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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호기(征虎記)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22.02.24|(241호)

[서평] 정호기(征虎記) - 조선호랑이는 어떻게 사라졌는가?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의 조선 호랑이 사냥기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 에이도스)

김병선 (횡성읍. 횡성군여성농민회)

  

정호기 원본 표지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단군신화의 사람이 되고싶었던 호랑이로
무서운 호환마마의 호랑이로
때론 곶감을 무서워하는 어리숙한 호랑이로.
우리와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그 많던 호랑이들은 이 땅에서 언제 왜 사라졌을까?
「정호기」는 말 그대로 조선의 호랑이를 사냥한 일본 원정대의 수렵기이다.
1917년 11월,
조선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와 약 한 달간 머물면서 사냥 행사 때 찍은 사진과 일기를 모아 놓은 것으로 행사 후원자와 참가자에게 주기 위해 1918년 제작된 기념품이다.

나는 이놈의 征(정)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가서 바로잡는다는 그러니까 치고, 정벌하겠다는 이 뜻은 누가 누구를 바로잡고 정벌하겠다는 것인가?
조선 호랑이 사냥은 조선을 정벌하겠다는 상징적 의미이다
사냥 행사를 주관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무역상사 송창양행의 사장으로 졸부를 뜻하는 후나나리킹(제1차 세계대전 때 조선업,해운업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뜻하는 일본용어)이다.
그는 이 행사에 “칠, 팔만 원의 큰돈”을 들였다.(매일신보 1917년 11월18일자)
당시 쌀 한 석에 15원 정도였으니 거금이었다.
야마모토는 이 행사의 취지를 “근래에 점점 퇴패하여 가는 우리 제국 청년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매일신보1917년 11월3일자)서라고 밝혔다.


그날까지 쏘아라/야마모토 정호군가

가토 기요마사의 일이여/지금은 야마모토 정호군…/일본 남아의 담력을 보여 주자/루스벨트 그 무엇이랴/호랑이여 오라…/올해는 조선 호랑이를 모두 사냥하고/내년에는 러시아의 곰을 사냥하세.”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을 발판으로 미국과 당당히 맞서며, 이제는 러시아까지 침략하겠다는 제국주의의 야욕을 과시한 노래이다.
이 노래에 나오는 가토 기요마사는 누구인가?
일본엔 대륙성 동물인 호랑이가 없다. 그러기에 일본인에게 있어 호랑이는 신비의 동물이며 조선의 정기였다.  그러한 호랑이를 임진왜란 때  소금에 절여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보약으로 바쳐 출세 가도를 달린 인물이 바로  가토 기요마사이다. 아,  가등청정(加藤淸正) 이라고 하면 다들 알 것이다.


원정대 야마모토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늑대는 관심 없다. 조선 호랑이를 잡아 없애야 한다. 호랑이를 잡는 것이야말로 남자 중 남자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등은 이 책의 해제에서
“겉으로 내세운 것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해로운 짐승을 퇴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면의 동기는 개인의 소영웅심의 발로, 부의 과시, 일본군의 사기 진작,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확산 등 복합적인 것이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왼쪽이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 그는 호랑이 사냥 시 실제로 총을 들지는 않았다. 당시의 엽총으로는 한 두발 안에 호랑이를 죽이지 않으면 호랑이에게 역공을 당해 큰 부상을 입던지 죽임을 당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정치가들과 돈 많은 서구 자본가들은 종종 식민지에서 맹수사냥을 벌이곤 했다. 20세기 초부터 조선 땅에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커밋 루스벨트를 비롯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 미국 의사 윌리엄 로드 스미스, 영국인 사냥꾼 포드 바클리 등이 호랑이 사냥을 했다.
이들이 직접 사냥총을 쥐었다면 야마모토는 사냥꾼과 몰이꾼을 고용하고 자신은 지휘만 하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사냥대는 24명의 사냥꾼과 약 150명의 몰이꾼으로 구성됐고 매일신보사, 중앙신문, 경성일보, 규슈일보사, 야마토신문 등에서 기자 19명이 동행 취재했다. 사냥꾼은 8개 반으로 나눠 백두산 등 함경남북도와 금강산, 전라남도에 파견한 뒤 사냥물을 한 곳에 모았다.
눈길을 끄는 건, 3명을 뺀 사냥꾼 모두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 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냥꾼이 모두 동원됐는데,  호랑이 사냥의 일인자로 꼽히던 강용근,  조선왕실이 공인한 엽사로 이윤회 등이 포함됐다.
당시 조선의 포수는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사격 실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구식 단발 엽총으로 호랑이 같은 큰 맹수를 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급소를 단번에 맞춰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역습을 받아 목숨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조선시대부터 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착호군을 따로 두어 정책적으로 지원한 것도 작용했다. 이들은 같은 산포수 출신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홍범도와는 달리 정호군의 핵심을 이루며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에 급급했지  일제에 이용당한다는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멈칫거림도 이 책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원정대는 조선총독부의 하세가와 총독을 만나는 등 일제 당국의 비호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지역 행정당국과 유지가 주최한 성대한 환영행사가 벌어졌다. 일본인 대부호의 엽기적인 사냥 이벤트는 볼거리가 없던 그 당시 큰 구경거리여서 조선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이 책에는 기록 되어 있다.

