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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가난과 행복이 공존하는 필리핀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6.02.21|(335호)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인천공항을 떠난 필자가 필리핀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것은 1월 5일, 자정이 지난 시점이었다. 1년에 꼭 한번은 학생들과 함께 해외 봉사를 다녀왔는데 이번에 간 곳은 필리핀 삼육대학교(AUP, Adventist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이다. 이 대학에는 현재 의대, 치대, 간호대가 있어 글로벌 의료인을 양성하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에서는 이곳 언어학과의 초청에 따라, 지난해부터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을 준비하였고, 새해 들어서자마자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마닐라 공항은 크지 않았고, 입국 수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출발할 때는 겨울이었으나 도착해보니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였다. 필리핀 삼육대학교에서 학교 차량을 보내준 덕택에 숙소인 실랑(Silang)에 편안하게 도착하였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민박집에서 반갑게 나를 맞이해준 것은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죽은 바퀴벌레였다. 민박집 사장님은 간혹 귀여운 도마뱀도 출몰한다고 귀띔해 준다.

봉사 첫날인 월요일 아침, 봉사대원 10명은 그랩(Grab) 택시를 타고 필리핀 삼육대학교로 이동하였다. 차창 밖에서는 열대기후에서 자라는 야자수 나무가 한국에서 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곳에서의 봉사활동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진행되었고, 한국어를 포함하여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알리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 경험한 필리핀 학생들의 특징은 미소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봉사대원을 웃음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필리핀 학생들은 한국의 전통 놀이인 투호(投壺)와 영화 <오징어게임>에 나온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재미있어했다.

필리핀 삼육대학교 학생들의 특징은 미소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봉사대 일행을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이곳에서의 봉사활동은 골치 아픈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사건은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여권을 분실한 것이다. 해외에서 여권을 분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권을 잃어버린 제자는 그 전날에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여 여권의 행방을 물었다. 찾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그다음 단계로 필리핀 한국대사관에 온라인으로 분실 신고를 하였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런 연후에 여권을 분실한 제자와 필자는 숙소에서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하여 여권 분실 신고를 접수하였다. 그때까지는 우리 앞에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친절한 필리핀 경찰관은 여권 분실 신고서(Passport Lost Report)를 작성하려면 가까운 변호사 사무소에 방문하여 공증을 받으라고 했다. 공증 서류 비용은 300페소(7,500원)가 들었다. 경찰서에 다시 와서 영어로 된 서류를 작성한 후에 일행은 그랩을 타고 마닐라 보니파시오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하였다. 여권용 사진도 찍고 긴급 여권을 신청하였더니 다음 날에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이른 아침에 민박집 사장님께 부탁한 밥을 든든하게 먹은 일행은 이번에는 렌트카를 이용하여 한국대사관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또 생겼다. 대사관에 있는 한국 직원이 필리핀 이민국 본청을 방문하여 긴급 여권에 스탬프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

허탈한 마음으로 한국대사관을 나온 일행은 이민국 본청을 향해 렌트카를 몰고 갔다. 아뿔싸! 10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길을 가는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도로가 주차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교통 체증이 매우 심했다. 필리핀 서민들이 가장 많이 타고 다닌다는 지프니 차량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사람을 잔뜩 실은 트라이시클도 천천히 움직였다. 오토바이는 차량 사이를 곡예하듯이 달리는데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이민국에 도착하니 주차할 곳이 따로 없었다. 주차장마다 만원이었고, 간혹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데 주차요원에게 200페소를 건네주자 주차할 수 있었다. 이민국 안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이미 만원이었다. 긴급 여권에 도장을 받으려고 하자 이민국 직원은 오후에 와서 받아 가라고 한다.

호세 리잘(Jose Rizal, 1861-1896)은 필리핀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저술가, 시인이다.

