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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명리학자. 한국역리학회 중앙학술위원 |
선생님! 산에는 왜 그렇게 자주 가세요?
내가 산에 기도하러 간다는 말에 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의 반문이었다. 갑자기 대답이 궁색해진 나는 “그냥 뭐”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자기를 위한 기도도 해줬으면 하는 눈치다. 내가 그런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요즘처럼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구국 기도라도 해서 힘겨운 국민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부처님. 예수님 이상으로 유명인사가 될 텐데... 어쨌든 차일피일 미뤄왔던 기도 여행을 결심하고 나니 갈 곳이 막막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거리두기 다 뭐다 해서 사람들 간의 접촉도 피해야 하고 여행도 삼가야 하는 이 시국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에 갔을 때까지만 해도 침낭을 안식처 삼아 노숙도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더욱 추워진 날씨 탓에 바람이라도 막아줄 잠자리가 필요하다 보니 누군가의 연줄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괜한 민폐나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운 부담으로 안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간 곳은 태백에 있는 산사였다. 그곳 주지스님 하고는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터라 설마 몇 년 만에 찾아온 지인을 내쫓기야 하랴 싶어 무작정 예고도 없이 찾아갔다. 거의 산정상 가까이 올라가야 있는 데다 이십 리 안에는 인가조차 없는 곳이기에 그곳으로 정했다.
예상했던 대로 너무나도 조용하고 호젓한 외진 곳이라 안심이야 됐지만 혹여 스님께서 출타하신 건 아닌지 아니면 갑작스런 방문을 스님이 싫어하시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레 스님 방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스님께서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시던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걱정했던 모든 게 한낱 기우였음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인사치레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마자 스님의 말문이 터져 나온다. 시국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지내왔던 당신의 사생활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마치 시집간 딸이 오랜만에 친정집에 와서 친정엄마를 만난 듯 주절댄다. 간신히 틈을 이용해 여기서 며칠 신세 좀 지겠노라 말씀드렸더니 아예 같이 살자고 하신다.
그동안에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러실까 내 마음 한 켠이 저려온다. 워낙 연세도 많으시지만 2년여 만에 보는 절간 분위기나 스님의 모습이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음식이나 모든 게 풍족해 보였을 뿐 아니라 스님도 평생을 수행해 오신 분답게 꼭 해야만 하는 말만 하시는 그런 분이었는데 왠지 이번엔 많이 낯설기만 하다.
배고픔에는 임금님도 머리를 조아린다고 했던가. 코로나 사태 이후 이곳 산사에도 시주물이 뚝 끊겨 앞으로 절간 살림살이가 걱정이란다. 스님 말씀이 IMF사태에도 넉넉했던 절간 살림이 지금은 바닥이 나서 불안하단다. 가만히 듣고 보니 이 정도일 줄 모르고 빈손으로 찾아온 내가 부끄러웠다. 평생 도를 구하시는 분이 먹을 쌀만 있으면 됐지 하고 농을 던지고는 간단하게 저녁 공양을 함께 했다.
저녁 공양 뒤에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스님의 긴 하품과 함께 끝이 났다. 주무시는 스님을 뒤로하고 나는 법당 뒤에 있는 토굴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고즈넉한 어둠과 쏟아져 내리는 별빛과 코끝을 스치는 싸한 찬 기운과 함께 명상에 잠겨본다.
그러고 있노라면 천지인이 삼위일체가 되어 심신과 영혼을 씻어내듯 뜨거운 전율이 느껴지며 잠시나마 나 자신을 잊음으로 일체의 근심 걱정을 덜어보는 체험! 이것이 ‘나의 기도’이다. 세상을 구한다거나 이웃을 구하거나 부와 권력을 구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의 심신과 영혼을 구하는 것만이 나의 구도행인 것이다.
김종훈 dadamcly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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