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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해마다 9월이 되면 평창군 봉평면은 전국 각처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2024 평창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때를 기다린 필자는 주말이 아닌 평일을 택해 봉평으로 간다. 필자를 태운 나의 애마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평창 TG를 빠져나왔다.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이효석 문학관으로 오른다. 이효석문학관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온통 메밀꽃으로 뒤덮여서 마치 동화의 나라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이효석은 봉평에서 평창까지 100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은 죽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가산(可山) 이효석(1907~1942)이 열 살을 전후한 시절에 체험한 메밀밭 풍경을 100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지금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는 분명 우리 시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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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산(可山) 이효석은 인간성의 원형을 찾으려고 고심한 탐미주의 작가이다 |
이효석문학관은 봉평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잡았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옷이 땀에 젖는다. 봉평 마을은 산을 끼고 있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곳이 바로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에 해당하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고향이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에서 출생한 이효석은 평창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효석은 1936년에 평양 숭실전문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朝光』지에 심미적 서정의 아름다움을 담은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한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는 영원한 작가적 명예를 얻는다. 또한 이 작품은 그가 태어난 고향에 대한 최대의 헌사이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잊었지만, 이곳 봉평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고 추모한 것이다. ‘효석문화제’, ‘효석문화마을’ , ‘이효석문학관’, ‘효석달빛언덕’ 등 봉평은 이제 이효석의 마을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9월 초가 되면 이곳은 그 어느 지역보다 가장 아름다운 고장이 된다.
문단에서는 비록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김동리)라든지 ‘孝石의 존재양식은 자기 기만의 典型’(정명환)이라 평하면서 그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절하하지만, 그는 36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소설 98편, 수필 110편, 평론, 시나리오, 희곡 등을 포함한 272편의 문학 작품을 남겼다. 황순원의 「소나기」(1952)가 10대의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라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1936)은 소년과 소녀가 청년이 되었을 무렵을 다룬 소설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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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초순에 봉평에 가면 흐뭇한 메밀꽃의 풍경을 볼 수 있다 |
이효석에게 불세출의 대작이라는 미명을 남긴 「메밀꽃 필 무렵」은 장돌뱅이 허생원과 봉평에서 제일 가는 미인인 성서방네 처녀와 맺은 하룻밤의 로맨스를 다룬 것이다. 무엇이 이 둘의 ‘괴이한 인연’을 가능케 하였을까? 어느 여름날 달 뜬 밤의 하얀 메밀밭과 물레방앗간이라는 공간, 그리고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시간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궁색하나마 그 해답이 아닐까 싶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집안이 한창 어려워진 성서방네 처녀는 물레방앗간에서 울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운명처럼 만난다. 젊은 날의 허생원은 첫날 밤이자 마지막 밤이 되어버린 여인을 찾아 반평생을 떠돌이 장돌뱅이처럼 살아간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달이 환해진 밤이 되자, 허생원은 조선달과 동이와 함께 나귀를 몰고 대화장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운명처럼 동이의 인연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달밤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마치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동행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허생원 일행과 대화장까지 칠십 리 밤길을 걸으면서 이들의 사연 많은 이야기에 빠져든다. 달밤의 가을 정경에 감동되기는 독자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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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문학관 정문은 이효석의 대표작을 책등 모양으로 만들어서 이채롭다 |
봉평은 이제 나라 안 ‘문학탐방 1호’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춘 것 같다고 예술가 김병종은 말하였다(김병종, 「봉평에는 하마 메밀꽃이 피었을까」, 『김병종의 화첩기행1』). 평일인데도 가족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메밀꽃이 만발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젊은 연인들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제 봉평은 남녀노소 모두가 메밀꽃에 취해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곳이다. 이효석을 배출한 봉평은 이제 마음껏 자랑해도 될 것이다. 봉평에서 가까운 곳에 필자의 고향 횡성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메밀꽃은 강원도의 랜드 마크라 해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효석문학관을 나온 필자는 효석달빛언덕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이효석 생가터가 자리잡고 있다. 작가 이효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는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집의 규모로 볼 때 생활이 넉넉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알았으랴? 바로 이곳에서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탐미주의 작가가 나타날 줄을! 이효석은 작품 활동 초기에 ‘동반자 작가’로 활동하다가 후기에는 인간의 ‘성(性)과 자연’을 추구하였다. 그가 자연에서 찾고 싶었던 최고의 가치는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이었다(이상옥, 「이념 극복에서 자연 회귀로」, 『한국소설문학대계』). 그리고 그는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일부를 보여주었다. 아쉬운 것은 한 편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2악장에서 그친 것처럼 그는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더 쓰지 못하고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붓을 꺽어야만 했다.
봉평 사람들이 가산 이효석을 아끼고 사랑하는 줄은 효석달빛언덕에 가보고서야 알았다. 이곳에는 작가 이효석이 활동했던 1930년대 근대의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근대문학체험관이 있다. 특히 이효석이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구인회‘에서의 활동과 이들의 문학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은 좋았다. 작가 이효석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1934년 평양 숭실학교 교수로 부임 후 이주하면서 살던 때였다. 그 시절을 알 수 있는 ‘푸른집’을 복원한 것은 답사객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이효석은 이곳에서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완성하였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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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는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
무엇보다도 봉평 주민들이 가산 이효석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2021년에 이곳에서 일어났다. 봉평 주민들은 ‘가산 이효석 선생 묘지 이장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유족과 합의하여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안치되어 있던 이효석 선생 부부유택(묘)을 효석달빛언덕에 이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효석의 부부유택(묘)은 원래 진부면 논골에 안장했는데 영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용인으로 이장했다가 다시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옮기게 된다. 이를 다시 봉평 주민들이 23년 만에 메밀꽃의 고장이자 이효석이 태어난 봉평으로 이장한 것이다. 이는 소설 속 장돌뱅이 허생원이 자신의 아들인 왼손잡이 동이를 만나 제천으로 동행한 것과 일치한다. 이효석에 대한 사랑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 “팔자에 있었나 부지.”라는 소설 속 조선달의 말에 ‘아무렴’하고 응답한 허생원이 장돌뱅이로 살다가 제천으로 향했듯이 이효석 또한 떠돌다가 봉평의 고향산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영면했다.
코코 샤넬은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작가 이효석은 현실 문제를 다룬 ‘동반자 작가’에서 순수문학을 추구한 ‘모더니스트’로 자신의 작풍을 바꾸었다. 그로 인해 과거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현실에서 도피했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감했던 문장 스타일리스트 이효석은, 봉평뿐만 아니라 만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알퐁스 도데라는 작가가 현실을 담아낸 「마지막 수업」의 작가이자 낭만을 노래한 「별」의 작가인 것처럼 이제 우리 문단사도 좀 더 큰 그릇에 이효석의 문학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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