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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2025년 1월 27일 월요일 아침, 날씨는 잔뜩 흐렸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베네치아를 끝으로 일행은 다시 로마로 가야 했다. 로마로 가는 길목에서 피사, 아시시, 오르비에토와 같은 소도시를 경유해야만 했다. 베네치아 여행을 오전에 마친 일행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널리 알려진 사탑의 도시, 피사(Pisa)로 출발했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강한 비가 차창을 때리면서 쏟아졌다. 날씨 요정으로 불리는 학생한테 비가 그칠 수 있게 부탁했는데 다행히 겨울비는 피사에 도착할 즈음 그쳤고, 일행은 피사의 사탑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막상 와보니 신기하게도 피사의 사탑은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져 보였다. 피사의 사탑은 피사 대성당에 딸린 55미터의 종탑인데, 기울어진 탑이라는 뜻을 가진 '사탑(斜塔)'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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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프란체스코 성인의 고향으로 알려진 아시시(Assisi) 수도원의 전경 |
1월 28일 아침, 몬테카티니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행은 다시 전용 버스에 올라 아시시(Assisi)로 갔다.
아시시는 이탈리아 중부 소도시로,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아담한 성문을 지나 오르막길에 오르자, 멀리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수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1181년경에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전쟁 포로로 잡히는 경험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포로 생활 중 병을 앓기도 했던 그는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삶을 선택하였다.
그 누구보다도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성 프란체스코는 죽는 날까지 사랑과 평화를 염원했다고 한다. 그때나 이때나 평화를 위한 기도는 언제 그칠 것인가?
로마 외곽의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는 이곳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알지도 못했던 도시였다. 오르비에토는 중세의 매력을 지닌 슬로우 시티의 본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행은 오르비에토로 가기 위해 푸니쿨라레(산악열차)를 탔다. 언덕 끝에서 하차한 일행은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중세 소도시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신도시가 생겨나면서부터 골목길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오르비에토는 골목이 살아있었고, 아늑했으며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이곳을 찾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저녁이 되어서야 로마에 입성했다.
1월 29일, 드디어 로마의 아침이 밝았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로마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는 2천 년 동안 지중해의 최강대국이었다. 로마는 도로, 수도교, 로마법, 바티칸 시국, 콜로세움, 판테온, 성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 트레비, 스페인 광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소와 인물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도시 곳곳마다 문화재 없는 곳이 없고, 저마다 사연이 있어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로마는 어디서나 여행을 시작해도 될 만큼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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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를 먹은 곳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계단 |
학생들과 동행한 필자는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하루짜리 로마 여행을 시작했다. 로마는 처음 올 때는 설레고, 두 번째 올 때는 궁금해지고, 세 번째 올 때는 완전히 빠져든다고 한다. 로마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 수 있는 도시인 것이다. 겨울 아침이라서 그런지 관광객은 드문드문 보인다.
스페인 광장 계단이 유명해진 것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1953)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젤라토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전 세계인들은 스페인 광장 계단을 찾아온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젤라토 금지 구역이다. 먹으면 벌금을 내기 때문이다.
명품 거리로 유명한 콘도티 거리 86번지에는 유명한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è Greco)’가 있다. 1760년에 만들어진 이 카페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근대 지성의 성지로 알려진 이곳을 다녀간 예술인은 바이런, 키츠, 스탕달, 입센, 안데르센을 비롯하여 바그너, 멘델스존, 리스트, 비제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의 숨결이 내게도 전해져 좋은 글을 쓸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트레비 분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트레비 분수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니콜라 살비가 건축한 것으로 높이 26.3m, 너비 49.15m로 된 대형 분수이다. 이곳에 온 많은 여행객은 오른손으로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는데, 1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2개를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올 수 있다고 한다. 3개는 이혼할 수도 있기에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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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통해 잘 알려진 로마의 콜로세움은 사실 ‘살육의 현장’이었다. |
로마의 랜드마크는 콜로세움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통해 잘 알려진 콜로세움은 사실 ‘살육의 현장’이었다. 4세기 동안 50만 명이 이곳에서 죽어나갔다. 고대 로마를 상징하는 콜로세움은 높이 48미터, 둘레 500미터의 크기이며, 대략 4만 명에서 7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각종 동물쇼와 설정극이 진행되었으며, 피날레는 검투사들의 목숨을 건 결투이다. 로마의 황제는 이곳 콜로세움에서 시민들을 향해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직접적으로 과시하였다.
로마 안에 있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바티칸 시국이다. 바티칸 시국은 0.44제곱킬로미터로 여의도 면적의 1/6 정도의 크기다. 로마 시내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은 일행은 마지막 일정인 바티칸 박물관으로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1시간을 기다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 안으로 입장했다. 뮤즈 여신의 방에서는 미켈란젤로가 “가장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고 말했던 ‘토르소’를 볼 수 있었다. 로마의 신상을 모아 놓은 원형의 방에 이르러서는 네로 황제의 ‘욕조’와 함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모습을 보았다. ‘지도의 회랑’이라 알려진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장식된 천장화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티칸 박물관의 자랑은 ‘라파엘로의 방’에 전시된 ‘아테네 학당’과 시스티나 소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일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4년 간의 고독한 작업 끝에 완성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그의 육체적인 노력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한 것이기에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E.H. 곰브리치·백승길/이종숭 역,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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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피에타(Pietá)’는 라틴어로 ‘비통’이란 뜻을 담고 있다. |
이탈리아 여행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곳에 세워진 성 베드로 대성당은 1626년에 완공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900여 톤의 황금과 예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이른바 ‘면죄부’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곳에 오기 전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보고 싶었다. 미켈란젤로는 24세에 ‘피에타’를 제작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로 등극하였다. 아쉽게도 현재는 방탄유리 안에 있는 피에타상을 볼 수밖에 없다. ‘피에타(Pietá)’는 라틴어로서 ‘비통’이란 뜻이다. 화려함의 극치인 성 베드로 성당을 나오면서 성 프란체스코를 생각했다. 화려함과 청빈함,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탈리아 기행』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문호인 괴테는,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트레비 분수에서 던진 1개의 동전은 나를 다시 이탈리아로 오게 할 것이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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