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종훈명리학자/ 한국역리학회중앙학술위원 |
우리가 흔히 세월을 낚는다고 할 때 강태공을 많이들 인용한다. 70여년을 하세월하다 문왕을 만나 주나라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워 일등 공신이 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고대의 중국이 주나라로 통일된 이후로 그 공을 인정받아 제나라 제후로 봉해지니 제대로 대어를 낚은 셈이다.
본래 이름은 여상인데 오늘날 우리한테는 강태공. 또는 태공망으로 더 알려졌다. 태공은 문왕을 지칭하므로 문왕을 바라고 기다렸다는 의미의 태공망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그 이후 제나라 제후가 되어서도 제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주나라 제후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로 유지시켜 놓은걸 보면 낚시를 위해 70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래전 한 손님으로부터 상담을 받았다. 사십이 다된 아들이 하는 일 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 또래의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아들딸 낳고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자기 아들만 무위도식하는 꼴을 보자니 마음고생이 크겠다싶어 위로한답시고 들려준 이야기이다.
앞으로도 한 십년은 마음고생을 더 하셔야 하겠는데 앞으로 아드님 일에는 신경을 끄시고 사모님 일상을 찾으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낯빛이 싹 변하는데 그때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그렇다면 그냥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하고 되물었다.
“아니! 바라보지도 말고 어떠한 기대도 하지 말고 그냥 놔두고 사모님의 일상이나 잘 찾으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십년 후쯤이면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잘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그러자 절망적 울음이 터졌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남들은 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잘하고 결혼도 해서 평범하게 잘 살아 가는데 나는 무슨 죄가 많아서”라며 통곡을 했다.
“내 친구들은 자식 자랑에 손주 자랑까지 늘어졌는데 나는 무슨 놈의 팔자냐”며 한참을 흐느끼다 말을 이었다. 뒤늦게 얻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그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대학공부까지 시켰단다.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은 지라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저렇게 빈둥거리고만 있으니 어떡하냐고 하소연이다. 나도 더 이상은 해줄 말이 없어서 사람은 다 때가 있다고만 하고서 상담을 끝냈다.
그러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그 사람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너무 안타깝게 마무리된 상담이기에 금방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 1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여 내가 서둘러 다그쳐 물었다. 그랬더니 그 지인의 말이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던 그 집 아들이 몇 년 전부터 자기 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단다. 지금은 상당히 수완도 발휘하고 해서 자기 집에서 생산된 농산물 외에 그 동네에서 생산된 물량 일체를 감당하여 그 동네에선 유명인사가 됐단다.
지금은 베트남 색시한테 장가도 들어 세 살배기 손주도 자기 부모님한테 안겨드려 그때 그 당시 나한테 하소연 하시던 그 사모님은 손주 보는 재미에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 당시 칠순을 바라보던 나이라 “내가 죽기 전에 손주나 볼 수 있겠수?”라며 문을 나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네. 그러믄요! 걱정 마세요. 증손주도 보실 걸요.”
우리는 본의 아니게 주변인들로부터 비교 평가되고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예나 지금이나 평판이 중요했었음이라. 그 평판 뒤에 가려져 자괴감에 숨죽이고 살아가는 수많은 중생들도 조금은 생각하며 살아가는 오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모님 이제 행복하시죠? 꼭 증손주까지 보시게 오래오래 사세요!”
김종훈 dadamclyn@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외협력관, 6년 전 논란을 다시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