다행히 이민국에서 가까운 곳에 마닐라에서도 유명한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가 있었다. 제자를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니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마닐라 대성당이 도로 옆에 서 있다. 입장료 75페소(1,800원)를 내고 산티아고 요새로 들어갔다. 파시그 강변에 자리 잡은 산티아고 요새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말기에 건설되었다. 요새 건물마다 영국, 미국, 일본군이 잠시 점령한 뼈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필리핀에 오기 전부터 필자는 호세 리잘(Jose Rizal, 1861-1896)을 만나고 싶었다. 그는 필리핀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저술가, 시인이었다. 그는 ‘필리핀 민족 동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위해 싸우다가 산티아고 요새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곳에는 현재 호세 리잘 기념관이 있고, 건물 앞에는 호세 리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죽어간 곳을 방문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한국의 서대문 형무소도 이와 비슷한 장소일 것이다.

마닐라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필리핀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 와보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슬픈 역사가 언제 어디서나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은 안 했어도, 제자는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필자도 제자를 통해 마닐라의 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고, 호세 리잘이 순국한 장소를 답사한 것만으로도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苦盡甘來)”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리라.

필리핀 삼육대학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류 문화 프로그램이다. 필자는 대강당에 모인 70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한류 문화를 소개하였고, 제자들은 케이팝 댄스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날의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와 다름없었다. 필리핀 학생들이 케이팝 춤 동작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류 문화의 열풍은 아직도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봉사대원 모두는 이곳 필리핀에서 케이팝 아이돌 스타였다.

가이드가 가르쳐준 대로 손가락으로 빵을 뜯어 주자 필리핀에 사는 열대어들이 모여들었다.

5일 간의 성공적인 봉사대 활동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봉사대원들은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제 남은 일정은 세부(Cebu)에 있는 솔레아 막탄 리조트에서 쉬었다가 귀국하는 것이다. 첫날은 리조트 안에서 휴식을 취하였고, 둘째 날에는 호핑투어의 하나인 스노클링을 하였다. 필리핀의 1월은 겨울이지만 야외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가이드가 가르쳐준 대로 손가락으로 빵을 뜯어 주자 열대어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다리가 따끔거렸다. 가이드 말로는 해파리에 쏘여서 그런 거라고 하면서 얼음 팩을 나눠준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막탄(Mactan)에서 제일 오래된 산토 니뇨(Santo Niño) 성당을 방문하였다. 원래는 세부에 있는 산토 니뇨 성당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필리핀 최고의 축제인 시눌룩(Sinulog)이 한창이라 시내로 차량 진입이 어렵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막탄에서 가까운 막탄 산토니뇨 성당을 찾아갔다.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성당의 이름은 아기 예수를 칭하는 스페인어에서 따왔다고 한다. 성당 외부에서 본 아기 예수상은 화려한 의상을 입었는데, 이는 낙천적인 필리핀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인 김예나의 말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이 아기 예수상을 경배하는 이유는 과거 전쟁 때 이 성당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유일하게 어린 예수상만이 보존되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필리핀 사람들은 스페인과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 일어난 ‘막탄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곳에 라푸라푸 동상을 세우고 기념한다.

산토 니뇨 성당을 나온 일행은 마지막 일정으로 막탄 쉬라인(Mactan Shrine)으로 향하였다. ‘쉬라인’은 신사를 뜻한다. 이곳에는 막탄섬의 추장이었던 라푸라푸 추장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으로는 마젤란 기념탑이 서 있다. 막탄섬의 추장 라푸라푸(Lapu-Lapu, 1491-1542)는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을 죽인 원주민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스페인과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 일어난 ‘막탄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곳에 라푸라푸 동상을 세운 것이다. 라푸라푸는 우리나라의 충무공 이순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필리핀이라는 국가 명칭은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2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33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겪으면서 필리핀 사람들은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다. 필리핀은 1946년에 드디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다. 필리핀이 가난한 이유로는 1946년 해방 당시, 토지 개혁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밖에 제조업의 열악한 상태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하여 행복하지 말란 법은 없다. 독립된 나라 필리핀 사람들은 오늘도 웃으면서 삶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먹은 망고와 망고스틴이 그리워지면 다시 필리핀을 찾을 것이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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