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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강원도에서 욕지도와 거제도를 가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5월 초 연휴를 맞아 무작정 달려간 곳은 통영에서 배로 가야만 하는 욕지도이다. 욕지도는 화엄경의 한 구절인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 뜻을 풀이하면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찬 섬’이다. 서울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한 나의 애마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점심 때가 되어서 통영에 도착하였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에 간 곳은 ‘통영 이순신공원’이다. 언덕 위에는 “必死則生 必生則死”를 새긴 이순신 장군의 기념 동상이 남쪽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내 나라가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청마 유치환 기념관’이 통영에 있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강원도에서도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나정기 국어 선생님이 횡성고등학교에 부임해 오셨다. 칸트와 같이 시간 관리에 철저했던 선생님은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교실에 들어오셨다. 그리곤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질문하여 학생들을 긴장하게 하였다. 국어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질문에 대비하였다.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 학생들은 손바닥을 맞았다. 그때 외운 시들이 가끔 기억날 때가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시작되는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라는 작품은 40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지금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시를 읽으실 때의 낭랑한 목소리만이 귓전을 울린다.
다음 날 아침, 허름한 모텔을 빠져나온 나의 애마는 삼덕항을 향해 달렸다.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대자마자 욕지도로 가는 영동골드고속호에 올랐다. 삼덕항에서 출발한 배는 검푸른 파도를 가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갑판에서 먹는 충무김밥은 아삭하삭한 석박지와 구수한 시락국을 곁들여서인지 맛이 일품이었다. 바닷바람이 잔잔해질 무렵, 배는 욕지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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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지도 망대봉 정상에서 바라본 욕지항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
욕지항에서 천 원을 내고 탄 버스는 10분을 달려 야포 정거장에서 멈추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해안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다. 고갯길을 25분 정도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일출봉 정상이다. 잠시 먼바다를 바라보고 숨을 돌린다. 누군가는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여행객은 걷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길옆에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무성하다. 시야가 탁 트인 망대봉 정상에 도착하니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이곳에서 욕지항이 담긴 풍경 사진을 찍었다. 해발 205미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니 독자들은 드론샷으로 알고 이쁘게 봐주시리라.
해안 트레킹은 능선을 따라 걸을 때 제맛이 난다. 욕지고메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제1출렁다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2012년에 완공된 출렁다리를 건너자마자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과 파도가 만든 황금색 절벽이 바다를 향해 쭉 뻗어있다. 날이 흐려서 신이 만든 비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아쉽다. 필자는 제2출렁다리로 발걸음을 돌리었다. 해안가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칼로 잘라낸 절벽 사이로 쪽빛 바다가 보인다. 통영을 두고 어떤 이는 나폴리를 닮았다고 했는데 이곳 욕지도 해식 절벽에서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욕지도 해안가 절벽은 언젠가 방송에서 봤던 나폴리의 아말피 절벽 해안도로와 비슷한 인상을 안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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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출렁다리를 건너 넓은 바위 왼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바람과 파도가 만든 황금색 비경을 볼 수 있다. |
필자는 인생을 살면서 꼭 가봐야 할 제2출렁다리와 최근에 준공된 제3출렁다리를 끝으로 욕지도 해안 트레킹을 마쳤다. 자연이 만든 한 폭의 그림인 이곳 욕지도는 너무나 아름다워 말이 아닌 감탄사를 남발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봄에 왔지만, 다시 욕지도에 간다면 가을에 가고 싶다. 가을 욕지도는 또 어떤 풍경일까? 가을이 기다려진다.
필자는 다시 삼덕항으로 되돌아와 ‘편백숲길캠핑장’에서 긴 하루의 여정을 마쳤다. 예약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잔뜩 흐렸다. 비가 오기 전에 빨리 텐트를 쳐야만 했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캠핑을 동반한 것이어서 기대감이 사뭇 컸다. 텐트 설치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굵어졌다.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고단한 하루와 이별했다.
