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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10월은 대한민국 어느 곳이나 자연 풍경이 아름답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심신이 지쳐갈 즈음 나의 애마는 내가 태어난 횡성으로 달려간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이지만 정작 횡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이번 기회에 횡성에 대해 좀 더 알고,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동고서저의 지형으로 된 횡성은 강원특별자치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지역이다. 횡성은 도로, 철도, 공항까지 갖춘 대표적인 군 지역으로 1개의 읍과 8개의 면 지역을 껴안고 있다. 횡성은 동쪽으로는 태기산이 있어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로는 진한(辰韓)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이 태기산성을 쌓고, 박혁거세의 신라군에 포위되어 최후의 항전을 벌인 곳이 이곳 태기산이었다고 한다. 산이 높고 바람골이 있어 태기산 정상에는 풍력발전기가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 태기산은 겨울철에는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기에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다. 추위를 각오하고 눈꽃을 보려거든 태기산 산행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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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기산 정상에 가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타고 돌고 있다. |
횡성군 둔내면 태기산에서 발원한 섬강(蟾江의 섬(蟾)이란 글자는 두꺼비를 뜻함)은 예전에는 달강, 달래강으로 불렸다. 섬강은 동쪽으로는 갑천면 대관천과 만나고, 서쪽으로는 공근면 금계천과 합류하였다가 치악산에서 내려오는 전천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태기산에서 발원한 섬강 물줄기를 막아 횡성댐을 만든 것은 2000년 10월이었다. 횡성댐은 횡성군민과 원주시민의 젖줄이다. 하지만 이곳 갑천면 5개 지역 사람들은 횡섬댐 건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횡성호수 중간에 있는 ‘망향의 동산’은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횡성호수길은 풍경이 아름다워서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6개의 둘레길 중에서 5구간은 호수를 끼고 있어 인기가 많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풀고 간다고 한다.
예로부터 강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마을을 이루었다. 섬강에서 가까운 서원면에는 한국인 신부 정규하(세레명: 아우구스티노 1893-1943)가 세운 성당이 있다. 1982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풍수원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절충된 건축물의 위용을 자랑한다.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천주교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이 탄생하였다. 정규하 신부는 신도들과 함께 성당 건축에 참여하였고, 1907년에 풍수원성당을 완공한 것이다. 로마에 가면 그리스도인의 피난처 카타콤이 있는 것처럼 횡성에는 풍수원성당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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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군 공군면 도곡리에 세워진 ‘육이오전몰장병위령비’는 이곳에서 희생된 장병들을 위로하고 있다. |
서울에서 국도로 횡성을 가기 위해서는 경강로에 있는 도덕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나의 애마는 경강로에 있는 서원면을 지나 공근면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횡성군 공근면 도곡리에는 또 하나의 잊혀진 전쟁인 ‘학살의 계곡(Massacre Valley)’을 볼 수 있다. 1951년 2월 12일~13일, 양일간의 횡성전투로 한국군 제8사단 9,900명과 미국 보병 제2사단 2,400명이 이곳에서 중공군과 장렬히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곳에는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육이오전몰장병위령비(六二五戰歿將兵慰靈碑)’가 쓸쓸하게 세워져 있다. 또한 그 옆에는 학살의 계곡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군 생존자 윌버 웹스터(WILBUR R.. WEBSTER)의 기념식수가 자라고 있다. 부디 무성한 나무로 잘 자라주길 기원해 본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가까운 우천면 우항리에는 ‘참전기념공원’이 있다. 초가을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시각인데도 아이들은 이곳에서 놀고 있었다. 참전기념공원은 뛰노는 아이들로 인해 더욱 생기가 넘친다. 그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네덜란드 해군의 참전을 기리는 ‘네덜란드군참전기념비’와 ‘6.25·베트남전참전기념탑’이 나란히 서 있다. 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전쟁을 치루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드네프로 강 언덕에는 ‘전승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이 언덕에는 용감한 군인이 아닌 여인상(女人像)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전승이란 전쟁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뜻하기에 여인상은 용감한 군인상보다 더 감동적인 느낌을 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도 전쟁이 아닌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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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회 횡성한우축제가 열리는 섬강 둔치 일원에는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
