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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만식 교수, 가톨릭관동대학교 휴먼서비스대학 통합치유학과 |
100세 시대, 이제 인생 2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 사는 우리들. 희망과 환상적 삶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마치 혼탁한 강물 속을 가로지르는 듯한 인생의 한 지점에 서면, 내딛는 발조차 미심쩍은 우리들. 세상은 점점 더 급변하지만, 정작 우리 몸은 하루가 다르게 ‘둔둔(鈍鈍)’해진다. 그 시점에서 우리는 아마도 인생 중반 이후 50년의 삶을 이제야 고민하게 된다.
“으아,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없어. 어떤 선택이 후회 없는 선택일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청춘의 열병도 아닌데, 중장년의 시기에 이런 열병(?)할 고민을 하다니!”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아니 들어갈수록 이런 고민은 더욱더 깊어만 가니 그렇다. 게다가 그렇겠거니 하고, 어찌할 수 없이 포기하고 마냥 할 일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며 낡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절체절명의 결정적인 순간일 수 있다. 인생 전반의 삶이야 어떻든지 간에 이제 인생 종반 이후 50년의 삶을 또다른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잘만 준비하면, 인생 중반 이후 50년의 삶을 알차게, 보람있고, 의미있게, 그래서 결과야 어떻든지 간에, 그 과정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희망인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삶. 후회 없는 나의 삶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 횡성군의 상황은 이러한 절박한 고민을 해결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배움에 끝이 없는’ 100세 시대가 당장 닥쳤는데도 우리들을 받아 줄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체계적인 사회교육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를 맞이할 인재를 양성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다. 우리 횡성군이 준비해야만 할 과제이기도 하다.
반면,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예를 하나만 들면 핀란드의 헬싱키를 들 수 있다. 2010년 기준으로 핀란드의 헬싱키에서는 근교에만 4000개가 넘는 자유 사회교육센터가 있다. 여기서는 자격이나 졸업자격 취득, 취미나 교양, ICT(정보통신기술), 회계, 매니지먼트, 외국어, 공예, 미술, 음악, 가정 경제학, 정보기술 등등. 다양한 배움과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이 곳만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만에도 우리보다 많이 앞선 상황이다. 그렇기에 우리 횡성군이 선제적으로 이러한 사회교육 시스템을 모색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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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의 휘리아 우데만 카투 캠퍼스에서의 직업교육> |
사회교육(social education, 社會敎育)!
이렇듯 사회교육의 필요성이나 사회교육 체계로의 전환 구축 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횡성군이 실현해 나가고 있는 모습은 부분적일뿐더러 더디다. 횡성군민들의 필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제대로 체계적으로 준비, 마련되고 있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 마련해 나가야만 할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물론 사회교육이 참여자의 자발적인 관심과 동기를 주 원동력으로 교육과정 전반을 뒷받침하고 있기에 제도권 교육의 형식과 체계면에서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사회교육의 특성으로 개방성, 비형식성, 단기성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현 시대적 요청인 사회교육의 절박한 필요성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실현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현 횡성군의 횡성인재육성관이나 횡성문화재단 등 관련 기관들이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변화를 꾀할 시점이다.
한편, 국가나 사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사회교육은 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있지 않은 유아, 아동, 청소년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즉 교육 대상의 범위가 매우 넓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생교육이 모태로부터 죽을 때까지의 평생을 두고 행해지는 교육으로 사실상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포함하고 있기에 사회교육과는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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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자유사회교육 번역학교의 모임> |
그렇기에 사회교육의 굵직한 역할만을 제시하면, 첫째, 서비스 대상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급변화, 급발전하는 사회에 발맞춰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평생에 걸쳐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 기능, 태도, 가치관 및 새로운 역할 등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서비스 대상들에게 학교교육과 대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이는 학교 교육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 성인들에게 학교교육을 제공하여 학업의 욕구를 보상하는 의미를 가진다. 셋째, 학습사회(learning society) 네트워크 건설에 이바지해야 한다. 사회는 학습의 장이면서도 개인의 자아실현과 발전의 장이므로 모두가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삶의 모든 네트워크 현장에서 자아의 실현과 발전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아실현과 자기발전을 이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회교육의 역할을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첫째, 직업, 기술 및 전문직 능력 획득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해당 대상들이 각자가 추구하는 첫 직장을 가지도록 하거나 새로운 직장으로의 이직을 도울 수 있다. 물론 직업을 창출할 수도 있고, 직장을 창업할 수도 있다.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너지 효과로 창조적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둘째,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첫째에서 언급한 것과 더불어, 교양이나 취미 관련 교육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사회문화, 역사, 철학,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영화, 서예, 스포츠, 컴퓨터, 외국어, 심리상담, 창업 등등에 관한 다채로운 장단기 교육이다. 이러한 교양이나 취미 관련 교육은 어떤 직업이나 직장과의 관련성은 낮으나,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문화복지 차원의 교육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말하기, 듣기, 셈하기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많은 성인이 문자해독교육을 받고 문맹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소수의 성인에게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이해와 표현 등의 기초기술 교육이 필요하고, 그 외의 산술 또는 산술기기 관련 기초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게다가 노인들의 이러한 배움과 여가, 사회생활 등의 경험은 노인 건강과 행복에 긍정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노인 인구가 30%에 육박하는 횡성군은 더더욱 관심을 두고 진행할 필요가 있겠다. 넷째, 기타, 즉 의교보건, 사회복지, 아동보호, 장애인, 성, 인권 등의 가정생활을 위한 교육, 지역사회의 각종 참여 활동 등을 위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 이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긴 글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보니,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이유를 찾는다’라는 중국 속담이 떠오른다. 참 삶은 역동적이다. 앞으로 해야만 할 더 막중한 책임감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쏟아져 온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난 것은 지나간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 이 순간부터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 된다. 그것은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믿는대로 이뤄진다. 믿음만큼 땀흘린만큼 이뤄진다. 다만, 우리는 혜택을 받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다 얻을 것이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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