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부지런한 손길로 가꾸어온
토종 노랑오이와 지레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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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분할머니(77세. 우천면 하궁리) |
4월 중순쯤 ‘횡성군 토종씨앗 실태조사’를 하며, 우천면 정금리를 돌고 있었다. 하궁리 초입에 집 울타리를 따라 두릅나무와 삼엽 국화를 심어놓고, 깃대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아담한 농가가 눈에 띄었다.
인상이 인자하고 편안하신 이기분 할머니(77세)께서 토종오이씨를 보여주셨는데, 여름이면 참외처럼 노랗게 익는 노랑오이라고 하셨다. 어떤 색깔과 맛일까 궁금해서 7월 하순에 다시 찾아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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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풋노랑오이(왼쪽)는 자라면서 참외처럼 노랗게 변해간다. 노랑오이가 늙은 모습(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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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풋노랑오이(왼쪽)는 자라면서 참외처럼 노랗게 변해간다. 노랑오이가 늙은 모습(오른쪽) |
할머니는 올해처럼 가물기는 처음이라며, 쭉쭉 자라지 못하고 그만 꼬부라져버린 노랑오이를 안타까워 하셨다. 오이 잎은 성하지 않을뿐더러 얼룩점까지 박혀있었다.
“토종오이는 노각, 가시 있는 사철 오이, 그냥 조선 오이가 있잖아. 노랑오이는 풋 적에 그냥 먹지. 노르스름하다가 중간에는 참외처럼 노랗다가 많이 늙으면 벌개져. 맛이 조선 오이처럼 괜찮아요. 보통 음력 3월에 심지. 일찍 심으면 일찍 먹고, 늦게 심으면 늦게 먹고, 가을까지는 먹지.”
노랑오이는 십년 전에 길 건너편 아는 집에서 얻어다 계속 심어왔고, 이웃이 씨앗을 가져가 심어 꽤 여러 개 따먹었다는 얘기도 들려주셨다. 쭉 뻗은 오이는 노랗고 미출미출한 게 참 보기 좋아서, 작년에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 걸 하며 아쉬워하신다.
올해 오이는 잘 자라지 않았지만, 두 폭 심어놓은 토종 지레호박은 잎이 무성하고 열매도 잘 달리고 있었다. 애호박처럼 생겼는데 애호박보다 어릴 적엔 색이 더 연하고, 따먹을 때쯤 되면 군데군데 초록빛이 도는 게 다르다.
“시장에 나오는 건 매디(마디) 호박이야. 이건 매디매디 눈눈이 달리지 않고 여기저기 맺히지. 우리 살림하고 살 적부터 여지껏 있어요. 지레호박은 음력 3월 한식 때 심어 서리가 와서 덤불이 죽기 전까지 따먹어요. 이건 늙으면 모양이 없어서 팔아먹지 못하거든. 두 폭 심은 게 요새 승허네. 스무 개쯤은 달릴 거야. ”
풋 것일 때 주로 따먹는 지레호박은 일반 애호박보다 맛이 좋다고 한다. 늙으면 호박범벅을 해먹거나 호박즙을 내서 먹는데, 어릴 때 먹는 게 낫다.
할머니는 이 마을이 바로 고향이셨다. 열여덟에 시집을 와보니, 남편은 홀시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투가리 밥을 해먹고 있었다. 두 모자는 하늘만 쳐다보는 논 너마지기를 부치고 품을 팔며 간신히 살고 있었다고 한다. 투가리 밥은 양이 적다는 뜻이고, 논은 따로 논물을 대지 못하고 비가 와야 되는 하늘바라기(天水畓)를 말씀하시는 게다.
“옛날에는 남의 소를 24삭(달) 맥여주면 송아지를 한 마리 받았지. 솥에다 소죽 쐬 먹였지. 그렇게 해서 송아지 두 마리를 얻었나봐. 송아지 키워 팔아서 논 일곱 마지기를 샀지. 저이도 그렇고 나도 품 팔러 많이 다녔지. 건너편 남의 집에 살다가 여기 온지 30년도 넘었어. 어휴…여기 오니 만고에 편하지 뭐. ”
작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평창군 계촌마을에 더덕밭일을 하러 다녔다. 논과 밭이 적었던 할머니는 동네 밭에서 품을 팔았고, 우천면 용둔리 더덕공장에서 칠팔년 일을 하다가, 평창 더덕밭으로 10년 일을 다녔다. 더덕밭일이 없어져 쉬게 되니, 올해 처음으로 한가하다고 말씀하신다. 할아버지도 산판이며 논과 밭에서 품을 팔며 부지런히 살아 오셨다. 그동안 건강하던 할아버지는 4월 중순 때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셨다.
“자식들도 다 저 먹고 살만하고. 나는 아픈 데나 없이 살다가 사는 날까지 사는 거지 뭐. 할아버지가 아파서 논농사를 못 지으니, 심심해 죽겠다고 농사 못 짓는 걸 한을 해. 할아버지는 시방 82세야. 아, 젊어서 많이 했는데 인제 좀 쉬지. 그놈의 농사 못 지어서 그러느냐고 내가 그러지. 시방 묵은 벼가 잔뜩 있는데 뭐.”
정 많고 따순 할머니의 낯빛이 무척 여유로웠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토종 노랑오이와 지레호박을 많이 닮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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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종 지레호박이 어릴 때 모습.(왼쪽)과 다자란 모습(오른쪽). 애호박처럼 생겼지만 군데군데 초록빛이 도는 것이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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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종 지레호박이 어릴 때 모습.(왼쪽)과 다자란 모습(오른쪽). 애호박처럼 생겼지만 군데군데 초록빛이 도는 것이 다르다. |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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