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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짓는 즐거움 - 농사삼락(農事三樂)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 승인 2026.08.02|(346호)
곽기웅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kkw3047@korea.kr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네가지의 감정인 희노애락(喜怒哀樂)중에서 기쁨이 가장 좋겠지만,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즐거움은 기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들이는 수고가 크지 않더라도 순간마다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글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등 참으로 다양한 행위를 한다. 옛 선현들도 즐거움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하였다.

맹자께서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을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즐거움은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탈한 것, 두 번째 즐거움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사람을 대함에 당당한 것, 마지막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인생삼락(人生三樂)으로 어릴 적 놀던 곳을 어른이 되어 다시 방문하는 것과 어려운 시절 살았던 곳을 성공하여 다시 찾는 것 그리고 좋은 손님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말하였다. 나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농사가 가지는 세가지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育農一樂(육농일락)으로 작물을 기르는 즐거움이다. 작물을 기르는 것은 단순한 농사가 아닌 생명의 신비로움을 체험하는 여정이다. 흙을 헤치고 나오는 새싹 하나를 마주할 때의 설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단단한 흙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력, 그 작은 초록색 싹은 자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일 아침 밭으로 나가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 즉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농사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공자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하는 자는 천지의 도리를 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줄기는 굵어지고 잎은 무성해진다. 그리고 어느 날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특별하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꽃봉오리를 지켜보며 곧 피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순간인지 깨닫게 된다.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안은 『양화소록(陽花小錄)』에서 "꽃을 기르는 것은 자연의 품격을 내 정원으로 들이는 것"이라 했으며, 이는 단순히 식물을 가꾸는 것을 넘어 문인의 정신을 기르는 수양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드디어 꽃이 피면, 점점 짙어지는 색깔의 변화는 자연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게 해주고, 그 아름다운 꽃을 찾아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수많은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다.

꿀벌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나비의 우아한 날갯짓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연의 일부임을 느낀다. 『양화소록』에 기록된 매화, 국화, 연꽃, 석류화 같은 꽃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선비의 절개와 학문, 청렴함의 상징이었다.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피는 고결함을, 국화는 세속을 초월한 청아함을, 연꽃은 탁함 속에서도 깨끗함을 유지하는 덕을 나타낸다. 문인들은 자신의 정원에서 이런 꽃들을 기르며 마음을 닦고 도(道)를 사색했던 것이다. 개화의 절정이 되면, 그동안의 모든 노고가 보상받는다. 꽃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기르다 보면, 우리는 자연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들녘의 벼 꽃들이 수정하여 결실을 이루고 8월 중순부터 들녘은 초록에서 연두색으로 다시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붉은 빛으로 물드는 과수원, 탐스러운 열매들을 한 아름 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농작물을 기르고 꽃을 가꾸는 것은 인내와 사랑의 선물이다. 매일의 관심과 보살핌이 쌓여 생명으로 피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다. 흙 속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우리의 손과 마음으로 자라나 결실을 맺는 과정,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강희안이 『양화소록』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꽃을 기르는 즐거움은 곧 삶을 깊이 있게 누리는 예술이며, 이것이야말로 참된 농사의 진정한 즐거움 인 것이다.

두 번째 즐거움은 秋收二樂(추수이락)으로 곡식을 거두는 즐거움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는 국화꽃이 필 때까지 온갖 수난과 고통을 말해준다. 이렇듯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 결실을 맺은 쌀 한 톨, 사과 하나를 수확하는 기쁨은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봄에 뿌린 작은 씨앗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가을 바람 속에서 익어 드디어 수확을 맞이하는 순간, 이것은 바로 농업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다. 손으로 직접 거둔 곡식의 무게, 그것이 얼마나 실하고 풍요로운지를 온몸으로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 수확하는 과정 자체도 정말 특별하다.

벼 이삭을 한 줌 쥐었을 때 그 따뜻함, 포도송이를 따내며 느끼는 생명감, 사과나무 아래 붉은 열매들을 걷어 담는 설렘, 이 모든 것이 몇 달간의 인내와 보살핌에 대한 자연의 응답이다. 매일 밭을 돌아다니며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병해충을 관리했던 그 손으로 풍요로운 열매를 거둔다. 수확의 기쁨은 단순히 수량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해 동안 자연과 함께 지낸 소통의 결과이며,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가뭄이 들었던 해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태풍을 견뎌낸 날도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난 작물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이면서도 자연과 함께 성취해낼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수확을 마친 후 창고에 쌓인 곡식을 바라볼 때, 그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과 함께 이루어낸 작품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이다. 이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는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땅에 감사하고, 햇살과 비에 감사하며, 자신의 손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함에 감사하며, 이 수확된 곡식은 세대를 잇는 귀한 자연의 선물임을 함께 느낀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바라볼 때의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세 번째 즐거움은 交友三樂(교우삼락)으로 벗을 사귀는 즐거움이다. 농사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흙을 일구고 작물을 가꾸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가진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몇 해 전 고성군 진부령에서 피망농사 700평을 하는 80세 농업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농사일이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아주 힘들지 하지만, 내가 이 나이에 말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답해 주었다.

그렇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즉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 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기쁜가? 작목반, 연구회, 영농조합 같은 공동체 속에서 농업인들은 단순히 일의 동반자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아침 일찍 밭으로 나가면, 이미 일을 시작한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고, 서로 마주칠 때면 나누는 인사 한마디에 많은 정이 담겨져 있다. "어제 비가 너무 많이 왔지", "올해 날씨가 참 좋아" 같은 평범한 말들이지만, 그것은 같은 땅을 밟고 같은 하늘을 보는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대화이며 이러한 소통 속에서 우리는 홀로가 아님을 느낀다.

연구회 모임에 참석할 때면, 그곳은 마치 작은 대학 강의실 같아 진다. 경험이 풍부한 농업인이 그해의 기후 변화에 맞춘 영농 기술을 설명하고, 새로 도입한 농기계의 효율성을 토론하며, 작물의 병해충 대처법을 함께 연구한다. 이런 모임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경험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폭넓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되며, 한 사람이 겪은 시행착오가 모두의 자산이 되고, 한 사람의 성공이 모두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연구회의 선진지 견학은 특히 의미가 깊다. 함께 같은 땅에서 자란 작물들을 살펴보며, "이것을 보니 우리 밭은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들을 나누고, 다양한 재배 방법을 비교하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농업인을 넘어 농업의 전문가로 성장해나간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느새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어려운 해가 있을 때, 동료들의 격려와 조언이 큰 힘이 되고, 병해충이 크게 발생했을 때, 경험 많은 선배 농업인이 건네주는 한마디의 조언은 어떤 교과서보다 실질적이다.

더욱이 요즘 시대에 젊은 새로운 농업인들이 연구회에 들어오면 선배 농업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며 보람을 느끼고, 젊은 농업인들은 선배 농업인들의 지혜를 배우며 희망을 갖게되고, 이러한 세대 간의 소통과 협력 속에서 농업의 미래가 만들어진다. 농사 속의 동료들, 그들과 함께 같은 흙을 밟고, 같은 하늘을 보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다. 옛 선현들은 "농사짓는 사람의 기쁨은 하늘이 주는 기쁨"이라 했다. 이것은 결과에 대한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 자연의 섭리 속에서 자신이 하나의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면 어렵고 힘든 일,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곡식을 기르는 즐거움, 거두는 즐거움, 그리고 같은 배를 탄 친구를 사귀는 즐거움 때문에 내일 아침에도 밭으로 나갈 것이다.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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