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음영철 교수 |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40분을 날아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답사는 교토에서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동료 교수와 <한류와 글로벌 문화콘텐츠> 수업을 들은 대학원 제자들이 참여하였다. 입국 수속을 마친 일행은 JR 간사이공항역으로 이동하여 이코카(ICOCA) 카드를 구매하였다. 카드를 구매하면서 여기가 일본임을 깨달았다. JR 하루카 특급열차를 타고 간 일행은 숙소인 신오사카역 근처 호텔에서 첫날의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호텔 조식을 끝낸 일행은 JR 나라선을 타고 교토 남쪽에 있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도착하였다. 후시미(伏見)는 “거룩한 신라 농신(農神) 앞에 엎드려 우러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볍씨를 가지고 도래한 신라인 하타씨(秦氏)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일본 신사 약 4만 2천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한반도의 벼농사를 일으킨 신라의 농업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전국에 있는 이나리 신사는 쌀과 농사, 풍요로움 등을 관장하는 신을 모신 곳이다. 신사 입구에 있는 붉게 주칠한 도리이(鳥居)는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비슷한데, 세속에서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경계이다.
![]() |
| 신사 입구에 있는 붉게 주칠한 도리이(鳥居)는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비슷한데, 세속에서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경계이다. |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일본 신사 중에서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평일 오전임에도 세계 곳곳에서 온 엄청난 관광객과 1천 개의 붉은 도리이 터널이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을 파도에 비유해 인파(人波)라 말하는데 이곳에 오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만 한눈팔아도 일행을 놓쳤다. 주말이 아닌 것을 감사해야 했다. 그건 그렇고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는 왜 이렇게 도리이가 많은 것인가?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에도 시대 때 소원에 대한 기원, 혹은 감사의 의미로 시민들이 하나씩 봉헌한 것이 1,000개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도리이 터널은 일본의 상징색인 금적색으로 칠해졌는데, 일본에서 금적색은 신성함을 나타낸다. 이나리 신사는 이곳에 오기 전에 가졌던 생각보다 강렬했다.
![]() |
| 청수사는 백제계 도래인이 만든 것으로, 일본인뿐만 아니라 생초짜 답사객의 마음을 울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
버스를 탄 답사 일행은 교토 사찰의 상징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입구에서 내렸다. 15분 남짓 언덕길에 오른 끝에 드디어 청수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청수사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훗날 쇼군)으로 출정한 사카노우에가 에조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와 조정에 주청하자 어원사(御願寺, 왕실 원당 사찰)로 격상되었다. 현재의 청수사는 소실과 재건을 거듭한 끝에 에도시대인 1633년에 재건된 것이다. 인왕문 옆에 있는 마구간은 일본인들에게는 친숙한 공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연희인 ‘노(能)’ 중에 <유야(熊野)>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청수사는 일본의 수많은 문학 작품, 영화, 드라마 등에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교토답사 일번지라 할 수 있다.
맑은 물을 뜻하는 청수사는 백제계 도래인이 만든 것으로, 일본인뿐만 아니라 생초짜 답사객의 마음을 울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청수사 무대에서 바라본 전망은 확 트여서 부석사 일망무제(一望無際)를 떠오르게 했다. 청수사 무대는 지상 13m 높이로 되어 있고, 이를 떠받치는 나무 기둥들이 139개나 되는데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한다. 청수사는 가파른 언덕이나 절벽에 거대한 기둥과 보를 사용하여 건축하는 가케즈쿠리(懸け造り)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지진이 와도 유연하게 흔들리기에 내진에 강하다.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교토에는 청수사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이곳은 교토의 랜드마크이다.
일본인들은 일생일대의 과감한 결단을 앞두었을 때,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셈 치고’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1694년부터 1864년까지 170년간 234명이 이곳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투신을 한 것일까? 다행인 것은 생존한 사람이 85퍼센트에 이르렀는데, 다시 살아난 사람은 신이 자신을 도와주심을 믿고 더 열심히 살아갔을 것이리라.
