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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 (2)박부례 할머니와 고구마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2.03.15|(0호)


“할머니! 저 오미 사는 용범이 엄마예요.” 
“어어 오미대학생이구만.” 
“아하 맞아요.”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대학생이라며 “어메, 잘 영글었네. 옛날에 이쁘더니 아줌마처럼 영글었네.” 하시며 반갑게 맞이 해주시는 박부례 할머니(82세. 공근면 오산리)는 사람 키우듯 곡식을 키우십니다, 뭐든지 정성을 들이고 풀 한포기 그냥 함부로 뽑아버리지 않으시는 할머니에게 50년 이상 됐다는 정말 소중한 물고구마를 얻었습니다. 단 맛이 있으면서도 수분이 많아 날로 깎아 먹으면 정말 맛있다는 물고구마는 요즘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는 거여서 물고구마를 얻은 게 꿈만 같습니다. 

 고구마는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얼기에, 먹으려 저장해 놨다가도 버리기 십상인데, 50년이 넘었다는 말씀에 “어머머”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방 한 켠에 보온도 잘 되고, 쉽게 꺼내 먹을 수 있게 고구마와 감자박스를 놓고 그 위에 옷과 이불을 쌓아 놓으셨습니다. 큰 고구마는 자식과 손주들이 오면 줘야지 아까워서 못준다 하시며 먹기 좋은 크기의 고구마를 한 봉지나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따로 보관해둔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고구마로 싹을 틔어 심는다고 합니다.

 고구마 하나하나 어떻게 쓰실지 미리미리 생각하시고 나눠주시는 할머니의 지혜가 50년 동안 씨앗을 갈무리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고구마 농사도 여느 분들과는 좀 다릅니다, 고구마 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고구마 밭은 마늘밭입니다. 

 할머니는 평생 기계를 쓰지 않고 호미랑 괭이로만 농사를 지으셨답니다. 호미 하나로 비알진 텃밭에 농약이나 비닐을 쓰지 않고 3~40년 전 짓던 그대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지난해 10월 넘어져서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신데도 집주변에 빈틈없이 마늘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군불 때면 나오는 재와 할머니가 모아 놓은 오줌과 갈잎, 개똥 등을 섞어 거름을 만들어 밭에 뿌립니다. 그런 다음 호미로 득득 골을 파고 비닐을 씌우지 않고 마늘을 심습니다. 마늘이 얼지 않도록 농사짓고 나온 고구마 줄거리, 갈잎 등 검불을 모아다가 덮어 놓으셨구요. 마늘잎이 대여섯 장 나올 때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가 튼실하게 잘 자란답니다. 마늘 캐기 전에 싹 틔운 고구마를 군데군데 쿡쿡 눌러 심어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밭에 한 가지만 심는 게 아니라, 작물들끼리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때를 맞춰서 작물을 심어 놓으십니다. 마늘과 함께 크다가 마늘 캐면서 고구마 북을 주는 것이지요. 마늘대궁은 그대로 고구마 사이사이에 다시 깔아주고 고구마뿐만 아니라 상추씨도 뿌리고, 완두콩도 심어, 이것저것 수확하시는데 여느 농민들보다 수확량이 많답니다. 

 할머니 밭은 네모 번듯한 그런 밭이 아닙니다. 집터를 닦으면서 생긴 비알, 처마 밑, 개장 주변이 밭입니다. 그냥 놔두면 풀투성이가 되었거나 시멘트 콘크리트로 발라졌을 그런 땅에 할머니는 씨앗을 뿌리십니다. 봄이 되면 집주변이 온통 마늘밭이 된답니다, 마늘을 캐자마자 고구마 밭이자, 고추밭이자, 콩밭인 할머니의 텃밭은 굳이 농약과 비료가 필요가 없는 거죠. 농작물이 서로서로 클 수 있도록 자리만 잡아주신 거죠. 

 올해 당신이 농사지을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도, 생각을 가다듬어 조금이라도 농사짓는 이야기를 잘 들려주시려는 모습이 가슴에 남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씨앗, 배우고 싶은 전통농업을 실현하고 계신 박부례 할머니에게서 얻어온 이 소중한 고구마를 심을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 오릅니다. 개구리가 잠을 깨는 경칩에 아이스박스에 흙을 깔고, 고구마를 5Cm 간격을 두고 눕혀 다시 흙을 덮고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따뜻한 방에 모셔둔 고구마 싹이 어서 올라오길 기다립니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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