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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늙어갈 뿐 절대 낡을 순 없다.<지속가능한 횡성을 위해>(5) 초고령화시대의 해법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20.12.06|(212호)

-고령화에 직면하여 지혜로움에 이르는 노(老) 선생의 길을 묻는다(3)

‘늙는다는 것’, ‘늙음’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통합해 나가는 과정으로 지혜로움에 이른다는 것. 건강한 늙음, 즐겁고 행복한 늙음, 즉 궁극적으로 지혜로움을 선택해야...그것이 진정 우리 공동체 삶의 건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하는 노인의 책임과 역할

 

가지 꺾는 어머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도 ‘고려장’과 관련한 앞의 이야기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 하지만 사뭇 색다른 관점에서 중요한 교훈을 우리들에게 안겨 주기에 주의 깊게 성찰해 봐야만 하는 이야기이다. 즉 노인들이 공동체에서 감당해줘야만 할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지금 당장의 생활 속에서 정말로 노력해야만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주는 이야기이다.

“옛날, 홀어머니를 정성스레 모시고 아들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 나이가 70이 되어 노인을 산속에다 버려야만 하는 때가 왔다. 아들 내외는 그날 밤, 하얗게 새웠지만 어쩔 수 없었고, 어머니를 지게에 태우고 산을 올랐다. 어머니는 산을 오르는 내내 아들 걱정을 하면서 틈틈이 나뭇가지를 꺾어서 지나온 길에 장난치듯 던졌다. 그렇게 산속 깊은 곳까지 도착한 아들은 어머니와 음식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큰절을 올렸다. 이내 아들은 ‘길 잃어버릴 것 같으면, 꺾어진 생나무가지를 따라가라’는 말을 뒤로하고 내려갔다. 어두운 산길에도 생나무가지가 간간이 놓여 있어서 길을 잃지 않고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도저히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 내외는 횃불을 들고 산을 다시 올랐다. 아들 내외는 그렇게 완강히 버티는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내려왔다.

그런데 조심스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마을 어귀에 ‘방’이 붙었다. 당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시험하기 위해 문제를 냈는데, 그 문제는 구멍이 아홉 구비나 되는 구슬에 실을 꿸 수 있는 방법, 둘레가 일정한 통나무의 위아래를 구분하는 방법, 코끼리의 무게를 재는 방법 등이었다. ‘방’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거렸고, 해결 방법을 찾느라 머리를 쥐어짜내 보았지만,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아들도 며칠을 생각해 보던 참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숨어 있는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주 간단하다면서 답을 말했다. 다음 날 아들은 관가에 가서 사또께 말했고, 사또는 임금님께 전했다. 임금님께서도 무릎을 딱 치며 “옳거니”라고 하면서 기뻐했고 큰 상을 내리겠다고 아들을 불렀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때, 소원을 말하라는 임금의 말에 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 달라고 말했고, 그러자 임금이 ‘노인을 버리는 법’을 폐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엔 처음과 끝이 없다. 다만 구분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늙는다.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으면 당연히 죽는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인생은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 한 구간을 잠시 머물러 시간과 더불어 흘러간다. 그렇지만 ‘늙음’에 대해 누구나 똑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다. 똑같은 삶의 과정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자신이 늙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같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과 태도에 따라, 그리고 삶의 경험에 따라, 깨달음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늙는다는 것’과 ‘늙음’에 대한 모든 생각과 마음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를 무시할 순 없지만, 지위와 역할에 따라, 경험에 따라, 배움에 따라, 깨달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초등 1년생보다는 초등 6년생이, 고등 1년생보다는 고등 3년생이, 대학 1년생보다는 군 제대 후 복학생이, 막내보다는 첫째가, 그리고 경험이 적은 사람보다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배움이 많은 사람이 깨달음이 많은 사람이 등등 더 ‘늙었다’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이 들어 ‘늙는다’는 것과 ‘낡는다’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낡는다는 것’, ‘낡음’은 세월이 지나 닳아 쓸모없어져 버리는 것이나 시대에 뒤떨어져 새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 ‘늙음’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통합해 나가는 과정으로 지혜로움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늙음’과 ‘낡음’에 대해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특히나 ‘낡음’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늙었다고 하는 것에는 절대 동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마법처럼 ‘낡아’ 버리는 것이 바로 그러한 ‘늙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무덤으로 성큼 다가가는 그런 ‘늙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운당 우탁 선생의 시조처럼 ‘늙음’과 더불어 ‘낡음’이 확 다가와 버리기 때문이다.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 막대로 치려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그러므로 늙음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오며, 시기도 그 충격이나 영향의 수준도 다르게 다가온다. ‘늙음’을 부정적으로 보면 한탄, 외로움, 약함, 병듦, 쓸모없음, 무기력함, 죽어감 등 좌절감이나 부정적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특히 죽음이라는 것에 절실히 직면하기 시작하는 인생의 황혼기라 하는 65세 이후의 노년기에는, 신체적인 쇠퇴와 사회적 직위나 직업으로부터 은퇴, 형제자매나 친한 친구나 배우자의 죽음 등으로 인하여, 인생에 대한 무기력감을 느끼는 일이 많아진다. 특별한 경우에는 극단적인 상실과 절망에 맞부딪히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외로움과 소외감, 우울증, 좌절감, 상실감, 증오, 원망, 분노, 초조, 두려움 등과 결합된 문제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말했듯이, ‘늙음’을 이를 인생의 완성을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노년기에 들어서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생애가 가치 있는 삶이었는지를 음미해 보기 마련인데, 이 시기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거나 성찰해 보며, 마지막 평가를 하는 숙고의 시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마무리 단계로서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삶과 자신의 삶 속의 모든 것들과 화해하고 화합해 나가는 소중한 시간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응하여 최선을 다해 잘 살아왔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럴 때 스스로의 삶에 대한 충족감과 만족감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어르신들의 발을 씻어드리며 공경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자료사진/2018년 노인의 날 기념 둔내면 어르신 효축제