서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토와(音羽) 폭포에서 잠시 물을 마셨다. 청수사라는 이름이 유래된 이곳에서 필자는 세 물줄기 중에 두 곳의 물을 마셨다. 지혜, 연애, 장수를 각각 상징하는 세 물줄기를 다 마시면 오히려 불운이 따른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어떤 물줄기를 택하여 마시고 싶은가?
청수사 답사를 마친 일행은 야사카 신사로 가기 위해 찻집의 거리로 유명한 기요미즈 자카를 걸어갔다. 참고로 일본어에 많이 나오는 자카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지명처럼 기요미즈 자카는 언덕에 있다. 점심시간이라 다리도 쉴 겸 해서 교토 특산품을 파는 오래된 상점 2층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 음식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맛이 비슷하였다. 같이 간 답사 일행 중에는 여교수의 딸인 최연소 초등학생도 있었는데, 밥을 유난히 좋아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보기에 참 좋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 |
| 기온 중심에 있는 야사카 신사 입구는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 멋스러웠다. 교토 야사카 신사는 전국에 있는 3천여 야사카 신사의 총본산이다. |
야사카 신사로 가는 길에 동사(東寺)의 오중탑을 거쳐 갔다. 이 탑은 높이 54.8미터로 일본의 목조탑 중 가장 높다. 17세기 에도 막부의 지원으로 재건된 오중탑은 교토가 역사의 도시임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오중탑을 가까이서 보다가 몽골 제국 군대에 의해 불타버린 경주의 황룡사(皇龍寺) 9층 목탑이 떠올랐다. 지금은 경주 관광보문단지 내에 황룡원이 있어 그 옛날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본격적인 답사 첫날의 대미는 고구려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자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야사카 신사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기온 중심에 있는 야사카 신사 입구는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 멋스러웠다. 교토 야사카 신사는 전국에 있는 3천여 야사카 신사의 총본산이다. 이곳에서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기온마츠리는 일본의 3대 마츠리 중 하나이다. ‘마츠리’의 어원을 두고 일본 학계에서는 우리말의 ‘맞으리’에서 온 말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마츠리가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인데, 그 마츠리의 시작 역시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삼스러웠다. 일본인들은 가뭄·홍수·역병·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마츠리 축제를 통해 원령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교토의 심장은 기온 거리라고 해서 기온의 옛 거리를 걸어보았다. 공인된 유곽인 기온정(祇園町)은 아니었지만, 기온 거리는 비교적 한산하였다. 좁은 골목길을 산책하듯이 걸어보니 고즈넉한 감상에 빠져들게 했다. 다시 교토를 방문한다면 기온 거리를 외로이 걸으리라. 혹시 아는가. 당나라 시인 이백을 닮은 요시이 이사무(吉井勇, 1886~1960)가 느꼈던 감회에 젖어 제자들과 함께한 이번 교토답사를 떠올릴 줄!
![]() |
| 오사카 난바 지역에 있는 도톤보리 일대는 저녁 어스름이 깔린 시간인데도 자유를 만끽하려는 여행객들로 만원이다. |
숙소에 돌아가기 전 답사 일행들은 오사카 야경도 볼 겸해서 오사카 난바 지역에 있는 도톤보리에 들렀다. 저녁 어스름이 깔린 시간인데도 이곳은 자유를 만끽하려는 여행객들로 만원이었다. 오사카는 재일 조선인 인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특별히 일제강점기에 제주도 출신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이곳 오사카로 많이 이주했다. 도톤보리 운하 옆에 있는 돈키호테에 들렀다. 이곳에서 이번 답사를 기획한 튀르키에 출신의 박사과정 제자인 Kurkutan Duygu가 추천한 과자와 의약품을 샀다. 답사와 달리 쇼핑은 젬병이기에.
내 고향 횡성도 이곳 오사카 난바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장신상 군정이 출범하고, 횡성군 발전 방안의 하나로 ‘횡성 500만 관광시대’를 아젠다로 설정하였다. 횡성은 이곳 교토와 다른 도시로, 역사와 예술보다는 자연과 한우 친화적인 고장이다. 따라서 관광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고 거시적인 계획도 필요하지만,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정책의 하나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위한 축제를 통해 ‘반려동물의 도시 횡성’을 브랜딩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외협력관, 6년 전 논란을 다시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