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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 전통의 도시, 전주를 가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5.08.22|(323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시안을 다녀온 지도 한 달이 지난 7월 24일, 나의 애마는 전주에 있는 한국전통문화전당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나의 제자들이 선생님이 되어 ‘2025년 재외동포 한국전통문화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24일은 재외동포 아동·청소년들이 9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전통문화 연수 발표회가 있는 날이다. 예정대로 글을 쓴다면, 중국 시안의 후속편을 써야 했으나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이번 글에서는 전주시가 어떻게 재외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지 알아보고, 전주한옥마을의 매력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3시간 가까이 달린 나의 애마는 5시 20분이 되어서야 한국전통문화전당에 도착하였다. 발표회 전까지 10여 분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2년 전, 이맘때 왔을 때는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횡성희망신문에 전주시를 알리기 위해 왔으므로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책을 읽든지 여행을 가든지 글을 쓰기 위해 갈 때는 그렇지 않을 때와 차이가 제법 많이 난다. 전통의 도시답게 전주는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 등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하다. 한 도시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지식이 정확해지는 것은 기행문이 갖는 특성이지 싶다.

‘태평가’에 맞춰 부채춤을 추는 재외동포 소녀들의 모습은 한 무리 벌 나비와 같다.

5시 30분이 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꺼진 무대 위로 은은한 빛이 비치자, 한 무리의 소녀들이 부채를 들고 등장한다. 한복도 일품이려니와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추는 부채춤은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소녀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면서 틈틈이 전통공연을 배웠다고 한다. 재외동포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전통문화 연수는 매년 여름(7월, 9박 10일)에 시작된다. 전주에 온 아동·청소년 30명은 만 10세~15세 재외동포로, 3년 이상 해외에서 한글학교 교육과정을 마쳐야만 참여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가락인 ‘태평가’에 맞춰 부채춤을 추는 소녀들은 한 무리 벌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날아들었다. 부모님의 고국인 한국에 온 소녀들아, 마음껏 즐기려무나!

전주시가 주최하고 ‘해봄교육문화국제재단’(이사장, 이동혁)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도 전통문화 연수 발표회를 끝으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된다. 사회를 맡은 김태진 교수(해봄교육문화국제재단 이사)는 헌신과 애정으로 ‘전주 전통문화연수’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김 교수는 발표회에 참석한 학부모와 관계자들을 상대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슬라이드를 통해 보여준다. 특별히 전주 전통문화연수원 안에 있는 풍락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에 애착이 간다고 하였다. 풍락헌은 최근 개봉된 바둑 영화 <승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올해 참여한 재외동포 자녀들은 이곳 전주에 머물면서 한국의 역사·문화교육, 한국어 교육, 한국 전통문화 체험교육을 배운다고 한다. 그중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활쏘기, 비빔밥 만들기, 한옥 체험, 축구 경기 관람이었다고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국적도 다양한 재외동포의 자녀들이 서로 사귀고, 모국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익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성균관 유생 복장을 한 재외동포 소년들이 전통문화연수원 풍락헌에서 즑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인사말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전주사고가 있는 이곳 전주야말로 한류 문화의 뿌리”라고 말한 것은, 한류에 관심을 둔 필자에게는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발표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박희양 선생(해봄교육문화국제재단 전 대표)이 베스트웨스턴플러스호텔 식당 입구에서 학생, 가족, 교사들과 일일이 인사하면서 자리를 안내한다. 친절과 봉사가 몸에 밴 모습을 보면서 필자도 저런 어른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제자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는 그 어느 자리보다 맛있었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우연히 30년 만에 대학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후배는 이곳 전주에 와서 다시금 한국인의 정체성을 배웠다고 하니 그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25일 이른 아침, 아스팔트는 복사열을 반사하였다. 호텔을 나온 필자는 전주의 명소인 전주한옥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거리는 깨끗하다. 전주한옥마을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과 교동 일대의 한옥밀집지역으로 이곳에는 유무형의 전통문화자원이 산재해있다.
나의 첫 번째 행선지는 오목대(梧木臺,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이다. 오목대로 가는 언덕길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한여름의 절정인가보다. 전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 오목대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오목대는 조선 건국의 의미와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최적의 역사유적지이다. 고려의 장수였던 태조 이성계는 고려 우왕(禑王) 6년(1380년)에 왜구를 소탕(황산대첩)하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목대에 잠시 머물면서 개선 잔치를 즐겼다고 한다. 오목대는 발산(鉢山) 아래에 있는 돈대(墩臺)인데, 이성계는 오동나무가 많은 이곳에서 흥에 겨워 ‘대풍가(大風歌)’를 불렀다고 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오목대를 내려온 필자는 고종황제가 직접 쓴 친필 비문인 ‘오목대 비’를 돌아 한옥마을로 갔다.

