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마지막 효도여행’이라고 이름붙인 이유에 대해 정상환 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어르신들이 한번 입소하면 집에 가서 자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80% 이상이 집에도 못 가보고 돌아가셔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 그래서 자식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효도여행을 떠나는 기회를 갖게 하고 싶었어요.”
12일 오전 요양원에서 숲체원으로 이동한 어르신들은 점심식사 후, 교육장에서 여러 프로그램 안내를 받았다. 가족끼리 삼삼오오 화단 앞에서 사진도 찍고 다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몸을 뉘었다. 1박2일에 걸친 행사이기에, 어르신과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액자 만들기, 공예체험, 생활용품과 향기주머니 만들기 등이 예정됐지만, 평소 움직임이 많지 않던 어르신들이 다 소화하기엔 힘겨운 일정이었다. 예보도 없던 가을비까지 내려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된 대신, 어르신들은 자식, 손주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피곤한 할머니를 자리에 뉘어드린 김혜리 씨는 “4년만에 할머니와 한집에서 잠을 자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가 눈도 안 좋으신데, (나무와 꽃들의) 색깔을 알아보셨어요. 워낙 잘 안 움직이셔서 (오늘은) 피곤해 하지만, 훨씬 재밌어 하셨다”고 했다. 태백에 거주하는 김동호 목사는 “어머니가 요양원 개원 때부터 계셨다. 사실 석달도 못 사실 것 같아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입소시켰는데 지금까지 살아계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여행 내내 열심히 어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섯 자녀를 둔 김춘희(77) 할머니는 다른 입소자들에 비해 자녀들과의 외박이 잦은 편이라고 했다. 3년 전 요양원에 입소한 이래, 자식들이 1년에 한두 차례씩 인근 펜션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단다.
여행 첫날의 저녁시간, 참가자들은 노래와 춤 공연을 보며 흥을 돋우었고, 둘째 날 오전에는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숲길을 거닐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여행객들은 행사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여행객들은 “함께 가족이 시간을 보내게 되어 너무나 좋다”며, “내년, 후년에도 계속 여행을 이어나갔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되돌아가기에 앞서 가족들은 노인학대예방교육도 함께 받았다.
이번 여행에는 횡성의 여러 기관들의 도움도 큰 몫을 했다. 장애인복지관은 어르신들의 이동을 위한 휠체어를 지원했고, 한우리작업장은 미니버스를 빌려줬다. 무엇보다도 숲체원은 장소와 프로그램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숙박과 식사비용도 부담했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요양원의 모든 입소자들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행에 참여하지 못하고 요양원에 남아있던 어르신들은 10명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정상환 원장이 희망했던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자식과 부모 사이에 남아있는 응어리와 서운함을 풀어내기를. 둘째, 항상 가족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의 그리움을 풀어드리길. 셋째, 부모를 모시지 못한 죄책감을 갖고 있는 자식들이 있다면 그것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기를.
그래서인지 정 원장은 여러 차례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어머니(아버지)가 못 알아듣더라도 서운한 거 있으면 다 이야기해라. 울고 싶으면 울고, 풀어드릴 건 풀어드리고, 뉘우칠 건 뉘우쳐라. 그렇게 정을 쌓고 보내드릴 준비를 해라.”
1박2일간의 여행을 위해 가족들에게 부과된 준비물은 “어르신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마음과 시간”.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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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이 눈부신 아침, 휠체어에 앉아 자녀들과 산책에 나선 박계훈 할머니 |
| ▲ 아들, 며느리, 손녀와 함께 한 김춘희 할머니 |
| ▲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계속 카메라에 담고 있는 김동호 목사(왼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 노래장단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드는 어르신들(가운데 사진). 여행의 짐꾼이자 가이드가 되었던 요양원 직원과 자원봉사자들. 이들의 노고로 아름다운 동행이 가능할 수 있었다(오른쪽 사진). |
이창조 기자 redfrog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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