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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철 교수의 문화기행] 남도 기행을 다녀와서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26.09.21|(349호)
음영철 교수

차는 남쪽으로 달리고 달려 3시 즈음에 여수 돌산도 남쪽 끝자락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여기는 관음보살의 미소를 품은 금오산 향일암이다. 하늘은 비가 언제라도 내릴 것처럼 흐렸다. 2박 3일 간의 여정으로 남도 답사를 기획한 필자는 첫 번째 기착지로 향일암을 정했는데, 이곳은 남해 금산과 함께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답사지였다.

대흥사에는 추사가 귀양살이를 가면서 쓴 ‘無量壽閣’ 글씨와 이광사의 ‘大雄寶殿’ 현판을 같은 공간에 배치했는데,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향일암은 ‘해를 향하는 암자’라는 뜻을 지닌 남해 제일의 관음성지다.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였으나 고려시대에 와서 윤필 대사가 ‘금오암’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 숙종 41년(1715년)에는 인묵 대사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아름다워 ‘향일암’으로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일암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계속 오르니 길 가운데 아기 부처상이 3개나 나타났다. 아기 부처상은 법구경에 나오는 불언(不言), 불문(不問), 불견(不見)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곳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드디어 계단 끝에 이르렀다. 거북 머리 전망대에서 남해 바다 풍광을 감상하였다. 과연 이곳 금오산은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바다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품고 있다. 향일암은 ‘경전’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향일암에 이르기 전에 ‘해탈문’을 지나쳐 왔는데, 길이가 제법 긴 석문(石門)이어서 해탈까지는 아니어도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향일암에 이르기 전에 ‘해탈문’을 지나쳐 왔는데, 길이가 제법 긴 석문(石門)이어서 해탈까지는 아니어도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석문 끝에서 본 하늘은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대웅전이 나타났다. 대웅전 지붕 위로 얹혀 있는 기암들이 보였다. 드디어 관음전에 도착하였다. 관음보살상 앞쪽 절벽 아래로는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원효대사가 기도했던 곳이라고 한다. 좌선의 명당이 아닐 수 없다. 관음전에서 내려가는 길에 또 하나의 관음전인 ‘천수관음전’에 들렀다. 천 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천수관음전에서 잠시 쉬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심신의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지기 전에 여수 캠핑장에 도착한 일행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1957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를 간직한 대한다원에는 약 580만 그루의 차나무가 산등성이마다 심어졌는데, 녹색 비단을 펼친 것처럼 환상과 탄성을 자아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일행은 강진을 거쳐 해남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기에 바삐 움직였다. 강진 땅으로 가는 길에 ‘대한다원 보성녹차밭’에 들렀다. 주차장에서 매표소에 이르는 삼나무길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삼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전남 보성의 대한다원은 국내 최대의 녹차관광농원이다. 1957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는 약 580만 그루의 차나무가 산등성이마다 심어졌는데, 녹색 비단을 펼친 것처럼 환상과 탄성을 자아냈다. 왜 이곳이 국민 명소인지 알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니 확 트인 차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봄의 첫 새싹으로 만든 우전을 마시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싸 사지를 못하고 대신 학생들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티백을 샀다. 주차장으로 돌아온 일행은 다음 답사지인 김영랑 생가를 향해 출발하였다.

민족시인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은 본명이 김윤식(金允植)으로 풍족한 가정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얕은 언덕 위에 세워진 김영랑 생가는 짚으로 지붕을 이어 고풍스러웠다. 남도의 정서를 담아낸 시인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대문 입구 큰 바위에는 영랑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새겨넣어 반가웠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고택의 아늑한 정서가 곳곳에 스며있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전문

 

이 시는 장독대로 날아온 붉은 감잎을 통해 가을이 문뜩 찾아왔음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인 “오-매 단풍 들것네”를 사용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추석을 앞두고 걱정이 많은 누이의 심정을 헤아린 화자는 자신 또한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말하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는다. 김영랑 시인은 1930년대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시를 발표하였다. 안타깝게도 김영랑은 1950년 9월 29일 서울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북의 소월, 남의 영랑’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시인은 운명의 장난처럼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영랑 생가를 나온 일행은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18년에 걸친귀양살이 중 10여 년 동안 머물렀던 다산초당(茶山草堂)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다산은 제자들과 함께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등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썼고 조선 실학을 꽃피웠다. 단체 손님이 와서인지 툇마루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에 문화해설사가 다산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뜰 앞에 있는 넓적한 돌은 ‘다조(茶竈)’인데 차를 다린 곳이라 하였다. 다산은 이곳에서 제자 18명과 함께 공부하다가 잠시 휴식 시간에 차를 마셨을 것이다.

단체 손님이 와서인지 툇마루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에 문화해설사가 다산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뜰 앞에 있는 넓적한 돌은 ‘다조(茶&#31432;)’인데 차를 다린 곳이라 하였다.

다산초당에 걸린 현판에는 천하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를 엿볼 수 있다. 행서로 씌어진 ‘茶山艸堂’은 추사의 글씨를 집자해서 만든 것이고, 예서를 변형시킨 ‘寶丁山房’은 추사체의 멋이 한껏 풍기는 명작이다. 좌절은 있었으나 실학과 애민을 강조한 다산은 강진 귀양살이를 끝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산은 고향인 마재마을에서 18년을 더 살다가 부인 홍씨와의 60주년 결혼 기념일(回婚)에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일행은 천 년 고찰 해남 대흥사에 도착하였다.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대흥사는 다산과 인연이 깊은 초의선사(1786~1866)로 인해 유명해진 절이다. 초의선사는 맥이 끊어져 가던 조선 후기의 차(茶) 문화를 꽃피운 장본인이다. 대흥사에는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추사가 귀양살이를 가면서 쓴 ‘無量壽閣’ 글씨와 이광사의 ‘大雄寶殿’ 현판을 같은 공간에 배치했는데,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대흥사에는 특이하게도 절 안에 서산대사를 모신 사당이 있다. 정조대왕의 친필사액인 ‘표충사(表忠祠)’가 그러한데, 이를 통해 이곳이 호국불교의 성지임을 알게 한다.

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 일행은 해남에 있는 한반도 최남단 땅끝을 밟고 귀경길에 올랐다. 여정의 마무리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고창 선운사에서 했다. 선운사는 검단선사가 세운 백제의 고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선운사 승탑밭에는 추사의 명필을 엿볼 수 있는 백파대사비문이 있다. 추사는 백파대사의 업적과 그가 강조한 '대기대용(大機大用)'의 경지를 기리기 위해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란 비문을 남겼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과연 추사체의 강인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9월 중순 무렵이 되면 이곳 선운사에는 꽃무릇이 피어날 것이다. 선운사로 가는 길에 송창식의 ‘선운사’를 들으면 가는 발걸음도 기대감으로 충만할 것이다.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인 동백꽃은 없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뜻하는 꽃무릇을 볼 수 있을 것이기에.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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