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전문가 안완식 박사님과 횡성의 여성농민단체 조사원들은 각 면을 돌면서 토종씨앗 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서원면 금대리를 지나는데 길 건너 오래된 시골집이 보였다. 집 주변이 잘 정리되고 정갈하여 멀리서도 씨앗이 있음직해 보이는 곳이었다. 집 앞 도랑 위 밭두둑에는 민들레가 많았다. 며칠 전부터 토종노랑민들레를 찾고 있어서인지 금방 눈에 들어왔다.
“어휴, 이것 봐라. 이건 저번에 봤던 토종민들레와 달라, 색이 더 노란데...완전 밭이야, 밭 !”
손금녀(80세) 할머니 집에서 막 꽃을 피우고 있는 토종노랑민들레 무리를 발견하고 조사팀은 탄성을 질렀다. 토종노랑민들레는 서양민들레와 달리 꽃대가 빨갛고, 꽃받침이 모두 위로 올라가 있다. 꽃잎은 서양민들레처럼 빽빽하지 않고 조금 성글게 붙어 있다.
5월에 할머니 댁을 다시 찾으니, 벌써 민들레에 홀씨가 동그랗게 달렸다. 지난 번에 듣지 못한 민들레 얘기를 더 들었다.
“우리 어렸을 땐 노란 민들레만 봤어. 하얀 민들레는 못 보고. 여기 거는 옛날 거와 똑같은데, 딴 데 가보니까 또 딴 게 있더라구. ”
흰색과 노란색이 많이 섞여있는 토종민들레나 서양민들레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옛날에 토종노랑민들레는 좁은 길과 논둑 가에 많았는데, 논 정리와 농약으로 다 없어졌다고 한다. 자취를 감췄던 토종노랑민들레가 20년 전 어느 날 할머니네 집 앞 나무 밑에 자라더니 집 앞 여기저기에 퍼져서 이제는민들레 밭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집 앞 도랑 위로는 토종파와 부추 사이에 민들레와 작약을 가꾸어 마치 꽃밭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얼굴빛이 곱고 편안해서 큰 고생을 하지 않으셨을 것 같았는데 두 살 때 북한이 고향인 부모님을 따라 원주에 와서도 뜨내기로 살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단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재가하시고, 나는 열 살 때부터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 하면서 컸어, 오빠 하나 있는 게 6.25 전쟁 때 없어졌지. 횡성 만두집에서 물심부름 하면서 살다가, 원주에도 갔다가, 전쟁 때 논산으로 피난 가서 거기서도 살았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더부살이 하다 원주로 갔지. 원주 고모네가 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걸랑. 식당일 허는데 도와줬지. 그때 고모가 못살아도 사람 똑똑한데 시집가라고 남편을 소개해줘서 여기로 왔지.”
지금의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할머니는 집 뒤 골짜기 너머 호저면에서 화전을 하면서 살았다. 고생한 얘기는 챙피해서 못한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할머니가 시댁식구들과 살면서 부지런히 화전을 일궈서 논과 밭과 집을 장만한 이야기는 강원도 농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이사를 한 집 뒤란에 있던 토종부추를 50년이 지나도록 갖고 계시다. 마당 조그만 하우스 안에는 해마다 씨를 받아 훌훌 뿌려두어, 치마처럼 너풀너풀 곱게 자라는 토종 적상추와 청상추도 있다. 30년 넘게 토종상추 씨를 받아 키우신다. “종묘사 씨앗보다 뻣뻣하고 길어기(길이)가 길잖아. 맛이 나아. 그러니까 갖고 있는 거지” 하신다. 토종상추 몇 포기, 부추 몇 십 포기, 딱 할머니 부부가 드실 만큼만 키우시는 게, 욕심 없는 할머니와 꼭 닮았다.
“할머니, 그렇게 힘들게 사셨는데도 편안해 보이세요.”
“내가 느긋하게 사는 걸… 내가 고생허고 살은 사람이니까, 참으면서 살았지.”
꽃처럼 가꾸시는 토종노랑민들레에 할머니의 바람이 담겨있는 것 같다.
“어릴 적 원주 있을 적에, 부잣집에서는 쌀밥을 먹을 때 민들레를 초고추장에 밥 비벼 먹더라구. 그래서 좋은 줄 알았지. 내가 꽃을 좋아하니까 우리 집에 민들레가 왔나 봐.”
횡성 여기저기를 다녀보아도 쉽게 볼 수 없는 토종노랑민들레가 손금녀 할머니 댁에서는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좀 더 넉넉하게 살고 싶었을 할머니. 힘들 때마다 노랑토종민들레 꽃을 보며 느긋한 마음을 가졌을 할머니 덕에 토종노랑민들레를 볼 수 있었다.
- ※바로잡습니다
횡성희망신문 55호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 22 <인생의 뒤안길에 벗 삼아, 약 삼아 키우시는 ‘꽈리’ 이야기>‘ 중 꽈리뿌리의 사진이 잘못 소개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chamho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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