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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준호 횡성희망신문 부대표 |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한데 변화를 위해 나서는 정치인이 너무 없다.
새해 벽두부터 저출산 대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70대 이상이 20대 인구를 추월했다며 언론에서는 호들갑을 떨고, 여야 모두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있고, 대통령은 본인이 위원장으로 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그간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장관급인 부위원장을 교체한다는 말도 들린다. OECD 국가 중 최저 출생률, 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수많은 경고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방기하던 정부, 정치권, 언론 등이 마치 2024년 들어 새롭게 나타난 문제인 듯 저출산 정책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도 동참해 전라북도 진안군의 경우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가족 친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임신 때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최대 1억 3천만 원가량을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는 그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고 한다. 실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280조 원이라는 예산이 저출산 정책으로 투입됐다. 그러나 이 예산은 실제 저출산 문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무늬만 저출산 대책인 경우가 많았다. 첨단 무기 도입 관련 예산, 군인 인건비 증액 사업, 어린이 안전을 위해 CC-TV 설치 등 저출산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많은 예산이 버젓이 저출산 정책으로 포장되어 사용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성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
현재 이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나 여야 총선 공약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몇몇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예산 지원을 늘리거나,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기간을 늘리는 선이다. 출생률이 바닥에 이른 원인을 성찰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함에도 단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예산 경쟁만이 있다. 그마저도 총선을 앞두고 그렇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이지 실제 예산안이나 정부의 정책으로 반영된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현금 살포를 하고, 휴가 며칠을 더 준다고 출생률이 오를 수 있을까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자금 지원 문제가 중요한 하나의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출산율이 바닥에 이른 이유는 훨씬 복잡한 문제이다. 출산의 행위 주체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점을 찾아야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시각에서 해결점을 찾는다. 불평등이 더욱 깊어져 가는 사회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이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나은 결과물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등으로 더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느낄 절망감을 현재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고민해 봤을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출산 주체들의 고용과 삶의 질을 개선 시키기 위해 제도를 바꾸고 자원을 투입하며, 이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인데 현재 정치인들이 이에 관심이 있을까?
또한 출생률이 바닥에 이른 원인을 제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사회 전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나 정치권은 현재의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 이민, 정년 연장을 포함한 노인 일자리 문제 등의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이곳 횡성도 이미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농업과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정부는 이들에 대한 처우 문제 등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인구는 줄고 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단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권은 장기적 전망은 고사하고 당장 시행해야 할 정책도 내놓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이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닌 자신의 영달만을 구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표를 구걸하며 이 사회의 미래를 말하지만 내심은 자신의 미래만을 그리기 때문이다. 극명하게 갈라치기가 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에 입장을 내는 것은 자칫 자신의 표를 잃을 수 있기에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정치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정치는 변화해야 하고,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총선은 다가오지만 선택의 폭은 좁다. 여전히 기성 정치인들이 판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영달이 아닌 사회의 변화를 위해 나서는 정치인들이 좀 더 많아지길 바라는 것은 나만의 기대일 뿐일까?
태준호 기자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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