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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항상 옆에서 응원하고 있을게요[행복한 동행]장제시
장제시 결혼이주여성·횡성군 공근면 | 승인 2012.04.23|(0호)

사랑하는 당신께,        

우리가 만난 지 어느덧 14년이나 지나갔군요. 인상과 체격 좋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결혼하고 서로의 문화차이 때문에 많이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추억이 많이 떠오르는 걸요.

8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안 생겨서 마음고생 많았지요. 지금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 보면 남부럽지 않아요. 아이를 못 낳아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돈은 돈대로 들었고 몸은 몸대로 지쳤어요. 어느 날 보건소에서 시험관아이 시술을 지원해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해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그런지 첫 시도가 성공인데 게다가 쌍둥이까지. 기뻤지만 쌍둥이라 어떻게 기를까 걱정도 했었죠.

그래도 우리 부부가 힘을 합쳐서 지금은 6살이 된 우리 아이들을 잘 기르며 알콩달콩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찾아왔어요.

▲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해서 가족이 모두 제천한방축제에 다녀왔다.

감기 한번 안 걸리고 건강하기만 했던 당신이, 2010년 8월 14일. 아침 출근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쓰러져서 대성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던 그 날은 나에게 악몽이었어요. 의사가 ‘더 큰 병원에 가서 정확한 검사를 해봐야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순간 앞이 깜깜해졌죠. 기독병원으로 향해 당신이 타고 있는 구급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삶의 꿈과 희망이 함께 사라져버린 것 같았어요.

아빠가 쓰러진 것도 모르는 아이들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여러 검사를 통해 당신은 뇌경색이란 진단을 받았어요. 뇌경색이라니, 뇌경색이란 병은 잘 몰라도 뇌라는 말은 머릿속에 관련이 있는 줄 알고 심각한 병에 걸린 건 짐작했어요. 내가 보호자라서 의사가 알아듣기 힘든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혼란에 빠졌어요. 병원에 입원하면서 멍해지고 자기 세계에만 빠져있던 당신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했어요. 당신이 입원한지 3일이 지나도록 나는 아무것도 못 먹고 완전히 절망에 빠졌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벌을 받아야 하나 하늘이 원망스러웠어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보살피지 못하고 잠시 큰 집에 맡겼던 아이들이 갑자기 생각났어요. ‘아, 내가 정신 차려야겠다. 아이들 생각해서라도 다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보, 지금은 당신 모습이 낯설지만 언젠간 예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내가 살고 있다는 것 아시죠. 쓰러진 지가 2년이 다 돼 가는데 당신이 실려 갔던 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좋아졌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서 정말 기뻐요.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아서 가장의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항상 옆에서 응원하고 있을게요. 빨리 나으려고 노력하는 당신이 참 자랑스러워요. 이왕 쉬는 거 편히 쉬고, 내가 조금이나마 돈을 벌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치료 열심히 받으세요. 남편 아프다고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많이 줘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거예요. 당신 아프고 나서 힘들고, 괴롭고, 눈물 나는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래요.

당신이 건강을 되찾아서 우리 예쁜 아이들이 간절히 가고 싶은 놀이동산에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그 소원이 빨리 이뤄지길 바래요.


* 42세. 고향은 필리핀 일루일루섬. 한국에 온지 14년 되었고, 공근면 신촌리에서 살고 있다. 전기공인 남편은 현재 재활치료 중이다. 남편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편지를 썼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영어강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장제시 결혼이주여성·횡성군 공근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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