늦은 아침, 캠핑 장비를 정비한 필자는 신거제대교를 지나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로 들어섰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도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다. 이곳에 북한군 포로들이 수용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금이야 다리로 연결되었지만 1951년 당시 거제도는 다리가 없어 포로들이 이 섬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51년 2월부터 전쟁포로들은 이곳 거제포로수용소에 수용되기 시작하여 최대 17만 3천여 명이 수감되었다. 유엔군은 제네바 협정에 의거하여 360만 평(여의도 면적의 4배)에 해당하는 곳에 28개 수용소를 건설하여 PW(Prisoners of War) 즉 전쟁포로들을 관리했다. 그런데 반공포로들은 이곳에서 친공과 반공으로 나누어 싸우다가 1만여 명의 포로들이 사망하였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난 한국 전쟁의 비극은 한반도 남쪽 섬인 거제도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명준의 실제 모델인 현동화도 이곳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 포로 석방 때 제3국을 선택해서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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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14,005명의 생명을 구한 매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 배의 모형 |
분수광장에서 좌측으로 걸어가자 이번에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가 눈에 들어왔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쪽으로 올라갔으나, 같은 해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경도에 주둔한 해병대와 한국군도 흥남항에 집결하여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이때 9만여 명의 피난민이 살기 위해 흥남부두에 몰렸다. 12월 23일, 한국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현봉학 의사의 간곡한 요청과 미 육군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파격적인 결정으로 인해, 함경도 피난민 1만 4천 명을 마지막으로 태운 상선 매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는 거제도 장승포항에 최종 도착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배로 알려진 매러디스 빅토리호는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배의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다. 또한 박시춘이 작곡하고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시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피난민의 애환을 담은 비가(悲歌)가 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나의 애마는 다시 남쪽으로 달려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 닿았다. 학동이란 명칭은 학이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흑진주와 같은 작은 조약돌이 해안가를 따라 끝없이 펼쳐져서, 거제도에 있는 다른 몽돌해변보다 규모가 크다. 길이 1.2km, 폭이 50m인 해변을 걷노라니 몽돌 밟는 소리가 자글자글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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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티파니횟집에서 물회로 배를 채운 필자는 거제도의 또 다른 명소인 ‘바람의 언덕’으로 달려갔다. 거제 8경 중에 하나로 알려진 이곳 바람의 언덕은 원래 띠풀로 덮힌 언덕이라느 뜻을 가진 ‘띠밭늘’이었다고 한다. 2002년에 바람의 언덕으로 지명이 바뀌었는데, 지금까지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2009년 11월에 설치한 풍차는 바람과 잘 어울려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지친 발걸음도 쉴 겸, 근처 카페에 올라 남쪽 바다를 바라본다. 경치가 멋있다!
나의 애마는 이제 거제도 장목면에 위치한 매미성으로 출발한다.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2003년에 찾아온 태풍 매미는 백순삼 씨의 경작지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매미성의 성주 백순삼 씨는 경작지를 보호하기 위해 돌로 축대를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설계도면 없이 혼자서 축대를 쌓고 있는 그는 중세 유럽풍의 멋진 성을 만들고 있다. 예술성과 견고함을 갖춘 매미성은 이제 제법 많이 알려져 거제도를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아픈 상처에 좌절하지 않고 인내와 노력으로 가꾸었을 때,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이곳 남쪽 바닷가에서 깨달았다. 매미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인생이 미완성인 것처럼.
2박 3일 일정으로 남쪽에 있는 바다 섬 여행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가야 한다. 이곳 거제도는 한산도대첩에서 알 수 있듯이 영광의 섬이기도 하지만, 칠천량해전의 슬픔도 간직한 역사의 섬이다. 남쪽 바다에서 경험한 섬들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다음에는 홍도와 흑산도를 취재하여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서쪽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화수분이 되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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