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명리학자. 한국역리학회 중앙학술위원

요즈음 날씨가 갑자기 싸늘해지는 게 오싹한 느낌이다. 시골에선 가을추수가 끝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김장이다 뭐다 해서 겨우살이를 재촉하는 한파가 몰아친다. 이때쯤이면 가는 곳마다 후한 인심과 함께 먹을 것 또한 넘쳐나 넉넉함을 만끽하던 계절이었다.

역시 코로나19인가? 김장을 하는 모습도 여느 해하고는 다른 모습이다. 연일 쏟아지는 경고 메시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젠 주민들 모두가 자발적 거리두기가 습관화된 모습이다. 덕분에 김장날 기대했던 돼지고기 수육보쌈은 적어도 올해만큼은 날아간 것 같다. 이때쯤 가족친지들이나 혹은 이웃끼리 옹기종기 함께 모여 벌어지던 파티였는데 어느새 조용히 끝나버린 것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고향에 사는 종손인 조카한테서 전화가 왔다. 11월 하순에 예정되었던 시제를 올해는 문중사람들의 모임 없이 조용히 자기혼자 지낼테니 오지 말라는 전화였다. 내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서글픔이 몰려온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지들이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얼굴도 보고 안부도 묻고 하는 유일한 기회인데 이것마저 박탈당한 기분이라 더욱더 우울하다.

하지만 어쩌랴? 뉴스에서 연일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수를 보면 이때쯤이나 누릴 수 있는 돼지고기 수육도, 친지들과의 회포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언제부터인가 이웃들이나 친지들로부터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젠 고립된 생활이 이번 사태로 인해 아주 고착화 되는게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지난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예견되었고 여러 사례들에서 현실로 다가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사방에서 압박되어지긴 처음이라 두려움이 더욱 커진다. 몇 년 전 필자는 도심 원룸가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다. 그 주변에 필자도 가끔 이용하는 분식집이 하나 있었는데 저녁 식사때 쯤이면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김밥을 사가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저렇게 김밥 두 줄로 그것도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메어왔다. 그나마 우리 세대엔 모든 것이 부족했을지언정 하루해가 지면 온가족이 하나둘 한 지붕 밑으로 모여들어 먹고 자고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행복감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은 나홀로 가정이 40프로가 넘는다니 무엇을 위해 사나싶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들놈과 떨어져 살은 지가 오래이다. 가끔씩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게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까이서 살면 어떻겠냐고 해도 싫단다.

오늘따라 비도 촉촉히 내리고 해서인지 사람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옆에 있는 집사람보고 배추전이라도 하나 부쳐보라고 부탁했다가 이내 취소했다. 가족이 없으면 이웃이라도 불러서 같이 먹어야 제 맛인데 부부간 단둘이 앉아서 무슨 맛이랴!

나이 탓인지. 계절 탓인지. 자꾸만 서글퍼지는 게 지나간 추억만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그랬던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사노라고! 지금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 그렇게 현실을 피하고만 싶어 도망다니듯 살아왔던 그 시절이 지금은 행복으로 다가와 미소를 짓게 될 줄이야!

몇 년 전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기위해 줄을 서야했던 그 젊은이들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행위들이 그리운 추억이 되어 미소짓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김종훈  dadamcly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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