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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 동·서양 문명 교류의 최대 도시: 시안(1)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5.07.18|(321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시안에 간 날은 6월 20일이다. 전날 밤부터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새벽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서둘러야만 했다. 결국 공항패션은 포기하고 반바지와 티셔츠만 입고 집을 나섰다.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순간부터 출국 절차를 부지런히 마치자마자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고, 중국 시안 센양공항으로 갈 비행기가 보였다. 드디어 3년 만에 나의 제자(周璇, 보계문리대학(寶鷄文理學院) 교수)를 만나는 것이다.

시안 센양공항에는 마중을 나온 통역사(채혜련, 蔡慧璉)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제자가 스승을 위해 마련해준 6인승 SUV 렌트카를 타고 취장신구(Qujiang New District) 중심부에 위치한 화럭스(HUALUXE Xi’an Tanghua)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 호텔은 전통적인 당나라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대안탑, 대당불야성에 가까운 곳에 있다.

동·서양 문명 교류의 최대 도시였던 이곳 시안(西安)은 과거에는 장안(長安)이라 불렸다. 시안은 한나라 때 처음으로 장안으로 불렸다. 그 후 618년에 당나라의 수도(장안)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안은 대략 300년 동안 국제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동대문구에 있는 장안동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원한 평화’라는 뜻을 담은 장안은 주나라를 포함해 진, 한, 당 등 13개 중국 왕조가 1,100여 년 동안 수도로 삼은 곳이다. 도시 전체가 지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역사 유적이 풍부하다. 우리에게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으로 가는 출발점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첫 일정은 제자가 마련해준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규규대진(糾糾大秦, 거대한 진나라)’이라는 공연은 중국의 역사적 인물인 ‘흑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되, 소인물의 시각에서 진나라 왕조의 건국 과정을 다루고 있다. 흑부는 전국(戰國)의 용병이었지만, 벽돌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졌기에 진나라의 포로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게 된다. 흑부는 진나라 통일 전쟁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80분간 진행된 이 공연은 평일인데도 1,500석의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중국인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으나 외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진 않았다. 속도감 넘치는 극 전개와 초대형 이동 관객 좌석, 웅장한 세트장과 안개와 바람 등의 특수 효과는 몰입극장의 면모를 제대도 체험하게 해주었다. 건국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북경의 ‘금면왕조(金面王朝)’와 비슷한 서사를 갖고 있다.

시안(長安)의 대당불야성은 밤이 되면 화려하게 다시 태어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당나라 풍경을 재현한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불이 환하여 밤이 마치 낮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대당불야성은 볼거리, 먹거리,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금은 등불이 아닌 조명 불빛으로 인해 영화 세트장처럼 빛나고 있다. 1,400년 전 이 거리는 아마도 세계 각국에서 찾아드는 상인들과 진귀한 물건들로 도시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그뿐인가 동서양 교역로인 실크로드는 멀리 로마와 인도를 거쳐 각종 문화와 종교를 이곳 장안으로 흘러들게 했다. 당나라의 고승인 현장(玄奘)도 인도를 다녀와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쓰지 않았는가!

대안탑이 보이는 곳에서 제자와 그의 딸과 함께 추억을 찍는다.