12월6일 사냥 원정대는 남대문 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기차 화물칸을 가득 채운 포획물은 호랑이 2마리, 표범 2마리, 반달가슴곰 1마리, 멧돼지 3마리, 산양 5마리, 승냥이 1마리, 노루 9마리, 기러기·청둥오리·꿩 다수였다.
야마모토의 정호군은 사냥감을 그저 가져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제국호텔에서의 시식 장면
조선호텔에서 열린 호랑이 시식연 방명록에 ‘매일신보사 심천풍’(오른쪽 아래 점선부분)이라는 서명이 보인다.

12월7일 경성에서는 조선호텔에서 야마가타 정무총감을 주빈으로 경성의 명사 120명을 초대해 호랑이 등 포획물의 시식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호랑이 고기를 채소와 함께 양주를 넣어 익힌 요리 등을 맛나게 먹었다. 호랑이 시식연 참석자들은 방명록에 서명을 했는데, 이 책에 언론인들의 서명이 실려 있다. 사냥 행사를 취재한 기자들의 서명 가운데 한국 이름이 하나 눈에 띈다. 정호군을 따라다니며  그 여정을 상세히 매일신보에 기사로 쓴 심천풍(18980~1946)이다. 그의 본명은 심우섭으로  상록수를 쓴 작가 심훈의 맏형으로 나중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다.
‘호랑이 시식회’는 일본에서도 열렸다. 12월20일 도쿄 제국호텔 대연회장에서는 체신 대신, 농상무 대신, 추밀원 고문관, 육군대장 등 정·재계 요인 200여명이 모여 일본에는 없는 이 신기한 고기 맛을 보면서 대일본제국의 힘을 맘껏 즐겼다.

다다사부로의 조선 호랑이 시식회의 인사말을 들어보자

신사숙녀 여러분.
때는 벌써 연말을 향하고 있어 공사다망하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기 이 자리에 매우 희귀한 고기를 냅니다.
덧붙여, 많은 분들께서 이와 같이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생각되는 바입니다.
(중략)
전국시대의 무장은 진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선의 호랑이를 잡았습니다만, 다이쇼 시대의 저희들은 일본의 영토 내에서 호랑이를 잡아왔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순원이 잡은 호랑이를 이 자리에 옮겨왔으며, 바로 여기 있는 이 두 마리 중 오른쪽에 있는 호랑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일본 최고의 호텔에서 여러분 앞으로 호랑이 고기뿐만 아니라, 가죽과 뼈를 그대로 술에 담아서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이쯤에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진배를 하겠습니다.
술을 받으시면 한 번에 마셔주시고 혹시 몇 방울이 남았다면 호랑이를 위해서도 건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호랑이 또한 사후의 영광으로써 감사의 뜻을 표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일본 교토 도시샤 고등학교 표본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호랑이 박제
횡성 산중에서 호랑이가 포획되었다는 기사와 사진이 실린 1924년 매일신보 2월 1일자.

야마모토는 호랑이를 비롯한 포획물의 표본을 만들어 자신의 모교인 교토 도시샤 고등학교에 기증했고, 그것들이 지금까지 잘 보관돼 있다.
지금도  ‘조선산’이란 표지가 선명한 호랑이, 표범, 반달가슴곰, 승냥이, 산양, 멧돼지의 표본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30년대 까지도 호랑이가 잡혔다는 이야기는 있다.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는 당시 경주를 방문했던 일본 황족에게 헌상되었다. 기록상의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4년 매일신보 2월 1일자에 1월 21일 강원도 횡성 눈 쌓인 깊은 산중에서 팔 척짜리 암컷 호랑이가 포획되었다는 기사와 사진이 있다

우리의 조선 호랑이는 이 땅 한반도에서 그렇게 사라졌다.

98년 전,  횡성에서 사라진 호랑이는
진정 이 땅 한반도 숲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일까?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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