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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 지음(문학동네) |
도정일 교수라면 책눈이 웬만큼 밝은 독자들은 저자의 첫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를 떠올릴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지난 지금 산문집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의 목록> 두 권을 동시에 상재했다.
세 저작의 제목을 열거해 놓고 보니 우연치 않게, 자연이 파괴되고 존재의 신비감이 사라진 시대에 어떻게 삶의 미학을 구성할 것인가라는 저자의 주제의식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 역시 우연찮은가, 셋 중에서 이번 글감으로 고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의 목록>의 제목이 사뭇 거칠다.
‘시’와 ‘별’ 같이 아득하고 신비하고 경건한 환기력 대신 아직 국립국어연구원의 국어대사전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쓰잘데없다’를 제목으로 골랐으니 우격다짐이 따로 없다. 자신의 뜻이 통하지 않는 먹통들에 대한 분노인가. 체면치례 걷어치우고 문제 자체로 돌진하겠다는 우직함인가.
물론, 밑바탕에 깔린 분노와 우격다짐을 정작 글에서는 별과 시와 같은 서정으로 상당히 연화시켰으니 독자에 따라서는 삶에 대한 부드러운 힐링의 산문집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첫 번째 글 “누구시더라.”부터 저자의 주제의식과 스타일이 잘 나타난다. 전라도 어느 암자에 하루 세 번 마당을 정갈하게 비질하는 보살이 있는데 인사를 할 때마다 ‘누구시더라’라고 답변한다. 자신을 소개하고 다시 인사해도 ‘누구시더라’라고 대답한단다.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경제성장, 소비사회, 전자기기의 범람 등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자연과 신비와 공동체의 이상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작의 매력은 앞의 보살 이야기처럼 일상에서 듣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예를 가져와 자근자근 말하는 가운데 일상적 질문을 불쑥 ‘존재론적 질문’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리는 점이다.
실제로, 저자 자신이 강단 비평가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 책 곳곳에서 정통적 강단 비평가에게 듣기 어려운 ‘우직한’ 질문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저자는 대학의 교양교육을 다루는 가운데 “문학이 과연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 자신도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은 피해가고, 다행히(.) 학생들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교양교육은 형해화되고, 난삽해지면서 일상에서 멀어진다. 저자는 이럴 때마다 진지한 질문을 마치 천진한 아이가 농담하듯 툭 던진다. 세상의 기초를 묻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그는 “아틀라스가 힘에 부쳐 땅덩어리를 내던지고 거북이란 놈이 에라, 나 몰라라 땅덩이 버리고 연애라도 하러 달아나버린다면.”으로 비틀어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런데 저자는 종종 질문을 던지지만,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해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답변하기 어려운 큰 질문이기도 하거니와, 또한 독자들이 직접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독자를 감질나게 하는 대신, 저자는 흥미 있는 예를 던져주며 독자 스스로 답변하는 과정을 도와준다.
예를 들면, 뉴욕의 4대 공공도서관은 모두 도심에 있다거나, 문학독자가 비문학독자보다 자선활동과 자원활동과 같은 사회적 참여행위의 빈도가 훨씬 높다는 조사, 제천 어느 도서관의 노인 ‘스토리텔러’들이 아이들을 위해 ‘원두막 건립 프로젝트’를 벌인다든지 하는 일화 따위이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는 꼭지 가운데 하나는 김은국의 <순교자>를 다룬 “소설 <순교자>의 미스테리”이다.
그는 1978년 이 작품을 번역하고 해설을 붙였는데, 30년 후 옛 글이 이 작품의 가치에 대해 인색했다며 새로 쓴다. 개인적 견해를 말한다면 나는 새로 쓴 해설보다 저자의 옛날 해설이 훨씬 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설의 타당성 여부가 아니라 저자의 접근방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그의 두 번째 해설에 따르면 작품 한 가운데에 비밀이 있다.
그런데, 그는 비평가로서 이 비밀을 독자에서 직접 이야기 하지 않고, 대신 독자로 하여금 비밀에 도달하게끔 유도하는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하고, 필요하면 책을 한 번 더 읽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마치 비평가의 판단조차 하나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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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승철(한림대 영문학과 교수) |
그러기에, 이 산문집을 관통하는 저자의 주제의식은 ‘무용한 질문의 위대한 실용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다만, 우리시대에 치명적 결손이 있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그리고 저자의 우아한 질문방식에 감탄하면서도 저자가 가끔 보여주는 ‘우직한’ 답변에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근대에 팽배한 도구적 이성의 폐해는 목전에서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거꾸로 된 셈법이나 ‘바보’들의 무용한 질문과 같은 근본주의적 대응을 지나치게 사주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송승철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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