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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리적 특성을 알아야 한다.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 승인 2025.11.11|(328호)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kkw3047@korea.kr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미당 서정주 선생께서 1947년에 발표한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로, 국화가 피기까지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을 계절적 환경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 마다 이 시를 읊조리며, 가을이 되면 “국화가 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국화는 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꽃이지만, 요즈음에는 1년 365일 언제든지 국화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을에 피는 국화가 여름에도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식물 생리를 연구한 수많은 생물학자들의 연구 덕분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해 비치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식물의 생리현상도 변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년전 일이다.

국화 전시회

이러한 현상을 광주기성이라고 한다.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광주기성을 “하루나 계절 또는 1년 주기로 바뀌는 낮과 밤의 길이변화에 대해 생물이 보이는 기능이나 행동반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20년대, 미국 농무성의 식물학자였던 와이트먼 가너와 헨리 얼라드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름에 담배가 잘 자라기 좋은 조건에서는 5미터까지 자라지만 꽃은 피지 않았고, 겨울의 온실에서는 키가 1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꽃이 핀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듬해 여름, 담배를 심은 후 빛이 새지 않도록 천막을 설치해 오후부터 아침까지 빛을 차단해 길렀을 때 꽃이 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해 비치는 시간에 따른 식물의 생육 반응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어지면서, 식물은 광주기성에 따라 세가지로 분류되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을 기준으로, 해가 비치는 시간이 이보다 짧아졌을 때 꽃을 피우는 식물은 “단일식물”, 낮 시간이 12시간보다 길어졌을 때 꽃이 피는 식물은 “장일식물”, 그리고 해가 비치는 시간에 관계없이 꽃을 피우는 식물은 “중일식물”이라고 한다.
국화는 이 광주기성을 이용한 농업의 대표적인 작목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해가 짧아지는 가을에 국화가 피기 때문에, 전국의 국화축제는 주로 9월부터 11월 사이에 개최된다. 국화 축제장에 방문하여 예쁜 국화를 보면 기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국화 밑둥을 자세히 보면 새로운 싹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싹은 “동지에 자란다”고 해서 “동지아”라고 부른다.
국화 번식은 이 동지아를 채취하면서 시작된다. 동지아로 번식시킬때 주의할 점은 해가 짧은 시기이므로 동지아의 상단에 꽃봉오리가 맺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동지아로 삽목을 하면 뿌리는 내리지만, 동시에 아주 조그만 꽃도 피기 때문에 더 이상 번식은 어렵게 된다.
따라서 국화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 번식하려면 국화에 빛을 비추는 시간을 늘려주어야 한다. 동지아로 국화를 재배하는 방법은 국화위 1미터 높이에 전등을 설치하고, 16시부터 21시까지 또는 22시부터 01시까지 조명해 준다. 대체로 춘분 전까지는 빛을 조사하는 시간을 늘리고, 춘분 이후에는 줄여준다. 품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꽃이 피기 50~60일 전부터 빛 비추는 시간을 12시간 이하 줄이면 꽃 봉오리가 형성된다. 여름 국화 생산은 오후 4~5시부터 밤까지 검은 비닐로 차광해 해 비치는 시간이 12시간 이하가 되도록 관리한다.

