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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
음영철교수 | 승인 2024.06.11 17:55|(295호)

<편집자 주> [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을 시작하며

음영철 교수는 횡성 사람으로 현재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 교수는 “어쩌다가 대학물을 먹게 된 이후로 글과 인연을 맺으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짧은 인생을 덧없이 살다 가기 마련이건만 대한민국 곳곳이 박물관 아닌 곳이 없기에 부족하나마 발끝을 닿는 곳의 이야기를 문화기행으로 담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퇴직 후 다시 횡성으로 돌아오겠다는 그와 함께 우리의 삶 속에 담겨 있는 문화 이야기 여행을 떠나보자.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강원도에는 명승고적이 차고 넘치지는 않으나 보석처럼 빛나는 곳이 많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해마다 9월이면 이효석의 메밀꽃을 보러 봉평엘 가거나 눈부신 영월의 봄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청룡포를 찾아간다. 높은 산길을 넘노라면 절로 부르게 되는 아리랑의 고장 정선은 또 어떠한가? 예나 지금이나 강원도의 자연은 아름답고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옛것이 그래도 많이 남아있어 좋다.

햇살 따뜻한 5월, 대학원생 제자 네 명을 태운 나의 애마는 내린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강릉 오죽헌으로 달려간다. 예전 같으면 한계령이나 미시령 고개를 넘어 속초에서 강릉으로 가야했지만 2017년 6월 30일 인제양양터널이 개통된 이래로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가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미시령 방향으로 길을 잡고 가기도 한다. 멀리 동해가 보이고 우측으로 울산바위를 마주하면 먼 길을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애마는 드디어 강릉 오죽헌에 도착했다. 이곳에 가면 오만오천원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오죽헌을 찾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신사임당을 염두에 두고 방문한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가면 신사임당보다는 율곡 선생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오죽헌의 주인은 누구일까? 500년 전에 태어나 50년 남짓 인생을 살다 간 신사임당(본명은 알 수 없고 사임당은 당호(堂號))은 뛰어난 ’화가’인가? 아니면 훌륭한 ‘어머니’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오죽헌에 가면 누구를 먼저 만나고 싶은가?

500년 풍상을 견뎌낸 오죽헌은 세월을 비켜 가기나 한 듯 건재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신사임당(1504~1551)은 어떤 사람인가? 지난 5세기 동안 신사임당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몇 년 전에는 최고의 고액권인 오만원권에 들어갈 인물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사임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신사임당은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사임당이 역사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산수화를 잘 그린 화가의 이미지였다. 사임당의 산수화는 16세기 전반기에 조선의 지성들로부터 크게 호평을 받았다. 글씨와 시문으로 이름을 날리던 소세양(蘇世讓)은 사임당의 산수화에 2편의 제사(題辭)를 썼다(이숙인, <신사임당: 서인-노론의 성모(聖母) 프로젝트>). 소세양 외에도 당대의 많은 문인들은 시를 통해 신사임당의 그림 솜씨를 고평하였다. 특히 포도와 산수화를 잘 그려서 안견의 다음 가는 화가로 유명했다. 신사임당의 대표작으로는 <묵포도도>, <이곡산수병> <초충도>가 있어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신사임당 사후의 평가는 어떠한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신사임당은 아들 율곡과 함께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서인(西人) 김장생(金長生)은 신사임당을 화가가 아닌 ‘현룡(現龍)을 잉태한 어머니’로 사임당의 이미지를 바꾸려 하였다. 김장생의 <율곡이선생행장(栗谷李先生行狀)>에 따르면 신사임당은 “타고난 바탕이 매우 남달라 예(禮)에 익숙하고 시(詩)에 밝아서 옛 여인의 규범을 모르는 것이 없었다.”라고 썼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김장생이 율곡 이이를 서인의 영수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화가 신사임당을 집단기억에서 망각시켰다는 사실이다. 신사임당의 여러 모습 중에서 유독 화가 혹은 예술가의 이미지를 지우고 예와 규범을 내세운 것이다. 김장생이 만든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송시열의 유교적 신사임당, 18세기 성공한 자녀 교육자 신사임당, 개항 이후의 현모양처 신사임당, 1970년대 국가 영웅으로서의 신사임당으로 이어진다(김경래, <‘만들어진 신사임당’ 만들기>).

