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평생 노름을 했고 우리 집은 자주 이사를 다녔다. 우리 집엔 악기가 많았다. 기타도 있었고 아코디언도 있었고 하모니커도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화투를 내려놓고 악기를 잡았다. 음악을 하려 했었지만 할아버지의 결사반대로 포기해야 했었다며 기타를 들면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노래를 하시곤 했다. 아버지가 악기를 잡는 날은 식구들 모두 행복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악기를 잡는 날보다 화투를 잡는 날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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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렁쇠 굴리는 아이/ 6F 캔버스에 아크릴릭 |
아버지가 화투장만 잡았더라면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차마 음악을 미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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