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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할머니(우천면 법주리.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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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보지도 못하고 학곡리에서 내려앉은 곳이 법주리야. 평생 여기서 빙빙 돌며 살았지. ”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저수지 근처가 고향인 김영화 할머니(80세)는 20세가 넘어서야 아랫마을 횡성군 우천면 법주리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남편이 사십쯤에 풍이 들어 십년 고생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오래도록 혼자 농사를 지어왔다. 분무기가 있어도 농약을 칠 수 없었고 경운기가 있어도 끌 수 없었다. 그저 당신의 손발로만 농사일을 하니,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몸이 아프다.
하지만 숙명처럼 올해도 텃밭농사를 짓는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서 살고 계시다.
할머니는 다리가 무겁다며 힘들어 하면서도, 평생 농사지어온 이야기를 하나 둘 들려주셨다. 심는 씨앗들은 직접 씨를 받아서만 농사지었다.
딴사람들은 해마다 씨앗을 얻으러 오는데 당신은 씨앗을 지우는 때가 곧 농사일을 그만두는 시점이 될 거라 하신다. 자기가 농사짓는 것을 자식들이 질색하기에, 넓은 땅은 남 주고 집 앞 조그만 텃밭과 뒷마을로 조금 돌아가면 나오는 작은 비탈 밭에 이것저것 심는다. 우엉, 팥, 서리태, 검은콩, 상추, 밑갓, 호박들… 열 가지 이상이다.
할머니가 농사짓는 것 중에 눈여겨보아진 것은 우엉과 밑갓이었다. 꽃이 피기 시작하고 열매가 맺기 시작한 우엉을 보면, 이것이 우엉이구나 하겠는데 꽃대가 오르지 않은 우엉은 영락없이 떡취처럼 보였다. “이거 떡취( 수리취) 아니냐”고 여쭈니 할머니는 대번에 “떡취는 산에 있는 게 떡취고 평지에 있는 건 우엉”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 그렇구나 하고 잠깐 깨닫는 사이에 할머니는 우엉은 잎을 삶아서 떡을 해먹고 줄기는 머위처럼 삶아서 나물을 해 먹으면 아삭하니 아주 맛이 좋다고 하신다.
뿌리는 늦가을에 캐다가 잘게 썰어서 삶아 낸 후에, 조선간장이나 진간장에 물엿도 좀 넣고 졸이면 역시 맛있단다. 우엉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며 몇 줄기를 따 주시는데 묵직하니 먹어 볼 것이 있다는 느낌이 확 들어왔다.
우엉만큼이나 씨앗자랑을 많이 하시는 것은 밑갓이었다. ‘뿌리가 드는 갓’이라고 해서 밑갓인데 거름이 좋아 잘되면 어른 손보다도 크게 밑이 든다.
금방 뽑았을 때는 맵고 맛이 없지만 며칠 있다 시들해져 먹으면 들큰하니 맛이 좋아진다. 잘 보관해두었다가 까먹으면 겨울철 간식으로 좋다고 하셨다.
밑갓은 김장할 때 쓴다. 뿌리는 채를 치고 잎은 숭숭 썰어 김장 속 버무릴 때 무채와 함께 넣어서 버무리면 김장속이 무르지 않고 싱싱해서 좋다고 하셨다.
청갓, 붉은갓, 돌산갓과 비교해서 맛이 어쩔까 여쭤보니 평생 밑갓만 심어 와서 다른 갓 들은 모르겠고, 농사지으며 씨앗을 지워 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다시 강조하셨다.
비탈밭에 빼곡히 뿌려놓은 밑갓이 너무 배서 솎아 주어야할 것 같은데, 할머니는 입맛이 없어서 해 먹지도 못하니 다 솎아가라고 하셨다.
몇 번을 권하셔서 내가 솎아내니 할머니는 자리에서 다듬어가라며 밑갓 떡잎을 일일이 떼어내고 딱 먹기 좋게 해주셨다.
떡잎이 연해서 먹어도 될 거 같은데 할머니 말씀이 떡잎은 원래 안 먹는다고 했다. 밑갓과 비슷한 열무도 옛날부터 떡잎 먹는 걸 못 보았다고 하셨다. 왜 그럴까 궁금하다.
“뭐 보잘 것도 없이 이렇게 사는 사람을 찾아와주어서 고맙지.”
할머니는 여름내 받아놓으셨던 밑갓 씨와 상추씨를 나눠주며 인사말씀을 하셨다.
차를 돌려 나오는데 뒷거울에 비친 할머니는 계속 손을 흔들고 계셨다.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chamho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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