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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늙어갈 뿐 절대 낡을 순 없다.(2)-고령화에 직면하여 지혜로움에 이르는 노(老) 선생의 길을 묻는다(2)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20.11.04|(210호)

<지속가능한 횡성을 위해>(4) 초고령화시대의 해법

장만식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 졸. 문학박사. 현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L(문학)여행힐링연구소 소장, 문학치료학 전공.

 

 

 

‘흰머리 지게’라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현대판 ‘고려장’의 횡횡한 이야기가 들리는 요즘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다.

“옛날, 기로(耆老)라는 이름의 나라에 몇 년 동안 계속 흉년이 들었는데, 어느 해는 또 큰 물난리까지 나 농사지은 것들을 다 못쓰게 되었다. 나라에서는 그때마다 기우제며, 천제를 지냈지만,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삶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일흔 살 넘은 노인을 산 채로 산속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생겼다. 그날도 어떤 사람이 일흔이 넘은 아버지를 지게에다 짊어지고 집을 막 나서려고 했는데, 그 사람의 아들도 할아버지랑 꽃구경하러 산에 간다는 말에 따라 나서겠다고 졸라 하는 수 없이 데리고 갔다. 한참을 올라가 노인을 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큰절을 한 뒤 아들에게도 할아버지에게 큰절을 하라고 했다. 그런 후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급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아들이 갑자기 그 사람의 손을 잡아끌고, 지게를 가지고 가야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아들도 아버지가 일흔 살이 되면 이 지게로 아버지를 짊어지고 오려고 그런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물만 아래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자연이기에 삶도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 과거가 현재로, 현재가 미래로 쌓여 간다. 생명도 부모로부터 자신에게, 자신으로부터 자식으로 이어지고,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의 모든 것도 이러한 섭리를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초고령화 시대에 직면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자신의 멋대로, 입맛대로, 편한 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을 핑계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합리화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기에 우리는 초고령화 시대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 공동체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진솔한 성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나이들고 늙고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흰머리와 지게’ 이야기에서처럼 첫째,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그리고 정신이 물처럼 아래로 흐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처럼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우리의 목을 조르고 비수로 꽂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애써 외면하고 싶고, 잠시 피할 수는 있어도 결국 모든 것이 자신에게 똑같이 아니면 그 이상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만 한다. ‘흰머리와 지게’ 이야기에서처럼 아버지가 할머니를 버렸듯이 자신도 아들에게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당연한 우리들의 삶의 이치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경각심을 갖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연금을 준비하듯,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만 한다. 우리의 공동체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 그리고 정신을 바로 잡아 고취해 나가야만 한다. 횡성군 노인체육회 회장님처럼 솔선수범하여 ‘효’를 몸소 실천하고, 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의 삶으로 본을 보여 공동체의 정신을 바로 잡아 나가야만 한다.

둘째, 우리 모두가 ‘흰머리와 지게’ 이야기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랑 중에 제일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지만, 우리가 가장 크게 느끼는 것도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당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자식 잘되면 그것으로 족한 마음이다. 당신이 배곯아도, 당신의 슬픔이 아무리 크고 괴로워도, 당신의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늘 한 곳만 바라보는 마음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배부르고, 행복하고, 평안하기 때문이다. 자식들 불룩한 배를 슬쩍 쓰다듬으면서, 뛰놀며 즐겁게 웃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쌔근거리며 자는 숨소리만 들어도 늘 그렇다. 투정도 반항도 자식 걱정에 아플 뿐이다. 그런 사랑이 어머니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나이 든 자식이 있어도 한결같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이젠 늙어 버린 나이 들어 쓸모없어진 것 같은 어머니께 어떤 마음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 우리는 핑계를 대고 귀찮아하기 일쑤다.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땐 못마땅해하고 답답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마저도 품는다. 묵묵한 안타까움으로 자식의 마음만을 헤아린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우리 모두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나의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 초고령화 시대에 직면해서는 그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공동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출산으로 인해 독거노인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는 다음의 우리나라 독거노인에 관한 두 개의 통계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 모두는 나이들고 늙고 죽는다. 더군다나 미래의 우리 현실은 아래의 통계자료와 같다.

또한, 더 나아가 우리 횡성군이 먼저 다른 지역 사람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이제는 완전히 버려야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 과거의 횡성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제2의 전라도’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야 상황과 처지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우 수세적인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이 이러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즉 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개구리의 수동적인 경계 태세이다. 그러나 초고령화 시대 청년, 청소년, 출산율 등이 점점 줄어드는 위기에 직면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이러한 태도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 공동체를 이뤄 공존과 공영의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 길이 진정으로 우리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흰머리와 지게’ 이야기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굴러온 돌’을 기꺼이 정성껏 돌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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