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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수 국문학 전공, |
통일신라 말기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이역만리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응석받이 그는 왜 낯선 타국으로 가야만 했을까. 가장 도드라지는 가설은, 재능이 탁월한 아들을 6두품의 올가미에서 벗겨내려는 어버이의 절실함이었다. 최치원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의 각오로 학문에 정진하여 빈공과에 장원급제했다. 18세의 소년급제. 초강대국 당나라로 유학한 아시아 각국의 쟁쟁한 인재들과 겨뤄 장원이라니. 하지만 그는 고달팠다. 타향에서의 고독과 변방 출신의 소외감, 고국 신라와 어버이에 대한 향수가 ‘추야우중(秋夜雨中)’에 절절히 배어있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니(秋風唯苦吟)
세상에는 날 알아주는 이 없네(世路少知音)
창밖에는 깊은 밤 빗소리(窓外三更雨)
등불 앞 마음은 만리를 달리네(燈前萬里心)
최치원은 신라로 돌아와 ‘시무10조’를 올리며 분투했으나 멸망을 앞둔 신라의 지배계급은 권력투쟁에만 몰두했다. 반란세력의 준동, 흉년과 도적떼의 창궐은 덤이었다. 백성들은 날로 피폐해졌지만 그는 무력한 6두품이었다. 소위 ‘왕따’를 당해 변두리로 전전하다 가야산 속으로 은거하더니 종적을 감추었다. 세상 더러운 꼴에 치이느니 아예 세상을 버린 것이다.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 신라도 이내 역사의 뒤안길로 소멸했다.
횡성의 재정자립도는 최하위권이고, 인구감소를 넘어 소멸위험지역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정부의 각종 지원책에 의존해 이주민 정착과 청년유입에 힘쓴다지만 그럴싸한 겉치레란 느낌은 필자만 드는 것일까. ‘개성상인도 울고 간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는다는데 토호세력의 강력한 이권만 돋보일 뿐이다. 반면 횡성의 찌든 배타성과 근거도 없는 우월감에 다친 이주민들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A씨는 10년 전부터 귀촌을 계획하고 집도 지었다. 부산에서 방어회를 직송해 대접하는 등 주민화합에 살가운 정성을 들였다. 그런 어느 날, 원주민 왈 “왜 요새는 술을 안 사느냐.”는 말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단다. 호의가 의무로 바뀐 것이다. B씨나 C씨, D씨도 대동소이한 경험을 털어놨다. 이주민들은 원주민에게 굽실거려야 당연한 일이다. 돕는다고 손 내밀면 잘났냐고 시비, 외면하면 ‘굴러온 놈’ 주제에 건방지다며 헐뜯기 바쁘다. 이래저래 어이없는 구설에 지친 이들은 아예 부락민과 단절하고 자신들끼리만 어울리기로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들끼리도 “누구는 OO리 출신이니 딴 사람이야.”라며 배척하니, 이런 용렬함에는 한숨조차 아까울 지경이다.
귀촌인 대부분은 전원생활의 로망과 인생 후반기의 평안을 기대하며 이주했을 것이다. 넌덜머리난 그들이 지인이나 다음 세대의 청년에게 횡성 이주를 권할 까닭은 없어 보인다. 십 년 이상 낙후된 행정시스템, 일부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자세, 토박이들의 오만함을 보면 신라 소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횡성의 ‘박힌 놈’들께 진심으로 빈정거린다. ‘굴러온 분’들 중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상당하다. 그들에겐 봉사나 여타 방법으로 지역 경제와 문화에 기여하려는 순수한 욕구가 있다. 대부분 기본적인 경제력도 있으니 이득에 대한 욕심도 미미하다. 그럴진대 ‘굴러온 놈’ 취급에만 골몰하는 것은 횡성소멸의 시기만 앞당길 뿐이다. 횡성한우가 아무리 맛있어도 먹을 사람이 없으면 말짱 꽝이고 ‘박힌 놈’이 아무리 잘났다고 외친들 옹졸한 꼴만 자랑하는 격이다. 당장의 고질병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횡성의 미래는 공염불이라고 시답잖게 말씀드린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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