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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교수의 문화기행] 춘천의 자랑 김유정 이야기
음영철 교수 | 승인 2024.07.01 21:02|(297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이번에 가는 문화기행 답사지는 물의 고장 춘천이다. 제목에 춘천의 자랑이라 한 것은 2004년 12월 1일부로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역명이 바뀌고, 우리나라 인물 이름을 철도역 이름으로 삼은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다. 춘천은 예로부터 호반의 도시, 닭갈비, 막국수, 소양강 처녀 등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춘천을 다녀간 사람만큼 저마다의 춘천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피천득의 「인연」을 통해 춘천을 처음 알았다. 이 수필에서 작가는 춘천에 있는 성심여자대학교에 출강하면서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난 아사코와의 인연을 이야기한다. 수필 말미에 헤어진 여인 아사코를 회상하면서 피천득은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도 이 말은 그 이후로 잊혀지지 않고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지금도 춘천의 이미지는 첫사랑처럼 아련하다. 아마도 사춘기 시절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진1)김유정이 스물세 살 때의 모습이다

제자들을 태운 나의 애마는 가평휴게소에서 델리만쥬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서울양양고속도로로 다시 들어섰다. 남춘천 IC를 빠져나온 답사 일행은 김유정문학촌을 가기 위해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었다. 애마는 드디어 삼육대학에서 한 시간 거리를 달려 청풍(淸風) 김유정(1908~1937)이 태어난 실레마을에 들어선다. 금병산 자락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이곳 실레마을은 떡시루를 닮았는데, 춘천 사람들은 시루를 실레로 부르게 되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적한 산골 마을은 한국의 토속적인 작가 김유정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대표작들이 이곳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까닭이다. (사진1)

매표소에서 표를 끊은 답사 일행은 김유정기념관을 먼저 방문했다. 그곳은 김유정의 일생과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김유정 문학은 이제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었다. 독자 여러분도 김유정이 남긴 단편소설을 한 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다고 말한다. 봉산탈춤의 '양반놀이'에 나오는 말뚝이처럼 그의 소설에는 능청스러운 데가 곳곳에 있어 한국인만이 느끼는 해학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김홍도의 ‘고누놀이’에 등장하는 농민들처럼 산골 마을의 정경이 펼쳐진다. 챨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김유정은 1920년대의 최서해처럼 농촌 현실을 사실대로 그리기보다는 해학적으로 묘파한 작가였다.

그의 단편소설에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고통과 연민, 애수가 서려 있다. 작품 속에는 빈농, 소작인, 머슴, 들병이 들이 쓰는 생활언어가 여지없이 등장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작품 속의 ‘나’는 착한 데다가 소박하고 바보스럽기까지 하다. 산골에 사는 청년 농부들이 구사하는 유머는 구수하여 웃음이 절로 난다. 이는 김유정이 몸이 아파 요양차 실레마을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농민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토속적인 언어뿐만 아니라 한글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구사한 한국의 자랑스러운 작가이다. 『우리 문장 쓰기』의 저자 이오덕은 모든 작가들이 일본글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 단 한 사람 김유정만이 “우리들 이야기말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받았다”라고 극찬했다.

과연,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 안에는 우리말이 보물창고처럼 꽉 차 있다. 푸드득, 아르렁거리다. 깔깔대다, 할금할금, 쌔근쌔근, 수군수군, 걱실걱실, 기를 복복 쓰다와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대강이, 덩저리, 쌩이질, 얼병이, 암팡스럽다, 열벙거지, 멈씰하다, 감때사납다, 싱둥겅둥과 같은 고유어와 방언, 비속어가 난무하여 토속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뿐만 아니라 김유정의 「봄·봄」에는,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 하나가 적다)”

장인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골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도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봄·봄」 중에서

사진2) 봄이 되어도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자 ‘나’와 장인이 다투는 장면을 동상으로 재현한 모습(「봄·봄」중에서)

이 작품의 해학성은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에서 알 수 있듯이 극존칭어와 비속어를 섞어 쓰는 장면에서 나온다. 소설 속에 ‘대리를 꺽어 줄라’라는 표현은 ‘다리를 꺽어 놓을까보다’라는 의미를 담은 강원도 춘천 지역의 방언이다. 이처럼 김유정 소설 속에 나오는 언어는 강원도 사투리요, 하층 계급이 즐겨 쓰는 생활언어인 것이다. (사진2)

김유정은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문학사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의 평자들은 1930년대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하층민의 삶이 곤궁했는데, 김유정의 문학은 그러한 현실을 핍진하게 반영했다고 보지 않았다. 이러한 평가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김유정의 소설은 단지 웃음만 전해주는 소설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하층민들의 궁핍과 고단한 삶을 웃음으로 극복한 한국인 고유의 습성이 잘 나타난다. 그의 소설에는 김홍도가 농촌의 현실을 그린 <벼타작>(『단원풍속화첩』)과 흡사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장병모는 <벼타작>을 비평하면서 “술에 취한 마름과 이에 개의치 않고 웃음으로 고단함을 씻으려는 노비들의 대조적인 자세는 당시 신분사회의 부당한 관계에 대한 조용한 항변”(장병모, <김홍도 새로움>)이라고 하였다. (사진3)

사진3)출처: 김홍도, <벼타작>, 『단원풍속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유정 특유의 문체와 작가 정신이 담겨 있는 「만무방」에는 벼타작을 앞두고 벌어진 형제간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만무방」에 등장하는 응칠은 ‘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인 만무방이다. 반면 그의 동생 응오는 어떻게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응칠은 도둑으로 오인받은 자신의 누명을 벗고자 수확한 벼를 훔쳐가는 도둑을 잡는다. 그런데 뜻밖에도 범인은 자신의 동생 응오였다. “내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라고 항변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응칠은 기가 막힌다. 소작농인 착한 응오가 흉작인 상황에서 자신의 벼를 훔쳐야만 하는 만무방이 된 것이다. 이처럼 1930년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형제 만무방을 통해 통절하게 그린 작가는 한국 문단사에는 없다.

답사 일행은 김유정의 생가를 둘러보고 ‘김유정이야기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김유정문학촌 관계자는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김유정은 어린 시절에 헛배앓이를 알았는데 그때 담배를 핀 것이 나중에 폐병이 되었어.”라고 들려주었다. 인생무상이 아닐 수 없다. 김유정은 한 때 판소리 명창 박녹주를 사랑했다. 그때 김유정은 고등학교 학생 신분이었고 박녹주는 남백우와 결혼한 몸이었다. 종로 익선동 창가에서 오매불망 세레나데를 불렀던 김유정에게 소리꾼 박녹주는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의 작품 속에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남게 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유명한 백석과 자야의 러브 스토리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35년 경이었다. 문인과 기생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천재는 요절한다고 했던가? 김유정은 5년도 안돼는 짧은 기간에 소설 33편, 수필12편, 서간5편, 번역작품 2편을 남겼다. 그와 동시대에 살다 간 이상(1910~1937)은 「김유정-소설체로 쓴 김유정론」이란 소설에서 “유정의 강원도 아리랑은 바야흐로 천하일품의 경지다.”라고 말하였다. 비록 두 작가는 태어난 시기는 다르지만 폐결핵으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상문학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반면, 김유정은 2007년부터 ‘김유정문학상’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김유정과 이상의 작품 중에 어느 작품을 더 읽고 싶은가? 피천득은 「인연」의 마지막 문장을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썼다. 답사 일행 중 한 학생이 “소양강의 가을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운가요?”라고 물어본다. 스승은 말이 없고, 춘천을 빠져나온 나의 애마는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음영철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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