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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체벌과 학대 사이>
배경내 | 승인 2015.02.10|(0호)

 


[특별기고]<체벌과 학대 사이>

 

지난 1월 발생한 ‘인천 송도 어린이집 사건’ 때문에 교사의 폭력 문제에 집중적 관심이 쏟아진 바 있다. 그러나 학교나 보육시설에서의 폭력은 ‘폭발적인(.) 관심’이나 ‘강한 처벌’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횡성에서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교사 폭력’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했으며, 그 범위는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가리지 않았다. 해당 학교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길 원했기 때문에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체벌, 학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계속 토론되어야 한다. 십수년간 청소년 인권을 위해 뛰어온 한 인권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체벌이나 학교폭력 경험률이 현저히 낮았다. 문제가 생기면 사후약방문 식으로 가해자를 징계하거나 내쫓거나 하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교사와 학생의 인간다운 선택을 돕는 공기와 문화를 만드는 데 학생인권조례가 기여하기 때문이다.”

 

 "쟤는 때려야 말을 들어요." 체벌이 아닌 방식으로 학생의 잘못을 일깨우려 애쓰는 교사에게 학생들이 두곤 하는 훈수다. 때리면 될 것을 왜 시간 아깝게 그러고 있냐는 핀잔도 섞여 있다. "걔가 맞을 짓을 했어요."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이 자주 하곤 하는 변명이다. 단지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꾸며낸 변명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도 '체벌'을 하고 있다. 때려야 말을 듣는다, 맞을 짓이 있다(그러니 때려도 괜찮다)는 학생들의 인식은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을까.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다 그랬다.

 최근 어린이집 학대 사건들이 연거푸 알려지면서 가해 보육교사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나는 지금의 분노 밑바닥에 깔린 인식을 따져보는 일이 CCTV 설치 의무화라는 어이없는 대책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아동학대 예방책을 발견하도록 돕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어린 애, 때릴 데가 어디 있어서'가 이유라면 곤란하다. 좀더 큰 아이는 때려도 괜찮다는 사회적 허용을 야기하니까. 사실 어린이집 학대 동영상에 등장하는 피해자가 서너 살의 어린이들이 아니라 중학생이었다면 지금처럼 분노했을까. 나는 때려서라도 애들을 잡아달라, 가르쳐달라고 학교에 주문하는 부모들을 여럿 만났다.

  '감히 내 자식한테 손을 대.'가 이유라면 그 역시 곤란하다. 가정에서의 체벌은 괜찮다는 얘기니까. '내 여자를 건드려서' 분노하는 남성들이 애인이나 아내를 패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내 자식을 건드려서가 이유일 때 아동학대는 종식될 수 없다. 아동학대의 절대 다수는 가정에서 발생한다. 체벌하는 부모는 교사의 체벌에도 관용적이다.

 '아이의 행동이 맞을 만한 행동이었다'가 이유여도 문제다. 때릴 수 있는 자와 맞아도 되는 자라는 구분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다. 맞을 만한 행동을 판별하는 기준은 언제나 강자인 교사나 부모의 것이다. 그러니 폭력은 대개 '훈육' 또는 '벌'로 둔갑하거나 축소된다. 그런데 맹비난의 대상이 된 보육교사들도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다 그랬다고. 이런 기만과 이중기준의 텃밭에서 학대는 자란다.

                             체벌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자 학대

사실 체벌과 학대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되질 않는다. 한번 때리는 것이 어렵지, 다음부터는 쉽다. 체벌을 통해 즉각적 행동 중지의 효과를 보게 되면 체벌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 된다. 행동 교정이라는 결과에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아이가 느낄 두려움, 모멸감, 버림받은 기분에는 자연히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거기에 '훈육'이라는 정당성까지 덧입혀진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맞다 보면 맷집이 생기니 더 큰 자극을 가해야 한다. 자연히 체벌의 강도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 어린이.청소년이 유일하게 '때려도 괜찮은 존재'로 분류되어 있다는 자체가 모욕이다. 그래서 아무리 경미한 체벌일지라도 체벌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고 학대다.

 그렇다면 말로 어린이나 학생들을 위협하고 모욕하는 일들은 어떨까. 학대는 때린다거나 오리걸음을 시킨다거나 하는 특정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대는 관계와 맥락을 타고 흐른다.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조차 어떨 때는 애정 어린 격려가, 어떨 때는 원하는 대로 아이나 학생을 조종하려는 신호가 된다. "반 평균이나 깎아먹는 놈", "니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던.", "너같은 애는 처음 본다"라는 각종 비난이 넘쳐나는 교실도 많다. '쓰레기가 된 기분이에요.' 존엄을 모욕하는 교사의 언어폭력 앞에 학생들이 느끼는 지배적 정서다. '차라리 한 대 맞고 끝내는 게 더 깔끔하다'라는 학생들의 반응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후약방문 언제까지 할 건가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방치해야 할까.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가 실시한 2013년과 2014년 전국학생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체벌이나 학교폭력 경험률이 현저히 낮았다. 이 차이의 비결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사후약방문 식으로 가해자를 징계하거나 내쫓거나 하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교사와 학생의 인간다운 선택을 돕는 공기와 문화를 만드는 데 학생인권조례가 기여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학생을 단지 폭력이나 학대 피해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폭력이나 학대를 인식할 촉과 거부할 힘을 갖도록 돕기 때문이다. 성기를 만지며 희롱하는 체벌을 당한 서울의 한 남자 고등학생은 반 친구들이 성기 체벌을 당하고도 웃어넘기는 통에 시정을 요구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를 보면서 그도, 학부모도 불이익에 대한 큰 부담 없이 교사에게 중단을 요구할 힘을 발견했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도 상황을 목격한 어린이의 증언이 없었다면 공론화될 수 없었다.

 공교육의 장소에서부터 폭력.학대에 안녕을 고하는 명백한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될 때,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불이익에 대한 추가 두려움 없이 체벌의 중지를 요구하기 수월해진다. 유사한 행위들이 군대에서 반복된다. 공교육에서의 변화는 다른 장소에서의 폭력.학대에도 안녕을 고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강원도는 아직 학생인권조례 미제정 지역이다.

[필자소개] 배경내
: 인권교육센터 '들'(www.dlhre.org)의 상임활동가로, 1998년부터 인권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의 삶에 던져진 부당한 질문들을 해체시키는 일에 매료되어 산다. 서울과 경기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일에 힘썼고, 2012년 말부터는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벗들과 <인권, 교문을 넘다> 등의 책을 함께 썼다.

 

 

 

 

 

배경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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