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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교수 |
아침부터 굵은 비가 내린다. 평소에는 비를 좋아하지만, 답사할 때는 비가 반갑지 않다. 옷이 젖는 것은 둘째 치고 사진이 잘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날도 일정에 따라 교토의 명소를 답사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여행 첫날과 달리 셋째 날이 되니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적자생존은 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기차에서 내린 일행은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금각사 입구에서 내렸다.
매표소에 도착한 일행은 부적같이 생긴 독특한 입장표를 손에 들고 금각사로 입장하였다. 실제로 본 금각사는 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경호지(鏡湖池)라는 연못에 비친 금각사는 빗방울의 파문으로 인해 어른거린다. <수련>으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이 모습을 봤다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금각사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답사 일행들은 금각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교복을 입은 일본 학생들이 금각사를 사진에 담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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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호지(鏡湖池)라는 연못에 비친 금각사는 빗방울의 파문으로 인해 어른거린다. <수련>으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이 모습을 봤다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금각사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
일본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금각사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와 함께 교토 관광의 양대 메카로 알려진 곳이다. 선종 사원으로 알려진 금각사는 원래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 1358~1408)의 법호(法號)인 녹원(鹿苑)을 따서 로쿠온지(녹원사)였지만, 긴가쿠(금각)라 불리는 사리전의 존재로 인해 금각사(金閣寺)로 부르고 있다.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이었던 요시미츠에 의해 세워진 금각사는 무가, 선종, 귀족문화가 합쳐진 기타야마(北山文化)의 산물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은각사(銀閣寺)인데, 이 사찰은 간결함·절제·자연스러움을 표방한 히가시야마(東山文化)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금각사는 쇼군의 취향을 반영한 3층 누각 건물로, 지붕의 선들이 날렵하고 구성미가 돋보였다. 금각사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궁정 양식을 따랐고, 2층은 무사의 저택 양식을 반영했으며, 3층은 선종 사원의 양식에 맞게 지어졌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에다가 황금으로 인해 시각적 관능미가 물신 풍기는 금각사는 전란과 화재 속에서도 500여 년을 잘 버텼다고 한다. 그런 금각사였건만 1950년 7월 2일 새벽에 완전히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금각사의 학승인 하야시 쇼켄(林承賢)이 금각사가 속물주의에 빠진 것에 염증을 느껴 방화를 저지른 것이다. 소실된 금각사는 3년간의 공사 끝에 20킬로그램의 금박을 입히고 재건되었다. 우리 일행들이 본 것은 1987년에 완공된 것이다. 1956년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 公威)는 금각사 방화 사건을 다룬 소설 『금각사』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끝없는 우산의 행렬을 뒤로한 채 일행은 금각사 뒷길로 돌아갔다. 금각사 출구인 뒷문을 빠져나오자 빗발은 가늘어졌고 주위는 한산하였다. 다음 답사지로 가기 위해 일행은 버스 정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버스 정거장에서는 한 노인이 비를 맞으며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굳이 안 해도 되건만 자신이 맡은 일을 우직하게 행하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일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서 멈추었다. 목적지에 가려면 버스를 다시 갈아타야만 했다.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라시야마행 버스가 왔다. 여행객의 편의를 위한 교토의 버스 연계는 아주 잘 되는 편이었다.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에 하나인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은 고요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번잡한 교토 관광을 하다가 이곳에 오니 숲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특히나 비가 내리는 대나무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걷다 보니 시간이 느리게 간다. 철도를 횡단하기 위해 걸음을 멈춘 건널목에서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대나무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노라니, 비를 맞은 대나무숲은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은 일행은 아라시야마의 명소 도월교(渡月橋)로 내려왔다. 1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도월교는 한반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고대 교토의 형성에 있어 최대 공로자로 일컬어지는 하타씨(秦氏)는 5세기 후반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으로, 토목에 대한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신라계 도래인들은 아라시야마 산 아래로 흐르는 가쓰라강 유역에 대형 제방을 쌓고, 대규모 개간 사업을 통해 농지를 확보하였다. 이로써 한반도 도래인을 통해 도쿄 이전의 1000년의 수도였던 헤이안쿄(平安京)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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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을 건너는 다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도 교토 사람들은 도월교에서 봄에는 꽃놀이를,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
도월교와 관련된 인물로는 조선 중기에 정유재란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문신 조완벽(趙完璧)을 들 수 있다. 그는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일본의 전설적인 거상 스미노쿠라 료이(角倉了以)를 만났다. 한자에 능통했던 조완벽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행해졌던 ‘남만무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남만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스미노쿠라 료이는 원래 상인이자 토목가였는데, 도월교를 만든 것이다. ‘달을 건너는 다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도 교토 사람들은 도월교에서 봄에는 꽃놀이를,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고 했던가. 비 내리는 아라시야마 다리에서 서정을 맘껏 즐긴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삼십삼간당으로 갔다. 원래는 비가 와서 교토국립박물관에서 교토의 유물을 보려고 하였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휴관일이었다. 그런데 박물관 앞에는 교토 답사를 위해 읽었던 책에서 봤던 삼십삼간당이 있는 것이 아닌가! 기둥과 기둥 사이가 33칸이란 뜻을 지닌 삼십삼간당은 청수사, 금각사와 함께 교토 관광의 3대 명소이기에 기쁨은 두 배 이상이었다.
유홍준 교수가 삼십삼간당을 두고, “건물과 불상조각 모두가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공간”(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3)이라고 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천수관음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건물 길이가 120미터에 가까운 건물 안에는 성인의 키와 비슷한 천수관음상이 여행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법당 안에는 천수관음상 이외에 천수관음상을 수호하는 28부중상이 사열하듯 질서정연하게 서 있다. 중국 서안에 있는 병마용에 비견되는 웅장한 스케일이 아닐 수 없다. 천수관음상은 얼굴은 11면, 팔은 40개이고 손마다 지물을 들고 있었으며, 둥근 광배에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살을 형상화한 명작이다. 이들 천수관음상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전투에 들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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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관음상은 얼굴은 11면, 팔은 40개이고 손마다 지물을 들고 있었으며, 둥근 광배에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살을 형상화한 명작이다.(사진 자료는 삼십삼간당 홈페이지 참고 https://www.sanjusangendo.jp/) |
천수관음상을 배관(拜觀)한 일행은 120미터에 가까운 긴 복도를 빠져나왔다. 날씨는 하루 종일 잔뜩 흐리다. 삼십삼간당 답사를 마지막으로 하루 일정을 끝낸 일행은 저녁을 먹기 위해 니시키 시장을 방문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장시장에 가까운 재래시장이다. 부침 가게에서 전을 포함한 다양한 요리를 시켜 먹은 일행은 숙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교토 답사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비는 여전하다. 간사이 공항으로 가기에 앞서 일행은 답사의 마지막 일정인 오사카성을 방문하였다. 이중 해자로 된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에 의해 만들어졌다. 일본인에게 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장 비천한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일본 전국을 통일한 난세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침략을 하였고, 문화재 훼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에 원흉에 가깝다. 이곳 오사카성에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수감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감옥의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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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오사카성에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수감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감옥의 터만 남아있다 |
다음에 다시 교토에 간다면 도시샤 대학을 방문할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윤동주 시인의 시비 앞에 꽃다발이라도 드리기 위함이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예정대로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태풍으로 인해 간사이 공항 비행기가 결항 되었다는 소식을 이틀이 지나서 듣게 되었다. 해외 답사는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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