석양이 시작될 즈음 반가운 제자를 만났다.
제자는 예쁜 딸과 함께 보계(寶鷄) 시에서 왔다. 3년 전에 박사 논문을 쓸 때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어색하지 않았다. 대안탑이 보이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안탑은 우리에게는 『서유기』의 삼장법사(三藏法師)로 알려진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가져온 법문 경전을 보존하고 번역하기 위해 고종에게 요청하여 건립된 탑이다.
이곳 대안탑을 한층 오르면 1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인지 꼭대기까지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당불야성은 밤이 되면 황금빛으로 변한다. 필자는 제자와 딸과 함께 위대한 당나라 속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중국 여성들이 전통의상인 한푸를 입고 다닌다. 화려하고 거대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답게 밤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독자 여러분이 1.5km를 다 걸을 수 없다면, 이백(李白)의 공연을 보면 좋을 것이다. 술병을 든 배우가 그 유명한 ‘장진주(將進酒)’를 연기하면서 당나라의 힘찬 기상을 들려줄 것이다. 또한 당나라 황금시대를 활짝 연 이세민(598-649)을 다룬 공연도 제법 볼만하다. 비록 왕 중심의 ‘정관지치(貞觀之治: 소통의 정치로 위대한 정관의 치를 열다)’는 아닐지라도 시민을 위한 태평성대가 이 땅에 다시 오기를 희망해본다. 그의 말마따나 말 위에서 세상을 얻을 수는 있지만, 다스릴 수는 없지 않은가. 엄마를 따라 먼 곳에서 온 제자의 딸은 지쳐서인지 집에 가자고 보챈다. 대당불야성의 화려한 야경을 뒤로 하고 제자와 헤어진 필자는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끝내고 렌트카에 탑승했다. 오늘 오전에 가는 곳은 시안에서 가장 유명한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다. 어제와 달리 제자의 딸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렌트카 차주(郭世隆)는 병마용 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1시간 일찍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일정을 앞당겼다고 말한다. 여행자 입장에서 배려해 준 차주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차 안에는 어제와 달리 현지 문화해설사가 같이 탔다. 차 안의 무료함을 달랠 겸 해서 필자는 유홍준 선생의 책에서 읽은 “북경이 중국이다(北京是中國)”, “서안이 있어 중국이 있다(西安在中國在)”, “상해가 흔들리면 중국이 흔들린다(上海擾中國擾)”라는 말을 양념을 쳐서 들려주었다. 그러자 문화해설사는 “중국의 30년을 알려면 선전(深川)을, 100년의 역사를 알려면 상해(上海)를, 1000년의 역사를 알려면 베이징(北京)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3000년의 중국 역사를 알려면 시안(西安)을 가야 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4개 도시를 다 다녀봤다. 도시마다 다 특색이 있고 조금씩 다르지만, 내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이곳 시안이 최고이지 싶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않는 더 많은 병마용이 잠들어 있다.

마오쩌둥이 생전에 “공자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평가했던 인물이 진시황(BC 259-210)인데, 그의 무덤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 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발견된 병마용갱은 진시황릉의 가장 바깥 둘레에 있다. 병마용은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는 병사들이다.
비교적 이른 아침인데도 인구 대국답게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여서 그런지 태양 빛이 더 뜨겁게 느껴진다. 일행은 가장 먼저 발굴된 1호 갱으로 입장하였다.
생김새가 각기 다른 병마용 6,000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막상 와서 보니 그 규모가 제법 컸다. 무엇보다 사람 크기와 비슷한 병마용 무리와 지휘관의 머리카락을 자세히 조각한 디테일은 인상적이었다. 전차부대가 있는 2호 갱과 군사 지휘부가 있는 3호 갱을 끝으로 박물관 답사를 마쳤다. 병마용갱은 최고의 고고학적 유물을 간직한 곳이지만, 진시황 한 사람을 위해 7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원되어 고통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다음 목적지인 화청지(華淸池)로 가는 길목에서 중국어로 비앙이라 발음하는 ‘병병면’을 먹었다. 한자 획수가 50획이라서 글자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병병면은 국수란 뜻의 섬서성 음식이다. 맛있는 치킨과 함께 병병면을 점심으로 먹은 일행은 오후가 되어서야 화청지에 입장할 수 있었다. 당나라 제6대 황제인 현종(685-762)은 ‘군수천하비(君瘦天下肥: 임금이 수척하면 천하는 살찐다.)’를 실천한 인물이다. 비록 말년에는 양귀비와 사랑을 나누면서 나라를 쇠퇴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화청지는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애용했던 온천 지대이다. 현종은 온천을 좋아하는 양귀비를 위해 온천을 확장하고, 궁전을 새로 지었으며, 궁전 주변으로 성벽을 쌓아 ‘화청궁’이란 별궁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장이모우(張藝謀)가 연출한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저녁 무렵에는 제자와 함께 화청지를 다시 찾아왔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장한가(長恨歌)’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장한가’를 바탕으로 장이모우(張藝謀)가 연출한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 초대형 가무쇼이다. 무더위가 가라앉은 밤이 되자 낮에 봤던 건물이 화려한 궁전으로 변신하였으며, 저수지 밑에 있던 무대가 솟구쳐 오르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뛰어난 연출력이었다. 특히 조명이 꺼졌을 때 여산 전체가 불빛으로 반짝이는데, 객석에서는 ‘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장한가>를 끝으로 둘째 날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비익조’와 ‘연리지’로 잘 알려진 백거이의 ‘장한가’는 장이모우에 의해 가무쇼로 부활했다. 한 나라의 전통문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후세로 이어질 때 비로소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된다. 고도(古都)인 이곳 시안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한류(韓流)의 젖줄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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