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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교수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 중에서
이번 여행기는 아리랑의 본고장 정선이다. 나의 애마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진부IC를 빠져나왔다. 평일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도로는 비교적 한산하였다. 정선아리랑시장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도로 양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길을 따라 시냇물이 흘러간다. 산 위에서는 비류직하(飛流直下) 폭포수가 떨어진다. 이곳이 바로 정선 아라리의 한을 씻어준다는 백석폭포이다. 정선 5일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산길 운전의 멋을 더해준다.
나의 애마는 정선아리랑시장 주차장에서 잠시 쉬었다. 주차장 계단에 오르는데 한 노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장마다 이곳에서 소규모로 난전을 벌이고, 산에서 캔 두릅을 파는 것이리라. 필자는 노인을 뒤로한 채 정선 5일장이 열리는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같이 간 일행은 토종 먹거리인 모둠전과 콧등치기를 시키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사회자가 나와 반갑게 인사하고 정선아리랑 공연이 시작되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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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공연이 끝나갈 즈음 구경꾼과 소리꾼이 한데 어울려 신명나게 춤을 춘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정선아리랑은 예나 지금이나 아우라지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에 뿌리를 둔 것으로, 팔도 아리랑 중에 가장 충실한 민요적 음악언어를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선아리랑만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아리랑의 뜻과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정선아리랑은 고려가 망하자 조선 개국을 반대했던 72인 중 7명이 지금의 정선으로 은거지를 옮겨와 살면서 부른 것이 유력하다. 앞에 나온 눈과 비, 억수장마와 검은 구름은 고려가 망할 것을 걱정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정선아리랑은 망향의 설움과 한이 맺힌 노래로 시작하여 정선에 사는 서민의 애환을 노래했다. 동강의 물결처럼 박자가 느린가 싶다가 어느 사이에 빠른 가락으로 이어진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 구경꾼과 소리꾼이 한데 어울려 신명나게 춤을 춘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정선아리랑은 예나 지금이나 아우라지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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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라지에 도착했을 때는 봄날의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강물은 수량이 줄어들었고, 강 저편에는 조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할 일 없이 세월을 낚고 있다. |
다음 행선지인 아우라지에 가기 위해 정선아리랑 주차장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서 아까 본 노인을 다시 만났다. 두릅값을 물으니 만원이란다. 땡볕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난다. 횡성에서 평생 땅에 의지해 살아온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두릅 한 봉지를 샀다. 내년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면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가는 길에 아리랑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898)에서 “조선인의 집 문밖에는 장구 소리와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많이 들렸고, 아리랑 가사는 782절이 된다.”라고 기록하였다. 지금이야 장구 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197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는 동네마다 오후가 되면 흥겨운 장구 소리와 민요를 들을 수 있었다. 민족의 소리인 아리랑은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오늘날 BTS의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했으며, 단순한 민요를 넘어 우리 민족의 ‘한(恨)’과 ‘흥(興)’을 상징하는 노래로 거듭났다. 이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2)이 되어 세계인의 마음에 다가서고 있다.
아리랑의 발원지인 아우라지로 가는 길에 나전역에서 잠시 머물렀다. 나전역은 폐광 이후 무정차역으로 오랜 세월을 지내오다가 2020년에 카페로 새롭게 단장했다고 한다. 나전역은 정선과 아우라지를 잇는 간이역이었으나, 이제는 여행객들이 잠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차를 마신 일행은 다시 애마를 타고 아우라지를 향해 달려갔다.
나의 애마는 강을 거슬러 여량(餘糧)에 있는 아우라지에 도착하였다.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에서 “아우라지에서 정선에 이르는 산과 강은 국토의 오장육부가 아니고서는 세상천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처연한 감상의 집합체”라는 글을 남겼다. 과연 정선이라는 고장은 첩첩산중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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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은 강원도에서도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지역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협곡 사이로 흐르는 여울은 산을 돌아나가면서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
아우라지에 도착했을 때는 봄날의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강물은 수량이 줄어들었고, 강 저편에는 조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할 일 없이 세월을 낚고 있다. 강언덕 양지바른 곳에는 처녀상이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양수인 송천((松川)과 음수인 골지천(骨只川))이 만나 아우러진다는 뜻을 지닌 아우라지 강가의 아우라지 노래비에는 “아우라지 강가에 수줍은 처녀/그리움에 설레어 오늘도 서 있네/뗏목 타고 떠난 임 언제 오시나/물길 따라 긴 세월 흘러 흘러갔는데”라고 적혀 있다. 이곳 아우라지 강가는 한양으로 가는 뗏목의 출발지였다. 이 글 첫머리에서 썼듯이 정선아리랑 <애정편>은 남한강 천리 물길 따라 뗏목을 타고 떠난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으로 인하여 역사성과 예술성을 지닌 우리 민족의 노래가 되었다.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정암사로 가는 일만 남았다. 가는 길에 중간 기착지인 병방산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차를 세웠다. 정선은 강원도에서도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지역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협곡 사이로 흐르는 여울은 산을 돌아나가면서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영월 한반도지형 전망대도 인상적이었지만, 이곳 병방산 스카이워크는 발아래로 풍경을 내려다봐야 하기에 두렵고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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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에 국보로 지정된 수마노탑은 규모가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와 조성 수법이 세련되고 정교하다. |
나의 애마가 정암사 주차장에 도착할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주차장에 차를 세운 필자는 수마노탑을 보기 위해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비를 맞으며 정암사 적멸보궁(寂滅寶宮) 뒤쪽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오르길 10여 분 남짓 지나자, 드디어 수마노탑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수마노탑은 고려시대 모전석탑 형식으로 조성된 불탑인데,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다진 다음에 석탑을 세웠다. 2020년에 국보로 지정된 수마노탑은 규모가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와 조성 수법이 세련되고 정교하다. 자장율사가 쌓았다는 원래의 수마노탑은 옛 자치를 알 수 없고, 지금의 탑은 1653년(효종 4)에 중건된 것을 1972년에 완전 해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수마노석이란 이름은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용왕을 만났는데, 그때 용왕이 무수한 마노석을 배에 실어 울진포까지 운반한 뒤, 신통력으로 태백산에 갈무리한 것을, 불탑을 세울 때 보배가 되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수마노석은 ‘물길을 따라온 마노석’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 1902~1937)의 <아리랑>(1926)이란 영화가 나온 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신 임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애절한 노래를 담아냈다. 춘사는 결핵으로 인해 청춘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춘사가 당대의 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부르게 함으로써 해한(解恨)의 삶을 살게 한 것처럼, 정선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정선아리랑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희망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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