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쏠한 벌이 되는 횡성복분자
애들 줄라고 심는 녹두와 검은 왕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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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배 할머니(우천면 상하가리. 7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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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팥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검은왕팥(사진 왼쪽)과 토종녹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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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팥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검은왕팥(사진 왼쪽)과 토종녹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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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토종복분자. 7월경에 검게 익은 열매를 수확한다 |
올봄에 횡성군 토종씨앗실태조사를 하려고 여러 마을을 다니는데 인상 깊은 동네가 있었다. 옛날부터 잘 살았다는 우천면 상하가리로 동네 분위기가 차분하고 넉넉한 곳이다.
당시 마을회관 옆의 하우스에서 복분자 뿌리를 캐고 계시던 김용배(74)할머니께 복분자 뿌리와 녹두·검은 왕팥 종자를 얻은 인연으로, 6월에 다시 찾아뵈었다. 할아버지는 막내아들과 함께 서울 병원에 다니러 가셔서 혼자 계셨다.
상하가리는 몇 백 년 전부터 강릉김씨가 살아온 마을이라 친척들이 많고 그리 가난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시집와서도 쌀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마을에 논이 많았다는데 자식들을 잘 키워낸 말년의 여유가 할머니에게서 느껴졌다.
“할머니, 이 복분자는 언제부터 심으셨어요. ”
“횡성에서 복분자 한 지는 10년 넘었고, 우천면 정금 사람들이 더 일찍 했지. 우리는 7년 됐지. 정금에 가서 몇 뿌리 얻어다 심은 거야. 봄에 그루정리 한 번 해주고, 거름 주고, 또 열매 따고나선 순을 잘라내야 해. 세 번만 손질해주고, 복분자 딸 때 3주만 고생하면 끝나거든. 요즘에는 농협에 팔 것도 없어.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계속 오는 거야. ”
토종씨앗 실태조사를 할 때 보니, 횡성의 산자락에는 야생 복분자 군락지가 많았다. 횡성복분자는 좋은 수입원이 되고 있었다.
“복분자는 식전에 따면 택배나 사가는 사람도 점심 때 와서 사가는 거야. 냉동시킬 것도 없고, 냉동시키면 못써. 금방 따서 갈면 씨가 안 억쎈데, 얼궜다 먹으면 억쎄서 못 먹겠대.” 땅에 보온덮개나 볏짚을 깔면 제초제를 치지 않아도 되고, 새로 난 뿌리를 캐서 옮겨 심으니, 묘종을 살 필요도 없다. 200평 남짓 복분자하우스에서 나온 수입은 년 사오백 만원이 된다.
복분자는 7년이 지나면 캐어내고, 한 해 쉬었다가 새 뿌리를 다시 심어야 한다고 했다. 수입도 좋고 팔기도 좋아 복분자를 계속 할 생각이다. 그래서 올해 하우스 한 동은 새 뿌리를 심었고, 내년에는 남은 두 동의 하우스에 있는 복분자를 뽑아내고 다른 작물을 심었다가, 이듬해에 새 뿌리를 심을 계획이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심어오신 녹두와 검은 왕팥도 보여주셨다.
“녹두는 먹을라고 심지. 애들이 녹두 부침개를 좋아해. 녹두 타개서 거피했다가 닭죽이나 삼계탕에 넣어 봐요.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몰라요. 비린내도 덜 나고. 애들 줄라고 하면 녹두 심는 게 하나도 안 귀찮아. ”
콩 심은 사이에 콩 보다 조금 늦게 7월 초에 심었다가 9월 말에 뽑는다니 녹두는 참 빨리도 여문다 싶다. 꼬투리가 벌어져 떨어지는 일이 없으니 뽑아두었다가 떨면 된다. 어찌 보면 볼품없고 자잘한 녹두씨앗은 심거나 거두기에 귀찮아 천덕꾸러기가 될 법한데, 할머니의 자식사랑이 소중한 토종씨앗을 지켜온 거였다.
“검은 왕팥은 이십년쯤 됐지. 홍천 서석서 나온 이웃사람이 심는 걸 얻어다 심었지. 예전에는 빨간팥이나 왕가래팥, 앵두팥도 심었는데, 이게 제일 맛이 나아. 팥죽이 깜초롬하지. 타개서 현미쌀하고 섞어서 밥에 놔먹으면 구수하고 맛있어. ”
따갈따갈 또그르르… 검은 왕팥을 한웅큼 잡고 양손으로 옮겨본다. 가운데에 흰선이 선명하고 칠흙처럼 검은색의 모양새가 기품 있는 씨앗이다. 검은 왕팥은 서리태와 장콩을 심는 하지 무렵에 심었다가 서리 오기 전에 거둔다. 값으로 따지면 빨간팥에 밀려 지금은 농가에서 거의 심지 않지만, 식구들에게 맛좋은 잡곡을 먹이고 싶은 할머니는 계속 심는다. 우리가 먹는 식량들이 돈의 힘으로 종자가 마구 바뀔 때, 토종씨앗은 식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랑 유전자를 품은 토종씨앗이 널리 퍼진다면 세상을 바꾸는 자그마한 힘이 될 것이다. 씩씩하면서도 인정 많고 잘 웃으시는 할머니의 얼굴과, 복분자 하우스가 떠오른다. 탱글탱글 잘 여문 열매는 한여름에 까맣게 익어 달콤한 맛을 내겠지. 야생의 복분자를 재배해서 좋은 수익작물을 만든 ‘횡성복분자’도 오래오래 토종으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 지킴이 chamho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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