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르네상스의 본고장 이탈리아 기행 (1)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5.04.05|(314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드디어 봄이다. 오늘은 애마를 타고 횡성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엘크 카페로 간다. 횡성희망신문 원고 마감 시간 안에 기사를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원고가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이탈리아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는 것과 올해 1월에 체험한 이탈리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자칫 이번 글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튀니스 공항을 떠나 로마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1월 25일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전용 버스를 타고 로마 외곽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보냈다. 로마 여행은 마지막 날로 일정을 잡았기에 이른 아침에 일어난 일행은 첫 번째 답사지인 피렌체로 급하게 이동하였다.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으로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를 먹었다. 파스타 맛은 일품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탈리아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서 ‘식후에 화장실’을 꼭 가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물값과 화장실 사용료를 별도로 내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상 피렌체에서 머무는 시간은 너무나 짧기에 촌각을 다투어야만 했다. 베네치아에서 저녁을 먹기로 예약되어 있기에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뜨고 피렌체의 명소를 답사해야 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 지방 토스카나주의 중심 도시이며, 아르노강이 피렌체 도심을 ‘북쪽’과 ‘남쪽’으로 가르며 흘러간다. 피렌체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59년경에 로마인들이 플로렌시아 마을을 건설하면서부터이다. 사실 중세 초기까지만 해도 피렌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무명의 도시였다. 그러던 피렌체에서 인류 역사의 가장 찬란한 문화의 꽃인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은 전적으로 메디치(Medici) 가문을 만나면서부터다. 도대체 이곳 피렌체에서 15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피렌체는 책 한 권으로도 설명이 부족한데, 짧은 지면을 통해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피렌체는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고 가는 도시라 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25년간 생활했다는 최영록 여행 가이드는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두오모 대성당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행자들의 집결지인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그는 피렌체의 역사와 메디치 가문, 그리고 두오모 성당을 만든 브루넬레스키의 생애를 요약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피렌체 사람들의 자존심인 두오모 대성당은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고 불린다.

사실 피렌체에 오기 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2003)라는 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던 두오모 대성당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 크기가 시선을 압도할 만큼 웅장하다.
두오모 대성당은 위대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둥근 돔을 완성하면서 유명해졌다.
미술사의 고전인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는 브루넬레스키가 500년 가까이 유럽과 미국의 건축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브루넬레스키는 지상 50미터 높이에서 지름 45미터나 되는 반구형 지붕을 건설해야 하는 난공사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의 판테온을 17년간 공부하였고, 피렌체 사람들의 자존심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즉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완공하였다.

오래된 베키오 다리보다도 나란히 앉은 노부부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준세이, 그거 알아?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겠니?”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속 주인공은 아니지만 준세이와 아오이와 비슷한 연인을 본 것은 아르노 강가에서였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베키오 다리(1345년에 건설됨)를 뒤로 하고 나란히 앉아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필자도 황혼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저런 포즈로 앉아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일행은 분초를 다투며 피렌체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생각하는 시뇨리아 광장을 찾아갔다. 이곳은 두오모 대성당과 쌍벽을 이루는 피렌체의 대표 명소이다.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궁 앞에는 그 유명한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다윗)상’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물론 진품은 1873년에 피렌체 아카데미아미술관 내부로 이전되었다. 선지자에서 영웅으로, 다시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조각상으로 변모한 다비드상 옆에는 바치오 반디넬리의 조각상인 <헤라클레스와 카쿠스>가 나란히 서 있다. 다비드가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이자 피렌체 공화정을 상징한다면, 괴물 카쿠스를 곤봉으로 때려 죽인 헤라클레스는 다시 권력을 되찾은 메디치 가문을 표상한다. 시청사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다비드와 헤라클레스는 피렌체 공화정과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두고 뺏고 빼앗아야만 했던 당시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걸작품인 것이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성장한 단테, 마키아벨리,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거장들을 배출한 예술과 문화의 도시이다. 짧은 지면이나마 이들의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피렌체에 다시 간다면, 우피치미술관을 첫 번째로 답사할 것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면, 이탈리아의 우피치미술관에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 해는 생각보다 짧았고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행은 베네치아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바로크 음악의 거장, 안토니오 비발디는 ‘사계’의 작곡가로 유명하다. 겨울인 만큼 버스 안에서 비발디의 ‘겨울 3악장’을 듣는다. 그의 대표작 ‘사계’는 200년 가까이 잊혀졌다가 1950년에 최초로 음반이 발매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박용은·박성경, 『빛과 색채의 도시, 베네치아 그림 산책』). 비발디와 마찬가지로 명작의 운명이란 참으로 기구하다.

베네치아는 날씨만 좋다면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우리에게 베니스 영화제로 잘 알려진 베네치아는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베니스는 이탈리아어로 베네치아라고 하는데, 베네치아보다는 베니스가 더 친숙하게 와닿는다.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베네치아는 대략 150개가 넘는 섬과 180개에 가까운 운하, 410개나 되는 다리로 연결된 도시이다.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를 이국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풍경은 곤돌라와 노를 젓는 곤돌리에다. 이른 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려서인지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운하에는 곤돌라만 비를 맞고 있다.

겨울비가 내려서인지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곤돌라만 비를 맞고 있다.

베네치아에 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산 마르코 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베네치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며 극찬한 이곳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기품을 유지하면서 서 있다. 성 마르코(성 마가)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세운 산 마르코 대성당은 9세기에 처음 건축이 시작되었고, 11세기 말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결합되면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었다. 성 베드로의 제자인 성 마르코의 유해가 이곳 베네치아까지 오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베네치아 상인 2명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성 마르코의 유해를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 몰래 빼내서는 무슬림들이 혐오하는 돼지고기 속에 숨겨 이곳 베네치아까지 옮겼다고 한다. 성 마르코가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다.

베네치아의 명소 산 마르코 광장과 종탑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추억을 남긴다.

필자는 산 마르코 광장에 오기 전부터 ‘카페 플로리안’에 꼭 가고 싶었다. 이곳은 1720년에 개업한 이래 최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비롯하여, 괴테, 바이런, 마르셀 프루스트, 찰스 디킨스, 토마스 만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알려져 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필자는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이곳 카페 플로리안에서 핫초코를 시켜 마셨다. 카페 플로리안에서 차를 마신 그 옛날의 사람들과 예술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16세기 베네치아는 화려한 도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피날레를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21세기인 현재도 베네치아는 매년 수많은 영화인들이 베니스 영화제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이곳 베네치아는 한 해 3,0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유리공예 공방을 둘러보다가 장인이 만든 가면을 하나 샀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어린 조카가 생각나서였다.

클로드 모네는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이 도시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베네치아를 극찬했다. 베네치아를 떠난 나의 전세 버스는 오르비에토와 로마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스포츠
여백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25234)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앞들서2로 23(2층)  |  전화 : 033)342-1507  |  팩스 : 033)343-1507
등록번호 : 강원아00116(2012.02.08)  |  발행인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조만회  |  편집인 : 조만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희
계좌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농협 351-0755-0672-03  |  이메일 : hschamhope@naver.com
Copyright © 2026 횡성희망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