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의 고령화, 경쟁브랜드의 거센 추격, 수입쇠고기와의 경쟁으로 횡성한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철희 횡성한우 승계농업인 연구회 회장을 만나 횡성에서 대를 이어 횡성한우를 키우는 이야기와 희망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
-언제부터 소를 키우게 됐나
“원래 아버님이 소를 키우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아버님 일을 도우면서 소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군대 제대 후 타지에서 다른 일을 하다 97년에 고향에 돌아와 장사를 했다. 그러다 2002년에 (소 사육 규모가) 40마리 정도로 늘어 아버님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아버님을 도와 본격적으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침 저녁으로 소밥만 주는 목부 일을 하다가 2009년에 축사 한 동을 지으면서 사육하는 소가 80마리 정도로 늘었고 이때부터 경영에 뛰어들게 됐다.”
-소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저는 어려움을 잘 못느꼈다. 오히려 아버님이 소값 파동을 두 번 정도 겪었고 90년대 후반에 암소 고급화, 수소 거세 사업 등을 도입하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없어 많이 고생하셨다. 제가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한 2009년 쯤에는 확실히 여건도 좋아지고 자리매김해서 아버님에 비해 어려움이 많지 않았다.”
-아버님과 함께 소를 키우면서 애로점이 있었다면
“아버님과 저의 생각이 틀린 게 가장 큰 애로점이었다. 특히 사양관리 부분에서 많이 부딪혔다. 저는 하루 세 번 소밥을 주고 싶은데 (아버님은) ‘그런 거 줄 새가 어딨냐’ 하시고 또 고급화를 위해 양질의 사료를 먹여야 하는데 ‘그럼 뭐가 남냐... 이익도 생각해야지. 그냥 볏짚 먹여도 되지 않나’ 하셔서 한 5년 정도 부딪혔던 것 같다. (아버님을) 이해시키는 데는 결과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 부자간에 사양관리에 의견 차이로 많이 부딪혔는데 결과물로 어떻게 보여줬나
“그 전에는 소를 도축해 나오는 순수 살코기 양인 도체중이 430kg이었고 1등급 출현율이 많았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됐다. 그런데 제가 교육을 많이 받고 제 의지대로 사양관리를 하고 좋은 사료를 급여하고 했더니 평균 도체중이 480kg, 1+이나 1++ 등급 출현율이 75% 정도로 크게 향상됐다. 이런 결과물을 아버님이 보시면서 그때부터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라고 말씀하셨고 부자간의 의견 다툼도 없어졌다.
저 역시 사양관리로 결과물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하고 교육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어 교육이면 교육 학교면 학교 빠지지 않고 다녔다. ”
-최근에 횡성군에서 ‘횡성한우승계농연구회(이하 승계농연구회)’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을 맡았는데 승계농연구회에 대해 말해 달라.
“지역 형님들이 제게 횡성한우가 탑브랜드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데서 많이 추격하고 있는 바람에 격차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니 옛날 한우연구회처럼 연구를 하는 조직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래서 횡성군에 연구 모임을 만들면 지원해줄 수 있나 물었다. 군에서 그런 모임은 지원이 가능하다 해서 젊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눠 연구 모임을 만들게 됐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연구회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돈 더 많이 벌자는 데 설립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향후 닥칠 위기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 같은데 지금보다 더 혁신된 사육·사양기술과 스마트팜, ICT를 접목시켜서 횡성한우를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회를 창립하게 됐다.
같은 뜻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제가 나이가 제일 연장자다. 회장은 연장자가 하는게 편한 거 같다고 해서 수락하게 됐다.”
-승계농연구회 가입조건은
“현재 회원은 24명인데 우선 전업농이어야 하고 부모에게 이어받은 사람 혹은 부모와 함께 사육하는 사람으로 한정을 두었다. 가입하지 못한 친구들이 왜 안 되냐고 묻는데 그 사람들이 좋다 싫다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향후에 좀 더 연구회가 발전돼서 다른 친구들이 가입해도 되는 상황이 되면 그때는 그렇게 하겠지만 현재는 소값 파동이 나든 아니면 더 큰 위기가 닥치든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이어갈 사람들로 구성하는 것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결정했다. 저희는 대를 이어서 소를 키우고 우리도 대를 넘겨줘야 하니까 조금 더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가진 승계농들이 선도 농가로서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도 농가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승계농연구회의 설립 목적은 연구 사업이다. 회원 개별 농가의 이윤 추구보다 연구 실험과 데이터 축적에 필요한 것을 우리가 1순위로 받아서 한다. 말하자면 선도적 실험 대상인 것이다. 이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와 지식 그리고 실패 사례를 다른 한우 농가들에게 알려서 실패를 최소화시키고 한우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 |
-그동안 군과 주민들의 지원과 배려 속에 횡성한우 산업이 성장했고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다. 이런 점에서 횡성한우로 발생된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것에 대한 생각해본 것이 있나.