이렇듯 ‘늙음’은 사실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끼게 되면, 인생에 대한 관조와 통찰, 충족감, 초연함 등과 함께 참다운 지혜와 경륜을 획득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지혜를 통해 앞의 시기 동안 이룬 소산을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며, 마침내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인생철학으로 거듭남을 이루어 나가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늙음’은 ‘낡음’과는 전혀 다르다. 나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의 ‘노(老)’ 는 더이상 낡음이 아니다. 늙음이다. 노사(老師), 즉 ‘노(老) 스승’, ‘노(老)선생’, 장로(長老)의 길이다. 그리고 그것들 또한 우리들 자신의 선택이다. ‘늙음’을 선택하든 ‘낡음’을 선택하든 오로지 우리들 자신의 선택이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늙음’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완성은 누구나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늙음, 즐겁고 행복한 늙음, 즉 궁극적으로 지혜로움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 우리 공동체 삶의 건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하는 노인의 책임과 역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지꺾는 어머니’ 이야기에서의 어머니와 같은 지혜로운 그런 노인의 표상은 우리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하고, 공영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 어르신이라면 단지 아랫사람들에게 대접받기를 바라고, 의존하면서 살아가기보다는 스스로 힘과 지혜로움을 간직하여 자립, 자활의 길을 가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공경을 받을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혜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체력 단련을 위한 운동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남의 힘과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강한 의지를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 길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과 정성, 흘린 땀은 오롯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보람으로 공동체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더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지금 당장의 자유와 쾌락을 위해 위에서 말한 것들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 공동체 삶의 건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분명히 찾아야 할까요? 스스로에게도 다시 한번 더 묻는다. 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당연히 나는 건강한 늙음, 즐겁고 행복한 늙음, 궁극적으로 지혜로움을 선택할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러한 삶의 지향과 목적을 뚜렷이 세워 살아갈 것이다. 선한 지향을 꾸준하게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보다 그 어느 것도 우리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러할 때, 지금 이 순간의 삶의 건강함도, 자유와 행복도, 즐거움도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나 혼자만의 즐겁고 행복한 삶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횡성군 노인체육회 회장님의 말씀처럼 나이들어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절대 스스로 순순히 낡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죽음이고 무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노인복지 실현을 추구하는 우리 L(문학)여행힐링연구소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장만식저자 이력 : 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 졸. 문학박사. 현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L(문학)여행힐링연구소 소장, 문학치료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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