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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 동·서양 문명 교류의 최대 도시: 시안(2)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5.09.21|(325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옥 같은 이슬 내려 단풍잎이 떨어지니 玉露凋傷楓樹林
무산과 무협에는 가을빛이 쓸쓸하구나! 巫山巫峽氣蕭森
- 두보(杜甫)의 <추흥(秋興)> 1수 1연

시안을 떠나온 지 어느덧 두 달이 넘었다. 그 사이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다. 원고를 쓰는 이 밤에도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창밖에서 들려온다.

두보(杜甫)의 시는 대당불야성 어딘가에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시성 두보(杜甫, 712~770)는 안녹산의 난을 피해 무산과 무협 부근인 기주(夔州)에 머물면서 <추흥(秋興)>이란 시를 남겼다. 동시대를 살다간 이백(李白)의 시가 장쾌하다면, 두보의 시는 쓸쓸하기만 하다. 이 시에는 전란으로 인해 타향을 유랑해야만 했던 두보의 고독한 심정이 스며있다. 몸은 비록 그의 고향인 장안에서 떨어져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밤에도 대낮처럼 밝고 번화했던 당나라를 떠올렸을 것이다.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두보는 갔지만, 그의 시는 대당불야성 어딘가에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6월 22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제자와 함께 방문한 곳은 시안에 있는 산시 역사박물관(陝西歷史博物館)이다. 중국의 3대 박물관으로는 베이징의 국가 박물관, 시안의 산시역사박물관, 상하이 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산시 역사박물관은 중국 최고의 현대식 대형 국가 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물관은 총 37만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네 개 왕조를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있다(윤희정·주징, <문화유산 관광객의 온라인 리뷰 및 평점을 이용한 관광경험>). 이곳 박물관에는 3,000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고도(古都)의 도시답게 기원전 21세기 무렵의 주나라의 유물인 청동기를 시작으로 진나라의 병마용을 볼 수 있었다. 진시황은 무력으로 중국을 통일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폐도 통일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곳에서 백제의 유물인 ‘백제금동대항로’와 비슷한 항로를 발견한 것이었다. 진나라 시대의 항로에 비해 백제금동대항로가 더 세련되게 느껴진다. 이로써 고대 시기에 한반도의 여러 나라와 한나라가 교류했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산시 역사박물관에는 대상(隊商)과 함께 실크로드를 걸었던 낙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산시 역사박물관에 오기 전부터 당나라의 문화유산을 보고 싶었다. 특히 통일신라와 활발히 교류했다고 알려진 당나라의 역사와 유물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나라는 통일신라 시대의 6두품 출신인 최치원이 12살 때인 868년에 유학을 다녀온 곳이 아닌가!
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당나라는 현종(玄宗, 685-762)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장안은 로마와 함께 세계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이다. 그 중심에는 비단길이 있었다. ‘실크로드(Silk Road)’라는 말은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드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社綢之路), 줄여서 사로(仕路)라고 부른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1>). 중국은 낙타를 매개로 하여 시안에서 로마에 이르는 장장 6,400킬로미터를 오가며 동서 교역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산시 역사박물관에는 대상(隊商)과 함께 밤이고 낮이고 걸어야만 했던 강인한 낙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낙타의 울음소리가 유리벽을 뚫고 들리는 듯하다.

시안은 어디를 가나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박물관을 빠져나온 일행은 시안 성벽 동쪽 중산문에 위치한 영흥방(永興坊)으로 차를 몰아갔다. 이곳에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전통시장이 있다. 당나라 시기의 장안은 바둑판식으로 반듯하게 정비된 구역이 108개나 될 만큼 대도시였다. 필자가 방문한 영흥방 음식점 앞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 거리와 유사하다. 일행이 골목길을 접어 들었을 때였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니 젊은 청년이 술 한 모금을 마시고 접시를 바닥에 던져서 깨는 거였다. 소원을 빌면서 던지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일행은 영흥방 맛집에서 로우자모(肉來摸), 간미엔피(擀面皮), 량피(凉皮) 등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후에, 시안 외곽 북서쪽에 있는 화샤 문화관광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낙타 방울 소리의 전설(駝鈴全奇)’을 보러 갔다.

