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묘한 구분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들은 은연중에 서로를 나누어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토박이,
들어온 사람,
그리고 다시 돌아온 사람.
이 세 가지 분류는 행정이나 제도 속에 존재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역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생각보다 강하게 작동해 왔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기준이라기보다,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기능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구분이 단순한 인식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구분은 때때로 관계의 구조로 이어지고, 지역 정치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토박이 중심의 보이지 않는 경계...
토박이라는 개념은 본래 매우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지역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공동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횡성의 현실에서는 이 ‘토박이’라는 개념이 때때로 다른 의미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누가 더 오래 살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갖는가의 기준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부터 토박이는 정체성이 아니라 일종의 경계가 됩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들어온 사람은 외부인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다시 돌아온 사람 역시 완전히 내부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관계망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기 위한 연결이 시간이 지나면서 폐쇄적인 구조로 굳어질 경우, 그것이 흔히 말하는 ‘패거리 구조’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선거가 드러낸 오래된 구조...
이번 지방 선거 과정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정책과 정당을 중심으로 경쟁이 이루어졌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내 관계망과 오래된 인식이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특정 인물을 둘러싼 지지와 반대의 흐름이 단순한 정치적 선택을 넘어, 지역 내부 관계의 연장선처럼 해석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천 과정에서의 갈등 역시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정치가 제도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면, 현실에서는 여전히 사람 관계의 영향이 일정 부분 남아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반복될수록 지역 사회 전체의 에너지가 분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돌아온 사람’이 보여주는 지역의 또 다른 얼굴...
이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이른바 ‘다시 돌아온 사람’입니다.
횡성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분들은 외부 경험과 내부 경험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역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완전히 내부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때 지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인물이 중요한 정치적 선택의 중심에 서면서, 지지와 비판이 동시에 교차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선거 국면에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결과와 상관없이 다시 떠날 사람”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 자체가 지역 정치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치보다 더 깊은 문제, 공동체의 인식 구조...
문제의 본질은 특정 개인이나 특정 선거에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은 곳에는 공동체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우리’로 인정하는 기준이 정책이나 역량이 아니라 출신이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닫힌 구조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새로운 변화나 다양한 시도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일정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치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새로운 정책의 실험, 새로운 관점의 유입이 자연스럽게 제한되는 환경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00만 관광 시대와 내부 인식의 과제...
최근 횡성은 ‘500만 관광 시대’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외부 방문객을 확대하고 지역을 보다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내부의 인식 구조가 충분히 개방되어 있지 않다면, 외부로 향한 확장 전략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 구성원 간의 관계와 인식이 보다 열린 구조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외부를 향한 확장 역시 완성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부 변화의 중요성이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열린 공동체로 가는 길...
이러한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와 인식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이러한 경계가 지속될 경우 지역의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토박이든, 들어온 분이든, 다시 돌아오신 분이든 결국은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역의 미래는 누가 더 오래 살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가 사람을 나누는 도구로 작동할 때 공동체는 점차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정치가 사람을 연결하는 장이 될 때 공동체는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횡성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을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기준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500만 관광 시대’를 이야기하는 지금, 외부로의 개방만큼이나 내부를 향한 이해와 포용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결국 제도나 특정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인식 변화 속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조만회 기자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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