전동성당은 한옥이 즐비한 인사동과 가회동과 다르게 동서양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이다. 전동성당은 한옥이 즐비한 인사동과 가회동과 다르게 동서양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경기전 마중 편에 서 있는 전동성당은 전라감영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한국 최초의 순교지 위에 지어진 전동성당은 근대건축의 백미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1914년에 건축된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전동성당은 고딕 양식의 주조에, 비잔틴 양식 돔으로 마무리된 서양식 건물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횡성에 지은 풍수원 성당(1907년)에 비해 뒤늦게 지었지만, 건축 양식이 비슷하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전동성당은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한옥들과 조화를 이룬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평일 오전, 뜨거운 햇살 아래 1930년대 모던 복장을 한 젊은 남녀들이 전동성당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전동성당을 나온 필자는 경기전 매표소로 갔다. 오래 머물기에는 태양 빛이 너무 뜨겁기만 하다.

전주에 있는 경기전(慶基殿, 사적 제339호)은 ‘경사스러운 터’란 뜻을 지닌 건축물이다.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정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그 후 태종 이방원은 약 20년이 지난 1410년이 되어서야 경기전을 완공한다. 경기전은 1408년에 죽은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어용전’으로 불리다가 세종 24년인 1442년이 되어서야 경기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이곳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존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 할 수 있다. 3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경기전에 들어서자, 방문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액운을 막아준다는 홍살문을 지나 경기전 정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조선태조어진’(국보 제317호)을 볼 수 있었다. 태조의 초상화는 무관 출신답게 어깨가 넓고 기골이 장대한 모습이다. 태조의 어진은 총 26개가 제작되었는데 25개는 사라졌고, 유일하게 남은 어진 1개가 경기전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모셔져 있다. 필자가 본 것은 1999년 권오창 화백이 진본을 모사한 초상화이다.

경기전 정전에는 ‘조선태조어진’(국보 제317호)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땀으로 젖은 몸을 잠시 쉴 겸, 경기전 뒤편에 마련된 어진박물관(2010년 개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만들어진 어진박물관에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의 어진을 볼 수 있다.
경기전 어진박물관의 자료 설명에 따르면, 조선 시대의 어진 제작은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摹寫)의 3종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왕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직접 보고 그리는 도사로, 왕이 승하한 뒤로는 기억과 상상으로 그리는 추사로, 기존의 어진을 본 떠 그릴 때에는 모사로 호칭한다. 어진박물관에서 알게 된 사실은 조선 27대 임금의 초상화 중 현존하는 것은 태조, 영조, 철종의 어진뿐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어진실에서 볼 수 있는 어진은 영조, 철종 어진 모사본과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세종, 정조, 고종, 순종 어진 모사본 6점이 전부였다. 그나마 세종과 정조 어진은 기록과 후손들의 골격을 참고하여 그려졌다고 한다.

전주한옥마을은 1910년대 일본인들의 세력에 반발한 지역민들이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한옥을 지어 모여 살던 곳이다. 한때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가 탈락되기도 하는 등 전국적인 관광지로서의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전주한옥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제자들과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한옥 체험을 하면서 느낀 여유로움과 운치는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주는 앞으로 어떤 도시로 남을까? 700여 채가 넘는 한옥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전통의 도시, 전주는 어떨까? 목공예와 한지 공방을 볼 수 있는 골목길을 걸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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