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윤 (횡성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오후 6시 10분이 지나 한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원이 헐레벌떡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는 도중에 접촉사고가 있어 늦었다며 예비후보자 홍보물을 접수해 달라고 한다. 선관위 직원이 법정신고·제출시간이 지났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한다.

순간 이 선거사무원의 얼굴이 심하게 불거진다. 어떻게 사람이 인정도 없이 야박할 수 있는가 라며 대뜸 화를 내며 언성이 높아진다. 선거사무원 입장에선 황당한 노릇이어서 그러하리라 이해가 가지만 흥분한 선거사무원을 붙들고 법조문을 설명해 가며 옥신각신 하게 된다.
 
선거 때가 되면 종종 나타나는 풍경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많다. 오는 5월 13일은 6·4지방선거의 선거인명부를 작성하는 기준일이다. 거주지를 옮겨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이날 24시까지 주민등록이 이전되어야 새로운 주소지에서 투표할 수 있다. 불과 몇 시간 후인 5월 14일에 주민등록을 이전하면 이전 주민등록지에서 그 지역의 후보자에게 투표해야 한다. 후보자 등록은 5월 15일과 16일 이틀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등록을 받는다. 오후 6시에서 1초만 지나도 후보자등록을 받아 줄 수 없다. 그 시점은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 들어온 순간을 기준으로 한다. 
 
처음 지방선거에 뜻을 두고 출마하는 후보자와 선거사무원들은 인정에 호소하고 잘 봐달라고 하고 안 되면 화를 낸다. 선거관리를 하는 실무자들을 어렵게 하는 경우는 선거운동분야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전화에 의한 선거운동은 예비후보자만 가능한데도  선거사무원은 왜 안 되냐고 따지고, 선거사무소 현판식, 개소식 등을 각각 하면 왜 안 되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운동기간 중에 후보자는 선거벽보와 선거공보를 선관위에 제출한다. 이때에도 오후 6시까지 제출해야 한다. 다만 선거법에 선거벽보는 후보자등록마감 후 5일까지, 선거공보는 7일까지 제출하도록 되어있어 해당일인 5월 21일과 5월 23일 24시까지 접수를 받는다. 대신 오후 6시 정각을 넘어 24시까지 제출하는 경우에는 과태료 50만원이 부과된다.

24시를 넘게 되면 해당 선거벽보나 공보는 접수를 받을 수 없으며 그 후보자는 벽보와 공보를 유권자에게 보여 줄 수 없게 된다. 투표시간도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법정화되어 있다.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또는 투표율을 높이고자 투표마감시간을 앞당기거나 늘리는 것도 선거법위반이다.
 
선거란 선거일을 정해 놓고 매일매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한 치의 틈이나 사정없이 진행해야 하는 법정 절차사무이다. 물론 법에도 인정이 있을 순 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있어선 인정을 두어선 절대 안 된다. 한 후보자 측에 인정을 주다간 또 다른 후보자에겐 불이익이 되고 종국에는 선거를 공정하게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법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선거를 치르면서 여·야 정당간에 합의를 도출해 만든  매우 중요한 선거의 룰이다. 그 정해진 룰이 나에게 좀 불리하다고 화를 내거나 법을 탓해선 안 된다. 주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선 만큼 정해진 룰에 따라 선거법을 지켜가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유권자는 바라고 있다.

정해진 룰에 의해 모두가 공평하게 선거운동을 하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당선된 자가 곧 민의의 뜻이고 지역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선관위가 인정에 의해 또는 마음에 따라 특정 후보자의 편의를 봐주면 그것이 곧 불공정한 선거관리가 되고 불법선거관리가 되는 것이다.

홍종윤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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