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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튀니지에 온 지 닷새 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수스 지역도 좋았지만 내심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숙소를 정하면서 마음은 더 설레었다. 튀니스에서 가까운 곳에 명소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튀니지인들을 위한 봉사대 일정이 잡혀있기에 오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삼청(三淸)으로 유명한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시디 부 사이드는 ‘성스러운 사이드 씨의 집’이란 뜻인데, Sidi란 단어는 영어의 ‘Mr’이고, 이곳에 살던 어느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권기정, 『지금 이 순간 튀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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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시디 샤반에서 바라본 지중해의 모습은 아늑한 느낌을 준다. |
여행객들에게 튀니지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언제나 1순위는 이곳 시디 부 사이드라고 한다. 하늘과 바다뿐만 아니라 마을까지도 온통 푸른색을 띄고 있는데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언덕길을 올라간다. 이곳에서는 가는 곳마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경험하게 된다. 이젠 많이 사라져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한국에도 이런 골목길이 동네마다 있다. 이곳 튀니지 사람들이 직선이 아닌 골목길을 많이 만든 것은 전쟁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도망을 가기에는 골목만한 곳이 없다.
언덕 꼭대기에는 1920년대 조성된 ‘카페 데 나트(Cafe de Nattes)’가 있다. ‘나트’는 돗자리란 뜻인데 이곳 카페 안에는 카펫을 깔아두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필자가 이곳을 꼭 가고자 했던 이유는 유럽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카페이기 때문이다. 앙드레 지드, 모파상, 알베르 까뮈, 생텍쥐페리,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문인으로부터 파울 클레와 같은 화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필자도 친절한 주인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하였다. 테라스에 기대어 건물 사이로 보이는 지중해를 바라본다. 필자도 젊은 시절에는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곳을 거쳐 간 문인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기 바라면서 카페를 나선다. 일행 중 한 명이 필자에게 도넛처럼 생긴 밤발루니를 준다. 튀니지 사람들은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후에 설탕 가루를 묻혀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시디 부 사이드에는 또 하나의 명소인 ‘카페 시디 샤반(Cafe Sidi Chabanne)’도 있다.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워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쉽지만 오후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어쩔 수 없다.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봉사대 일정을 마친 일행은 튀니지 여행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일정을 서두른다. 말로만 듣던 카르타고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 박물관 매표소에서 12디나르를 지불하고 통합 티켓을 산다. 이 티켓으로 카르타고 유적 8곳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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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르사 언덕의 포에니 쿼터 유적지는 한때 이곳이 카르타고의 부자들이 살았던 동네임을 알려준다. |
이곳 비르사 언덕의 포에니 쿼터 유적지는 고대 카르타고 귀족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카르타고 출신인 한니발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으나 지금은 폐허만 남아있다. 한때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한겨울에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군을 격파했던 카르타고의 총사령관 한니발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로마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다룬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도 한니발은 주인공이 아니라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다룰 때 간헐적으로 나올 뿐이다. 현대에 와서 한니발을 제대로 다룬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2권에서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니발은 예외인 것 같다. 훗날의 역사가들과 달리 민중들은 2차 포에니 전쟁의 승자인 스코피오보다는 패자인 한니발을 더 기억하고 있다. 민초들은 기억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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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우스 목욕탕은 옛모습을 볼 수 없으나 기둥만이 남아있어 그 크기가 대단했음을 가늠하게 한다 |
비르사 언덕으로 왔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니 가까운 곳에 안토니오스 목욕탕(Antonine Baths)이 있다. 고대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인들을 몰아내고 바닷가에 지은 공중목욕탕은 그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지금은 파괴되어 옛모습을 볼 수 없으나 목욕탕 기둥만이 남아있어 그 크기가 대단했음을 가늠하게 한다. 여행객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과거에는 지하였으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냉탕, 온탕, 열탕, 사우나를 즐겼다고 한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 페니키아의 타이어에서 온 전설 속 여왕 디도가 세웠다고 한다. 이 도시는 로마와의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 끝에 기원전 146년에 멸망하였다.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든 후에 이곳에다가 대규모의 목욕탕을 만들고, 멀리 지중해를 바라보며 인생을 즐겼다. 그러나 5세기에 반달족이 이곳을 파괴했고 7세기 이후 아랍인들은 그 돌을 튀니스 건설에 재사용했다고 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안토니우스 목욕탕 답사를 끝낸 후에 간 곳은 로마 원형극장이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공연이 이루어질 만큼 관리가 비교적 잘 되고 있다. 필자는 ‘오 솔레미오’를 불렀는데 신기하게도 그 소리가 공명되어 멀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문화유산은 그저 바라보기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용하고 보존할 때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겨울 날씨임에도 한낮의 햇살은 뜨겁다. 원형 극장 입구에서 작은 조각상을 올려놓고 파는 노인이 안쓰러워 5디나르를 주고 오래된 등잔을 샀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부디 오래 사시기를.
고대 카르타고 유적지의 마지막 답사 장소는 토펫(Tophet) 신전이다. 이곳은 카르타고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유아들을 제물로 바쳤던 곳이라고 한다. 토펫 신전 근처에는 비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신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친 부모들은 가슴에 아이를 묻었다고 한다. 이곳은 아직도 인신공양을 둘러싼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살아있는 아이가 아닌 죽은 아이를 바친 거라는 이야기가 한편에서 전해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책에는 산 아이를 바쳤다고 한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은 아이를 바쳤을 거라 믿고 싶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답사 일정은 튀니스의 재래시장인 메디나(Medina)에서 점심을 먹고 쇼핑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필자와 함께 한 일행은 메디나 시장 안에 있는 엘 알리 레스토랑으로 갔다. 메디나 시장 안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이곳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가 힘들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의 즐거움은 음식에서 시작된다. 튀니지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꾸스꾸스와 함께 닭요리를 먹었는데 그 맛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이곳은 튀니지의 일반 음식점보다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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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나(Medina)의 전통시장인 수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튀니스의 전통 시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구시가지에 있는 메디나 시장 초입에는 전통의상과 여성복을 파는 상점들이 작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여학생이 튀니지 전통의상을 입어보더니 맘에 들었는지 가격을 흥정한다. 아랍의 여성들은 집안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고 생활한다고 한다. 문화적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여기저기서 ‘니 하오’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필자가 코리아라고 하니 더 반갑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곳이 이곳 메디나의 수크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조카들에게 줄 선물을 산다. 가격이 싸서 부담이 없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빠져나온 필자는 프랑스 문(Porte de France) 앞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히잡을 두른 젊은 여성들이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필자가 만난 튀니지 사람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너무나도 친절했다. 이제 튀니스의 메디나를 끝으로 나의 튀니지 답사는 끝을 맺는다. 피렌체, 베네치아, 오르비에토, 로마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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