제자들과 함께 수업의 일환으로 ‘문화기행’을 하다 보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현재 우리의 정체성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각기 상이한 모습으로 재현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재현 방식이 특정한 이념과 단체들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사임당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는 양면적일 수밖에 없다. 독자 여러분은 율곡을 둔 어머니로 신사임당을 기억하고 싶은가? 아니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의 화가로 기억하고 싶은가? 우리 시대에 신사임당의 생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만을 확대 재생산한다면, 여전히 우리 시대는 조선 중기의 남성들이 만든 여성상에 갇혀있는 셈이다.

삼육대글로벌한국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문화답사지로 오죽헌을 빙문히여 기념사진을 남기다

신사임당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답사 일행은 오죽헌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오죽헌은 지은 지 500년이 넘은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건축사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서 1504년에 신사임당이 태어났고, 22년이 지난 1536년에 율곡 이이도 출생했다고 한다. 건물 주변에 검은 대나무를 볼 수 있어 오죽헌으로 알려진 이 건축물은 이른 아침인데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문화해설사의 육성만이 조용한 가운데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오죽헌 안채 깊숙한 곳에 신사임당의 영정이 있었다. 멀리서 찾아온 방문객을 인자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안주인의 전형이란 듯이 온화한 느낌을 준다. 오죽헌 주변에는 매화나무와 배롱나무가 600년이 넘는 풍상을 겪으면서 녹색 옷을 입고 서 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율곡매이다. 오죽헌 쪽으로는 고목(枯木)이 되었지만, 담장 쪽으로는 녹색 잎이 돋아나 있다. 율곡매가 오랜 세월 죽지 않고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문화해설사는 율곡매 겉모습과 달리 안쪽으로는 속이 비웠다고 말한다. 죽는 날까지 채우려고만 하는 나에게 율곡매는 한 수 가르쳐준다. 붉은 꽃을 피운다는 배롱나무는 때가 일러서인지 잎만 무성하다.

오죽헌을 뒤로 하고 일행은 어제각(御製閣)으로 향하였다. 어제각은 1788년에 호학군주인 정조가 율곡 선생이 쓴 <격몽요결>과 어렸을 때 율곡 선생이 사용하던 벼루를 직접 보고 별도의 집을 지으라고 명한 데서 유래한 집이다. 그곳에 가면 <격몽요결>과 벼루 뒷면에 새긴 정조의 ‘어제(御製) 어필(御筆)’을 감상할 수 있다.

무원 주자의 못에 적셔 내어 涵池
공자의 도를 본받아 象孔石
널리 베품이여 普厥施
율곡은 동천으로 돌아 갔건만 龍歸洞
구름은 먹에 뿌려 雲潑墨
학문은 여기 남아 있구려 文在慈

‘호사유피인사유명’이라 했던가. 율곡 선생도 정조 대왕도 떠나갔지만 그들이 남긴 벼루와 글은 남아있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담장 밖으로 뻗은 율곡매의 푸른 잎은 바깥 세상이 궁금하여 고개를 내민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율곡기념관이다. 들어오는 입구에는 신사임당의 그림 <초충도병풍>과 <수박과 석죽화>가 전시되어 있다. 이어서 율곡 선생이 지은 <율곡전서>와 이매창의 <매창화첩>, 이우의 <옥산화첩>이 배치되어 있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율곡기념관에 걸맞은 전시 구성이다. 율곡 선생을 기념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율곡 선생이 맨 앞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화재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율곡기념관을 나오면서 강릉 오죽헌 답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왕 강릉에 왔으니 점심으로 회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제자들 반응이 좋다. 문화답사는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든다.

 

음영철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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