국화 전조재배

국화 이외에도 광주기성을 이용한 농업으로는 들깨 잎 생산이 있다. 들깨는 대표적인 단일식물로, 해 비치는 시간이 짧아지면 꽃이 피게 된다. 예를 들어 밤에 횡성에서 6번 국도를 따라 서울로 가다보면, 양평군 들판의 비닐하우스에서 환하게 불이 켜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비닐하우스에서 들깨 잎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들판에도 가을부터 봄까지 조명을 환하게 밝히며 들깨 잎 농사를 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조명을 설치해 들깨 잎 농사를 하는 이유는 꽃이 피지 않게 해야 계속해서 들깨 잎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깨 꽃이 피게 되면, 들깨는 더 이상 줄기와 잎을 자라게 하지 않고 씨앗이 잘 여물도록 광합성으로 만든 모든 영양분을 꼬투리로 보내기 때문이다. 즉 들깨가 낮의 길이가 여전히 긴 줄 알고 줄기와 잎이 자라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들깨 잎 농사의 핵심이다.
보통 들깨는 6월에 심으면 8월 중순까지 줄기와 잎이 자라다가, 8월 15일 전후부터 낮이 짧아지면 가지 끝의 생장점에 꽃눈이 형성되고 이내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한 꽃자루는 더 자라면서 아래부터 위로 하얀 꽃이 계속적으로 피고, 수정하여 들깨 종실을 만든다. 만약 들깨를 재배하는 밭 옆에 가로등이 있다면, 들깨는 밤에도 낮 인줄 알고 줄기와 잎만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8월중순부터 서리 내리기전까지는 가로등을 꺼 주어야 한다.
1980년대말 김포공항 주변 논을 경작하던 농업인들이 김포공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김포공항 주변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 때문에 벼 이삭이 제대로 생기지 않아 쌀 수확량이 줄었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농촌진흥청 등이 조사한 결과 가로등 불빛으로 인한 피해가 인정되어 김포공항에서 피해액을 보상해 주었다. 벼도 해 비치는 시간에 대한 영향을 받는 식물이기 때문에, 가로등 조명으로 인해 낮의 길이가 길어져 벼 이삭이 생기지 못한 경우다.
횡성군에서 재배되는 벼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횡성읍, 우천면, 서원면 등 평야지에서 주로 재배되는 삼광벼를 비롯한 만생종이고, 다른 하나는 안흥면, 둔내면 등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오대벼와 같은 조생종 벼이다. 삼광벼, 추청벼 등 만생종 벼는 해 비치는 시간이 짧아져야 벼 이삭이 생길 수 있다. 만약에 태국이나 베트남에 횡성군에서 재배되는 삼광벼를 재배하면 낮 길이가 길어 꽃이 피지 않고 벼이삭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조생종인 오대벼는 해 비치는 시간에 관계없이 일정기간 자라면 벼 이삭이 나온다. 그래서 적도 부근의 열대지방에서 우리나라의 벼 품종을 재배하려면 조생종 품종을 재배해야 한다.
국화와 더불어 가장 많이 소비되는 꽃은 장미이다. 장미는 해 비치는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중일성 식물이다. 계절의 여왕은 5월이고, 5월의 꽃은 장미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5월에 공원이나 아파트 담장을 아름답게 만드는 장미는 참으로 예쁜꽃이지만, 가시가 있는게 흠이다.
그렇다면 5월 장미와 꽃집에서 연중 살 수 있는 장미는 같은 품종일까? 장미 나무는 꽃이 피는 계절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분류한다. 1년중 봄인 5월에 꽃을 피우는 종을 일계성이라하고 연중 생산되는 장미 품종을 사계성이라고 한다. 일계성 장미는 말 그대로 일년에 한계절에만 꽃이 피는 종이고, 사계성 장미는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종이다. 덩굴장미가 대표적인 일계성이며 한번 핀 꽃을 다시 볼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꽃집에서 파는 장미는 사계성 장미로 일정시간 동안 자란 다음 정아에 꽃이 생겨 개화하는 종이다. 사계성 장미를 횡성군 정원에 심으면 일년에 4번 정도 꽃을 볼 수 있다. 제일 먼저 꽃을 보는 시기는 5월말이며 꽃이 시들면 줄기를 지면으로부터 대략 20㎝위에서 과감하게 잘라 버리고, 원예용 복합비료 한줌 정도를 나무 주위에 뿌려준다. 그러면 자른 부위에서 새가지가 나와 자라기 시작해 대략 40일 정도 지나면 다시 꽃이 핀다. 이렇게 핀 꽃이 시들면 지난번 자른 부위에서 10~20㎝위에서 잘라주고 비료를 준다. 일년 동안 장미를 기르다가 12월 상중순에 낙엽이 지면 지면으로부터 20㎝ 위내서 자르고 볏짚으로 보온 해 주었다가 이듬해 3월상순에 묶었던 볏짚을 풀어주면 5월에 꽃을 다시 볼 수 있다.

배추 꽃 교배작업

채소인 배추, 무, 양상추는 어떻게 관리해야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채소는 씨앗을 수확하는 것이 재배의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번식을 위해서는 꽃을 피워 수정시키고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요즘 김장을 위해 심은 배추는 꽃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종자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 몇 포기를 밭에 그대로 두어 겨울을 지나면, 이듬해 봄에 배추 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해서 배추 씨앗을 이천 년 동안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계절 내내 배추를 소비하기 때문에, 종자회사들은 봄에 재배하는 배추, 여름에 잘 자라는 배추, 김장철에만 심는 배추 등 시기별, 용도별로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 왔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배추 종자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확하기는 어려워져, 배추의 개화 생리를 이용한 씨앗 채종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배추 종자를 파종해 일정수준 자라면 12도 이하의 저온에서 7일 이상 재배하면 꽃눈이 분화되고, 이후 온도를 높혀주면 꽃대가 자라나와 꽃이 핀다. 대부분의 배추 종자 채종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고 있으며, 무 종자 채종은 10도 이하의 저온에서 자연 감응하도록 봄에 실시하고 있다. 여름 무는 특히 밤온도가 조금이라도 낮으면 쉽게 꽃이 피어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종자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종자회사에서는 5월 말이전까지 여름 무 종자를 판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올해처럼 여름 기온이 높을 경우 가을에 수확하는 양상추가 꽃을 피우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상추는 온도가 높을수록 꽃눈이 빨리 분화되고 재배기간이 길수록 개화가 앞당겨진다.
농업은 이처럼 식물의 생리 생태적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면서 재배 방법이 발달하고 품종도 다양하게 개발되어 왔다. 따라서 작물마다 원산지 환경을 파악하고, 품종이 지닌 본연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한 뒤 농사를 짓는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농업을 경영할 수 있으며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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