인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항상 채우지 못한 욕망에 목말라 합니다. 물론 성적인 욕망뿐만은 절대 아닙니다.

더군다나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못합니다. 늘 자신의 채우지 못한 욕망을 이기적으로 추구하곤 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마음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급급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알면서도 자신을 보호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오히려 뻔뻔스런 공격을 해대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잘잘못을 따지고, 상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모두 그렇습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인간이 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도 모두 같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생명의 속성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이를 “사람을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그의 단편소설에 담았습니다. 즉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핌과 배려, 베풂과 나눔 등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들은 모두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삶을 살고 싶게 만듭니다.

그래서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선하고 참된 마음이 마음 깊은 곳에 깃들어 있지 않은 인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경우 대부분에는 분명한 이유가 숨겨져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만이 아는 삶의 이유가 분명히 있기 마련입니다. 마음속 깊은 상처가 있을 수 있고, 고통스러움이 있을 수 있고,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삶을 힘들게 하고, 자신을 옭아매 결국 자신을 혐오하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이 삶을 부정하고, 자신에 대한 질책, 비난, 심지어는 학대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주체할 수 없이 타인에게 향해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이유 때문에, 그 아물지 못한 깊은 상처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참되고 선한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어렵고 힘들게 합니다. 불편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불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상대가 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살면서 자신의 본래의 마음을 잊은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사는 것입니다. 참되고 선한 자신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기에 잠시 묻어 두고 애써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단정하기 전에 그렇게 된 이유를 궁금해 하며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의 삶과 상처, 부끄러움과 두려움, 고통과 한스러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부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상대가 너무나 부럽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부러울 것입니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은 자연스레 누린다면, 이 또한 부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차갑고 매정하게 변해 버렸던 것입니다. 사사건건 ‘이중잣대’를 들이대면서 괜스레 시비를 걸어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급기야 화를 내며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올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도 같습니다. 며느리도 같습니다. 여자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누구나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가지는 같은 욕망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 하지 못한 것, 받고 싶었던 것, 가지지 못한 것, 주고 싶었던 것, 줄 수 없었던 것 등이 각자마다 있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마음껏,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꾹꾹 눌러 참았을 겁니다. 삶은 그때도 호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또 그때대로 어렵고 힘든 삶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욕망을 실현시키지 못했을 때는 누구나 힘겨운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같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실현할 수 없었다면, 자신의 처지나 입장에서는 절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좌절감은 상처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게다가 그런 아쉬움마저도 풀지 못하고, 쌓이고 쌓여 불만이 되었을 것이고, 이 불만이 또 쌓이고 쌓여 좌절감을 거치면서 당연히 더욱 큰 상처가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세월을 따라 그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쌓이고, 그래서 또 꾹꾹 눌려져 그 상처가 결국은 한이 되고 마음의 병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아쉬움과 불만이 되고, 상처가 되고, 한이 되어 꾹꾹 눌려진 채로 방치되어 마음의 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면서도 참고 지냅니다. 사실 참고 또 참았을 수밖에 다른 수가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을 뿐입니다. 그냥 그렇게 또 살아왔을 뿐입니다. 비틀어지면 비틀어진대로 자신과 세상을 보며 그냥 그렇게 살아왔을 뿐입니다. 아마도 지금에 와선 꺼내 볼 용기마저도 없어져 버릴만큼 멀리 와버렸을 겁니다. 무감각해질 만큼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상처와 한이 되었던 자신의 욕망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느꼈을 겁니다. 불쑥불쑥 머리를 쳐들고 자신을 욕망의 도가니에 쳐넣을 때도 있어 순간 당혹스러웠을 때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더욱 부러워졌을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그 부러움이 시기와 질투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시어머니와 같은 말을 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몸짓도 닮아 버렸습니다. 자신은 그래도 다르다고 하면서도 무진장 노력한다고 했지만, 막상 닥쳐 되돌아보니 역시나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은 그래도 그 시절의 시어머니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는 자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젠 우리가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강하게 마음을 먹어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질곡과 그 소용돌이에서 이젠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합니다.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심지어 남편이든, 자식이든 서로의 욕망을, 그리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의 삶에 의해 비롯되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용서해야 합니다.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연민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우리 삶의 질곡과 그 소용돌이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이 아마도 우리 삶의 질곡과 그 소용돌이를 영원히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가족은 사랑이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곳, 현재 나의 삶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생각과 마음만 살짝 뒤척이면 됩니다. 계곡을 따라 바삐 흐르는 물처럼 쉴 새 없이 우리의 삶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멈춰 멍하니,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기엔 삶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때가 바로 ‘가족이, 삶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할 때입니다. 이전의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도, 슬픔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미움도 또 다른 삶의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여 용기를 갖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사랑으로 행복으로 올 것입니다. 가족이 있기에, 사랑하기에 반드시 되돌아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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