화샤 문화관광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낙타 방울 소리의 전설(駝鈴全奇)’은 낙타들이 등장하면서 극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화샤 대극장은 길이 142미터, 너비 128미터, 높이 약 50미터 규모의 대형 타원형 건물로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화샤 대극장은 공연이 임박해서인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무대에서 가까운 VIP석으로 안내되어 자리를 잡고 앉자, 잠시 후 조명이 꺼지고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이 공연은 한국인 관광객이 즐겨 보아서인지 좌측 모니터에서는 한글 자막이 제공되고 있었다. 이 공연은 고대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겪어야만 했던 화산, 눈사태, 죽음의 사막 등이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나타난다. 무대 위에 낙타들이 등장하는 모습은 극에 현실감을 더해주었으며, 30여 마리나 되는 늑대가 등장하여 객석에 설치된 다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극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장한가와 쌍벽을 이룬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독자 여러분이 이 공연을 본다면, 고대의 문화와 현대의 예술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안 성벽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전동차를 이용해서 여러 곳을 다닐 수 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3박 4일이라는 짧은 여정을 통해 시안을 안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다 알 수 없다면, 본 것만큼은 기억을 되살려 그 의미와 가치를 살려보려는 것이 춘몽과 같은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시안 성벽은 중국에 남아있는 성벽 중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고대 성벽 건축물이다. 당나라 말기에 수도를 뤄양으로 옮기면서 장안 황성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그 후 명나라 때인 1374년에 이르러 방어 체계를 구축할 목적으로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1983년부터 20년에 걸쳐서 성벽 공사를 진행하였고, 명나라 때의 성벽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높이 12미터 폭 15미터 길이 13.7킬로미터에 달하는 시안 성벽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전동차를 이용해서 여러 곳을 다닐 수 있다. 6월 중순에는 무더위로 인해 시안 성벽에 오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일행은 천고정(千古情) 뮤지컬을 보기 위해 시안시 파교구에 있는 엑스포공원으로 향하였다. 시안에서 공연하는 천고정은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하여 진, 한, 당나라, 그리고 현재의 시안까지 7,000여 년의 역사를 1시간의 공연으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한 편의 서커스 공연을 보는 듯한 아슬아슬함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다고 한다. 공연 중간에 빈번히 나오는 최첨단 과학기술과 뉴미디어를 통한 연출은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이고, 관객들의 몰입감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천고정을 포함하여 시안에서 본 공연들의 공통점은 대국답게 스케일이 웅장하고, 역사와 문화를 융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중국적’ 정체성을 갖게 하였는데, 이는 개인의 고뇌를 담은 한국의 소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리라.

공연이 끝나고 이제 제자와 헤어질 시간이 가까웠다. 제자(周璇)는 보계문리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중국 의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어쩌다 보니 필자와 인연이 되어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된 제자는 삼육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천 년 전부터 시작된 한중 교류가 국경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앞으로 동아시아(East Asia) 문화권을 넘어서서 세계의 주류 문화를 선도할 것이다. 제자는 서안 다음으로 큰 도시인 보게시로 딸과 함께 전철을 타고 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다. 두보의 시구처럼 저마다 저녁 무렵이 되면 갈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매미는 잎에 붙은 채 울지를 않고 抱葉寒蟬靜
외로운 새는 느릿느릿 산으로 돌아가네. 歸山獨鳥遲
-두보의 <진주잡시(秦州雜詩)> 제4수 3연

제자와 헤어진 후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지 차주(郭世隆)는 숙소로 바로 가지 않고 종루 구경을 시켜주었다. 시안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이 종루는 낮보다 밤에 봐야 아름답다. 종루 사거리를 돌아온 나는 일행과 작별 인사를 건넸다. 시안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돈황(頓煌)으로 가는 일정을 잡고 올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파미르고원에 가고 싶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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