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원래 있던 X’, ‘들어온 X’ 그리고 ‘나갔다 들어온 X’죠. ‘원래 있던 X’는 평생 횡성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들어온 X’는 횡성으로 이주한 사람입니다. ‘나갔다 들어온 X’는 횡성이 고향인데 오랫동안 타지에 나가 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지칭하죠.
횡성은 배타성이 강한 지역입니다. 필자가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토박이들이 “횡성은 강원도의 전라도여”라고 말하며 끈끈한 토박이 공동체의 자부심(?)을 드러내곤 합니다. 오죽했으면 ‘한 번도 횡성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까지 만들어졌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들어온 X’들은 참 적응하기 힘들다고 애로를 토로합니다. ‘들어온 X’들이 쏟아내는 어려움과 불만의 대부분은 “원래 있던 X는 되는데 들어온 X는 안 되는 것이 많다”는 거죠.
‘나갔다 들어온 X’의 경우 실패해서 돌아오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은근한 무시에 어려움을 겪죠. 성공해서 돌아오면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어”하며 상당한 질시와 견제를 받게 됩니다. ‘원래 있던 X’들의 홀대와 견제 때문에 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들어온 X’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민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는 기준은 뭘까요, 바로 학연·지연·혈연에 기반한 연고주의죠.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계급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원래 있던 X’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능력과 업무 성과가 뛰어나지만 단지 외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에서 밀리는 공무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공직사회의 인사가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신라에는 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에 제한을 두는 골품제도라는 신분제가 있었는데 그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죠. 민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지인이 횡성에서 소규모 장사를 하려 해도 토박이들과 연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죠. ‘개성 상인도 울고 간 동네’이니까요.
연고주의에 기반해 사람의 부류를 나누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는 것이 횡성공동체의 불공정을 유발하는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한국사회 불공정의 뿌리는 학벌주의...
최근 조국 사면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찬반 여론도 팽팽하죠. 조국 사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치검찰의 표적 수사로 인해 잘못에 비해 과한 처벌을 받았고 일가족 모두가 멸문지화를 당했다며 사면은 당연하다고 하죠.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서민 가정의 자녀들은 생각하지도 못할 특혜를 자녀에게 제공한 조국의 입시 비리는 그 자체로 불공정이라 사면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찬반 논쟁이 치열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국이 자녀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기 위한 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 되는 사회는 일종의 계급 사회이고 우리 사회가 계급 사회라는 것을, 평소 정의와 공정을 강조하던 조국이 보여줬기 때문에 그의 행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거죠.
조국은 학벌주의 사회에 정점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 꼭대기에 있다는 거죠. 그러니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불공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에 대한 논란은 대한민국이 학벌이 곧 계급이 되는 학벌주의 사회이고 불공정한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김건희도 학벌 콤플렉스 때문에, 논문 표절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
불공정의 뿌리...학벌주의·연고주의를 없앨 수 있을까요?
아마 현재 상태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횡성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깊숙이 학벌주의와 연고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벌주의와 연고주의에 기대 힘을 얻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사라지기 힘들겠죠. 불공정이 일상이 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언제쯤 연고주의와 학벌주의의 벽을 넘어 보다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조만회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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