저녁 때가 되어 횡성한우축제가 열리는 섬강 둔치 일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횡성한우축제는 문체부가 발표한 2023년 인지도 평가 부분에서 전국 4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횡성한우축제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인지도뿐만 아니라 축제 기간에 많은 방문객이 올 수 있는 유치 전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횡성한우축제가 2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박서진, 장윤정, 이찬원, 테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가수들이 스페셜 콘서트에 참여하여 관객들을 기쁘게 하였다. 박서진의 열정적인 첫날 무대는 축제의 밤을 뜨겁게 달구었다고 한다. 제20회 횡성한우축제는 이제 막이 내렸다. 횡성한우축제가 전국 한우테마축제 1위를 넘어 100만 명이 넘는 축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섬강 둔치와 웰리힐리파크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횡성한우축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횡성이 한우의 고장이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횡성은 예로부터 소들이 좋아하는 기후와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횡성은 일교차가 커서 한우가 잘 자랄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평야 지대가 많아 볏짚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소를 키우기에는 안성맞춤의 고장이다. 여기에다가 1995년부터 시작된 횡성한우 명품화 사업은 ‘사료, 혈통, 사양관리’를 철저히 진행하여 한우의 육질을 좋게 하였다. 이제 횡성한우는 '2024 대한민국 소비자 신뢰 대표브랜드 대상'을 17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소비자의 신뢰가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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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의 도시 기반을 마련하고 횡성한우를 브랜딩한 고 조태진 전 군수 |
그렇다면 횡성한우를 브랜딩한 사람은 누구일까? 필자는 중고등학생 때인 1980년대 중반에 조곡리 우시장을 본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횡성 우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외지 사람들은 횡성을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횡성 하면 한우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고 조태진 전 군수의 노력이 컸다. 고 조태진 전 군수는 재임 11년 동안 횡성댐을 비롯해 횡성의 도시 기반을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횡성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인 횡성한우, 안흥찐빵, 횡성더덕을 브랜딩한 인물이다. 횡성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횡성과 인연을 맺은 인물로는 누가 있을까? 멀리는 조선 전기의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에서부터 가깝게는 횡성 태생인 슈퍼주니어 김희철, 테니스 선수 이형택, 가수 겸 배우 안재욱을 들 수 있다. 강림우체국 옆에는 ‘각림사 옛터’ 표지석과 안내판이 남아 있어 이곳에서 태종 이방원이 스승인 원천석으로부터 배웠던 곳임을 알려준다(권혁진, 『문학기행: 강원의 문인을 찾아서』).
횡성의 인물로는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상렬(韓相烈) 의사가 있다. 그는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국 군대 강제해산으로 국권이 침탈되자 동지 200여 명을 규합하여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20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의용부·대한독립단 등 애국단체의 참모로서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5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천면 우항리에는 ‘한상렬 의사 추모비’가 있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횡성 군립 도서관 2층 로비에 가면 횡성을 빛낸 문인들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곳에서 필자는 조대현 아동문학가(『병구는 천덕꾸러기』 외), 임교순 아동문학가(『방울꽃』 외), 이건선 시인(『바보』 외), 김성수 시인(『시(詩)가 흐르는 섬강』 외), 정재영 소설가(『아름다운 것들』 외), 김양수 아동문학가(『엄지 선생님』 외) 등을 만날 수 있었다. 횡성의 문인들이 있기에 횡성은 가난하지 않으리라. 짧은 지면이지만 문인들의 대표작만이라도 알리고 싶다. 대한민국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으로 인해 독서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1층에서 만난 아동·유아 자료실과 장난감 도서관이 이채롭다. 횡성의 어린이들이 장난감과 책을 가까이 하면서 자랐으면 한다.
“횡성을 아시나요?”라는 질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횡성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민초들의 삶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횡성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영식 문학박사가 쓴 『횡성군 오일장의 어제와 오늘』과 『횡성의 구비문학』 일독을 권한다. 횡성의 보석들은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니까.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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