“ 노동비 측정을 안하니까 소가 천만원이 됐느니 이런 소리가 나오지만 노동비를 고려하면 집집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달라진다. 그래도 이걸로 저도 먹고 살고 자식들도 먹고 사니 그만한 건 없다고 본다. 소 사육이 벌이가 되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이 소를 사육하겠나.
언론에서 한우투자펀드 기사를 봤다. 횡성한우로 발생된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방안으로 횡성에서 ‘횡성한우 군민펀드’ 형태로 시행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 펀드라는 것은 사실 일정한 자금을 조성해 투자를 하는 것인데 만약 횡성한우 군민펀드가 시행된다면 어떤 점이 좋아지고 군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간다고 생각하나.
“펀드 투자를 받는 생산농가 입장에서는 일단 자금에 숨통이 트인다. 지금도 축사는 있지만 당장 경제적 부담 때문에 소를 못넣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소 한 마리 나갈 때까지 최소 300에서 450만 원 정도 들어간다. 한 마리가 이런데 10마리 정도면 규모가 엄청 커진다.
저 같은 경우 300마리 정도 키우는데 월 2000여만 원 정도가 사료값으로 나간다. 매달 사료값 대기 바빠서 은행을 자주 간다. (펀드 투자를 받게 되면) 그런 것을 걱정 안 해도 되고 소 키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 수익도 커지고 수익이 커진 만큼 투자자한테도 그만큼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야겠지만 제 생각에는 투자자들도 연 7% 정도의 수익이 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은행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볼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도 혜택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야 투자자들도 좋아하고 투자하지 않겠나.”
-연 7% 정도면 엄청 큰 수익인데 가능한가.
“소 한 마리가 천만 원 하는 시대다. 그 정도면 제가 볼 때 소 한 마리당 200만원 정도의 이익이 나오니까 투자자에게 7% 수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횡성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소는 어떻게 키우고 있나.
“처음에는 비육우 중심으로 사육을 했다. 그런데 한 3~4년 전부터 번식우 비율을 늘리고 있다. 경매시장에서 송아지를 사와 키우는 비육우 중심의 사육은 리스크가 있다. 요즘처럼 소값이 좋을 때는 문제가 아니지만 소값이 떨어지게 되면 손해 볼 위험성이 크다.
송아지를 경매시장에서 사면 400만 원인데 내가 직접 송아지를 생산하면 180만원 정도로 비용이 줄어든다. 거기서만 200만 원 정도 수익이 생기니 소값이 200만 원 떨어져도 지금처럼 유지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비육우 6, 번식우 4 정도의 비율로 소를 키운다.
-소 키우는 게 재미있나.
“밖에 나가서 짜증 날 때가 많다. 친구들이나 집사람, 아버지하고 싸우면 짜증이 난다. 근데 소밥 주러 축사에 가서 소들을 보고 있으면 좋고 편안해진다. 제가 한 생산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는 거니까 자식이랑 똑같이 생각한다. 수정부터 새끼를 받고 키워서 팔아서 돈을 받을 때까지 내가 관리를 하니까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게 저는 너무 좋다. 물론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축으로서 그런 거다. 반려동물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힘들지 않겠나...(웃음)”
-고향이 횡성인데 횡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행기 소음, 기차 소음, 송전탑 문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간의 갈등 등으로 요즘 횡성이 시끄럽다. 그런 문제점이 있지만 살기에 적당한 동네라고 생각한다. 큰 풍수해도 없고 교통의 요충지로 밖에 나가기도 편하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적당해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최 회장은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무탈하게 아무 탈없이 어제와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소를 사육하면서 탄소 저감, 수질오염총량제 등 이런 문제로 너무 힘들고 고통받는 상황이 올 것 같아서... 그런 것만 더불어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면 저는 나름대로 성공한 사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걸 좀 더 승계 발전시켜 후대까지 넘겨주는 것이 제일 큰 목표이자 꿈이다.”고 했다. 대를 이어 횡성한우를 키우는 승계농업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 가득한 그와의 만남에서 횡성한우의 명성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조만회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외협력관, 6년 전 논란을 다시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