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사회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3)김부옥 할머니와 월동추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2.04.10|(0호)

 작년 겨울 김부옥(92세) 할머니는 40여 년 간 씨앗을 받아 농사지어 오신 월동추 씨앗을 주셨다. 계속 농사지을 수 있을지 모르신다며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헛간에 매달아 두었던 씨앗을 통째로 내주셨다.

“할머니... 조금만 주세요.” “아냐 다 갖다 심어.”  “할머니, 이 씨앗 지우면 어떡해요!” “농사짓는 것 어렵지 않아.” 

 김부옥 할머니를 생각하면 아담한 황토집 주변으로 여러 꽃들과 작은 텃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이 앞 다투어 자라나 화사하고 평안해 보이는 집이 먼저 생각난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다시 김부옥 할머니 댁에 갔다. 
 

▲ 김부옥할머니. 댑싸리비 새것을 광에서 꺼내 주셨다. 처마밑에 매달아 놓은 것이 박과 토종갓끈 동부씨앗이다.


 월동추(유채나물)는 날씨 풀리면 씨앗을 뿌려 베어 먹으면 또 올라오는데, 먹다먹다 남으면 겨울을 넘겨도 다시 올라온다고 알려주셨다. 그냥 한번 심어놓으면 씨가 퍼져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으니 둑에다 심으라고 하신다. 재배하는 것만 익숙한 나에게도 월동추 농사는 정말 쉬운 농사가 될 듯했다. 그동안 할머니가 농사지은 월동추를 얻어다 먹기도 하고, 씨앗을 주시면 한 해 심어 먹고, 다시 할머니에게 씨앗을 얻어다 심어 먹었다. 그때그때 일 년 치기로 농사짓고 씨앗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할머니가 쉽게 가르쳐주시니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서 제대로 된 농사를 짓고 싶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겨우내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야 했다. 늙으면 아픈 것은 당연하지만 집안에 드러누워 있으니 더 아픈 것 같다고 하신다. 그래도 뻗치는 다리를 이끌고 올해 농사일을 시작하셨으니 다행이다.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건강하다는 증거이기에 맘이 조금 놓였다. 

 

 

 

 

▲ 몇 년 전까지 할머니는 밭벼농사를 혼자 힘으로도 거뜬히 해오셨다.

 

 

 

 

 

 

▲ 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당한켠 돌아래 훌훌 뿌려놓은 월동초가 제법 자랐다. 베어먹으면 또 자란다.(위) 할머니가 지켜 오신 토종마늘이 겨울 추위를 이기고 올라왔다.(아래)
 늙으신 할머니는 털썩 주저앉아 감자도 심고 옥수수도 심는다. 더 심고 싶지만 심을 곳이 없다고 하실 정도로 농사에 이골이 나셨다. 평생 당신 소유의 땅을 가져본 적이 없으신 할머니는 풀밭이 되어버린 우리 집 하우스 귀퉁이에 감자를 심어 줄까 물으셨다. 평창이나 홍천으로 품팔이하면서 남의 농사를 거드는 틈틈이 버려진 묵밭을 곡괭이로 개간해서 번듯한 밭뙈기보다 더 거두어 알뜰살뜰 살아오신 할머니. 당신께서는 젊은 사람들이 묵히는 땅이 얼마나 아까웠을까. “월동추 씨앗을 훌훌 뿌려놓으면 여름내 뜯어먹고 꽃도 볼 텐데...” 풀 키우지 말고 꽃 키우라 하신다. 

 일을 안 하니  더 아픈 것 같다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우리 밭에도 감자랑 꽃이랑 심어주세요.” 하고 돌아오는데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평생 호미와 곡괭이로만 농사를 지으셨다는 할머니의 손은 갈라지고 터져, 아무리 일하는 손이 아름답다고 미화를 해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대충 농사를 짓고, 바쁘다는 핑계로 집주변을 풀밭으로 만들어 놓고 사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할머니께 농사짓는 것 가르쳐달라고 말로만 해왔다. 이제 나는 많지 않을지 모르는 할머니의 남은 시간 동안 할머니의 농사를 정말 제대로 배워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씨앗을 받아서 농사짓던 할머니는 이젠 씨앗을 다 지우고 몇 가지 남아있지 않다고 하셨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홀로 밭, 벼 농사를 거뜬히 지을 수 있었던 할머니가 요즘 씨앗을 받아서 농사짓는 것은 갓끈동부, 월동추, 댑싸리, 마늘, 쪽파, 파였다. 토종씨앗이라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았는데 요즘은 기후가 하도 어수선해 원래 없던 벌레가 월동추에도 생겨났다며 걱정하셨다. “4월이 되어도 땅이 얼고, 눈이 오잖아. 너무 일찍 내다 심으면 안 되니 날씨 풀리고 나서 심어.” 남들 다 심는 감자를 못 심어 안달이 난 나에게  여유를 갖고 농사를 지으라고 힘을 주셨다.

 할머니 집을 나서면서 닳아빠진 몽당 빗자루가 예뻐 사진을 찍으니 “창피하니 그런 것 찍지 말고 온전한 것 찍으라”며 광에서 댑싸리비를 내주셨다. 집근처 공터에다 댑싸리 씨앗을 털어내 키우라고 하신다. 빗자루를 쓰다보면 거기서 떨어진 씨가 다시 한 귀퉁이에 떨어져 자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생활 자체가 지혜롭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난 올해 할머니에게서 이런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싶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횡성희망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스포츠
여백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25234)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앞들서2로 23(2층)  |  전화 : 033)342-1507  |  팩스 : 033)343-1507
등록번호 : 강원아00116(2012.02.08)  |  발행인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조만회  |  편집인 : 조만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희
계좌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농협 351-0755-0672-03  |  이메일 : hschamhope@naver.com
Copyright © 2026 횡성희망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