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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교수의 문화기행] 기린 발굽의 도시, 인제를 가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5.01.02|(308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눈 온 아침, 세상은 온통 하얀 이불로 덮여 있다. 오늘의 답사 귀착지는 백담사이다. 필자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강원도 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이다. 경유지는 박인환 문학관이다.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으나 점심을 든든히 먹고 가기로 했다. 아스팔트에 쌓인 눈도 녹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영포리에서 출발한 나의 애마는 1시간이 조금 넘어서야 박인환문학관에 도착하였다.

박인환문학관은 올해 여름에 다녀간 이후 다시 찾아왔다. 그때만 해도 이 정도 사진이면 원고에 사용해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이란 게 책상에 앉는다고 써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뜨거운 여름 햇살의 사진과 달리 눈 내린 겨울의 인제는 지난날의 감성을 뒷전으로 미루었다. 기린 발굽 모양을 닮아서 인제(麟蹄)라 불리는 이 도시는 눈이 내렸을 때 와야 제맛이 난다. 눈 속에 잠긴 백담사는 그 자체로 인생샷이기에.

박인환문학관은 1950년대의 명동을 재현하여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박인환문학관에 들어서자 “박인환 시인의 고향 인제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박인환(1926~1956)은 31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다 간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그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극심했던 1940년대를 전후해서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맞이한 해방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였으나, 채 5년도 되지 않아 경험한 한국전쟁은 그의 삶을 뿌리째 흔들었다. 전쟁의 아픔과 슬픔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 주었지만, 박인환은 그에게 주어진 시인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雜誌의 表紙처럼 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와 숙녀> 중에서

1955년 『시학』 5호에 처음으로 발표된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 시인의 대표작이자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 대해 “가벼운 삶의 페이소스와 센티멘털리즘으로 짜여진 아름답고 감미로운 서정시”(신경림·정희성, 『한국 현대시의 이해』, 1981)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현실의 처지에 자신이 함몰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직시하고 대항하려는 의지”(이유경, 「박인환 시 분석」, 2015)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국의 1950년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시인이란 무엇이며,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혼돈의 시대였다. 이 시는 모더니즘의 기수 박인환이 1950년대를 살다 간 사람들에게 삶의 허무가 아닌 위로를 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적 의미가 크다.
1950년대 명동 일대를 재현해 놓은 인제의 박인환문학관은 그 자체로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관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다. 박인환문학관은 명동, 종로 3가, 충무로 4가를 드라마 세트장처럼 꾸몄는데, 이곳이야말로 1950년대 한국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한다. 그곳에는 모나리자 그림을 걸어놓은 추억의 다방 모나리자가 있었고, 봉선화 다방에는 문인들이 모여 문학과 예술을 논하였다. 명동 대한중석 옆 삼층건물에는 동방싸롱이 있어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모던보이 박인환은 김병옥, 임호권, 양병식 등과 함께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운영한 선술집 유명옥에서 현대 모더니즘 시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유명옥은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는 명동의 한 모퉁이 집인 ‘경상도집’에서 만들어진다. 박인환의 마지막 유작이 1956년의 어느 허름한 주점에서 노래로 완성됐다는 것만으로도 ‘문학적’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1950년대는 절망과 낭만이 공존하였고, 시와 예술의 콜라보가 가능했던 시대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 중에서

<세월이 가면>이란 시는 타계 직전 박인환이 『아리랑』(1956. 6. 1.)이라는 잡지에 보낸 것을 친우 이진섭이 곡을 붙이고 테너 가수 임만섭 씨가 불러 유명해졌다. 이 시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즉흥적으로 작사 작곡된 작품이 아니라 열흘이라는 시차를 두고 완성된 것이다. 한마디로 박인환과 이진섭이 어느 정도의 계획적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만들어낸 야심작인 것이다(유성호, 「박인환 시편 <세월이 가면>의 원전과 창작 과정」, 2013).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가수 나애심이 등장하여 서울 방송국을 통해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1950년대 전쟁이 남긴 시대의 상처를 박인환의 세련된 언어로 보듬은 아름다운 노래이자 인생의 비가(悲歌)라 할 것이다. 그 후 <세월이 가면>은 1976년에 박인희가 리메이크하여 부르면서 더욱 친숙하게 알려지게 된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용모였던 박인환은 1956년 3월 20일에 세상을 떠나갔다. 그의 시처럼 “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남긴 채로.

나의 애마는 인제 답사의 귀착지인 백담사로 발길을 재촉한다. 눈밭으로 변한 백담사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 왕복 12킬로를 걸어야만 했다. 눈이 오면 빙판길이기에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는데, 안전사고에 따른 조치였다. 예상한 바였기에 발걸음을 빨리해서 계곡으로 난 길을 걸어간다. 설악산 국립공원 백담 분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걸음은 눈보라가 치는 바람에 옷깃을 세워야만 했다. 내설악 계곡으로 깊이 들어가자 바람은 간 데 없고, 고요한 가운데서도 계곡물 소리만이 귀를 즐겁게 한다.

눈 내린 산길을 돌아드니 백담사 수표교 입구에 도착하였다. 설악산 백담사 경내에 있는 너와지붕으로 만든 백담다원 농암실은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손님은 한 사람도 없고 주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필자 또한 어둡기 전에 떠나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농암실 차향만을 맡으며 발길을 돌렸다. 운길산 수종사에 있는 삼정헌 다실에서는 두물머리의 차경을 음미하면서 차를 마셨다면, 백담다원을 다시 오게 되면 그때는 오늘의 나를 기억하며 차를 마시리라.

눈 맞은 한용운 선사의 흉상은 더욱 의연하다.

백담다원 옆에는 시인이자 소설가요,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며 신흥사의 말사인 이곳 백담사에서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조선불교유신론』과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그는 이곳 산중에서 불교 교리뿐만 아니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조선 불교의 쇄신론을 역설한 것이다. 1919년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외친 만해는 일본 경찰에 자진 체포되었다. 그의 죄명은 ‘내란죄’였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에 따르면, ‘독립선언서’에 덧붙인 ‘공약삼장’ 중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라는 조항 때문이었다고 한다. 1921년 감형으로 출옥한 만해는 백담사 오세암에서 1925년 8월에 『님의 침묵』을 탈고하였다. 2025년은 『님의 침묵』이 완성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만해는 이 시집에 총 88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백담사에는 <나룻배와 行人>, <님의 침묵>을 새긴 시비가 있어 답사객을 맞이한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님의 침묵> 중에서

이 시에서 ‘님’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만해는 시집의 서문 격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한 사람으로서, 만해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만해는 조국의 독립을 뜻하는 ‘님’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눈을 감았다.

수렴동 계곡에 있는 저 많은 돌탑 들은 무엇을 소망하면서 쌓았을까.

우리 민족은 1945년에 해방이 되었으나 다시 헤어진 채로 70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가 기루면서 살고 있다. 인제 백담사 수렴동 계곡에는 수많은 돌탑이 장관이다. 백담사를 떠나면서 필자도 2025년 새해에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길 기원해 본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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