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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거 없이 시작하니 모든 게 보람있어”[우리 결혼했어요] 횡성군 청일면 봉명리 이경복(77)·김명자(78) 부부
이상규 기자 | 승인 2012.03.28|(0호)
 “여기는 환자가 와서 수양이나 할 데지 사람이 살 데는 못 돼. 솔직한 얘기로 여기는 귀양이나 오는 데지.”

 그랬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 사람이 살까 싶었다. 노부부가 ‘예쁘게 사신다’는 얘기를 듣고 횡성읍에서 50분가량 떨어진 청일면으로 향했다. 이경복·김명자 부부를 찾아가는 길은 사람이 살까 싶을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를 지나 산 정상까지 가야만 했다. 길옆으로 촘촘히 늘어서 있는 작은 전봇대들이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봄날처럼 화사한 날이었지만 골짜기 옆 개울은 꽁꽁 얼어 있었다.

▲ 횡성군 청일면 봉명리 이경복(77)·김명자(78) 부부.


 “설레긴 뭘 설레. 한국전쟁 중이라 남자가 금반지보다 귀할 땐 데 뭐.”

 두 분은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결혼했다. 17, 18세에 결혼하고 2년 뒤 휴전했다. 신혼을 전쟁과 함께 보낸 셈이다.

 “그땐 엄해서 결혼 전엔 서로 말도 못 해 봤어. 얼굴만 알고 있었지.”

 홍천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9살에 횡성으로 이사 왔다. 횡성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와는 10여 년을 한마을에서 살았지만 ‘연애’는 없었다. 결혼 전엔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그냥 집안에서 결혼하라니까 했다”고 했다.

▲ 여름이면 모시한복을 곱게 다듬어 입고 함께 여행을 다닌다.


 “맨날 농사만 진 사람이 뭔 연륜이 있어야지.”

 살아온 얘기를 해 달라는 요청에 이 할아버지는 할 말이 없다면서도 ‘무소유’의 철학을 풀어 놓으신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니까 오히려 사는 게 보람 있어.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금 돈으로 단돈 만원이라도 들어오면 고마워. 배움도 어디서 한 가지 들으면 안 잊어먹고. 돈이고 지식이고 있는 사람이 희망이 적어. 배운 것은 누가 뺏어가지 않아. 지나 보니까 많이 배운 것 보다, 조금 배워서 많이 써먹는 게 득이더라고. 돈도 많이 있는 것보다 조그만 돈으로 쪼개서 쓰니까 돈의 가치가 있는 거지.”

 가난했지만 어려웠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가난을 정당화하는 걸까. 김 할머니는 증언을 안 해주시고 그냥 웃으신다.

  ‘예쁘게 사신다’는 두 분은 1년에 두어 번 싸우신다. 싸움터는 주로 관광지. 이유는 딱 두 가지.

 “내가 먼저 앞서 가니 괘씸해서 싸우고, 한 눈 판다고 싸운다”고 했다. “아 내가 여자 뒷모습만 보면 샘을 내. 앞에 사람 가는데 안 볼 수 있나. 눈 감고 갈 수도 없고. 다리가 불편해서 못 쫓아오니까 한 눈 팔았다고 누명 씌우는 거지.”

 김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쫓아가기 어렵다. 이 할아버지는 억울하다면서 허허 웃으신다.

 “그 외는 싸울 일이 없어. 없는 집은 싸울 게 없어. 있는 집에서 싸우지. 싸울래야 싸울 힘도 없고 서로 의지하고 사는 거지. 아 1년에 한두 번은 싸우기도 해야지.”

 이 할아버지가 말끝을 흐리신다.

 “서로 마음이 중요한 거지 표현이 무슨 필요해. 표현은 구호에 불과한 거야. 서로 눈짓이면 되지 뭐. 상이 찡그려지면 기분이 나쁜 거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이 할아버지는 옛 어른답게 당연히 사랑 표현은 하지 않으신다. 게다가 ‘미안하다’는 표현도 하지 않으신다. 마음은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전달되는 거다. 60년을 함께 사셨으니.

 “이젠 지푸라기도 무서워. 지푸라기 걸려도 넘어지고, 돌부리 걸려서 넘어지고. 젊었을 땐 겁나는 건 법밖에 없었는데 이젠 아플까 봐 그게 무섭지.”

 “지내보니까 자식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지만 의지할 땐 부부밖에 없어. 그저 한 사람이 먼저 가고 한 사람이 나중 가는 기간이 짧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지. 뭘 더 바라겠어.” 

 취재하는 동안 내내 활달한 모습을 보이시던 이 할아버지가 차분하게 말씀하신다. 오랜 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소박한 욕심이 아닐까.

이상규 기자  eco2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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